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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선언에 담긴 것과 담기지 못한 것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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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와 관점 창간준비 5호]

워싱턴 선언에 담긴 것과 담기지 못한 것

:  민주당은 ‘새로운 평화 노선’을 제시해야 한다

by. 「팩트와 관점」 편집부

‘워싱턴 선언’을 통해 미국은 대한민국에게 미중 대결 구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미국 편을 들 것을 요구하면서도, 대북정책에 대해선 ‘한반도 비핵화’와 ‘대화’ 노선을 주문했다. 윤석열 정부와 보수언론이 원했던 자체 핵무장, 전술핵 배치, ‘나토(NATO)식 핵공유’는 철저하게 무시당하거나 부정당했다. 윤석열 정부는 그러한 ‘안보전략의 파탄’을 감추기 위해 ‘사실상 핵공유’를 논하는 ‘핵공유호소인’이 되고 있다.

문제는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와 보수언론이 ‘실패’한 ‘한반도 비핵화 허물기’를 대안으로 제시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들의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를 비판하되, 변화된 상황을 반영하는 새로운 평화 노선이 필요하다. 그 개략적인 노선에 대해선, ‘인도-태평양 전략’으로의 경사가 아닌 ‘신남방정책’과 ‘북방정책’의 계승, 대북 관계의 평화적 재구축,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한 자유무역의 가치를 내세우는 협상론 등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하는 미국 국빈 방문을 마치고 귀국했다. 대통령실과 여당이 말하는 국빈 방문의 성과는 ‘워싱턴 선언’으로 요약된다. 미국으로부터 확장억제 공약, 핵억제에 대한 확고한 약속을 받아 왔다는 것이다.

4월 26일 윤석열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 한미 공동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출처:대통령실 https://www.president.go.kr/)

그러나 ‘워싱턴 선언’의 전문을 꼼꼼히 뜯어봤을 때 대한민국 정부가 미국에게 얻어낸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워싱턴 선언’이라는 문서가 한 건 생성되기는 했지만, 이 문서의 핵심은 기존의 약속을 재확인하는 선에 그치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이 제공한 ‘워싱턴 선언’ 국문 전문 두 번째 문단에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하겠다는 공약을 가장 강력한 언어로 확인”한다는 표현이 있다. 이 문서에서 내세우는 미국의 약속들이 기본적으로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대한 ‘재확인’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같은 문단에 “인도-태평양의 평화와 안정”이란 표현이 있으니, 대한민국으로선 아무런 추가적인 지원 약속도 받지 못한 채 사실상 대중국 포위전략인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명백하게 빨려 들어간 셈이 됐다.

이외 부분을 살펴봐도 “한국은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을 완전히 신뢰”하며 “핵확산금지조약(NPT)상 의무에 대한 한국의 오랜 공약 및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 협정 준수를 재확인”(세 번째 문단)한다고 되어 있다. 미국의 의무가 아니라 한국의 의무가 확인된 것이다. 미국이 약속한 것은 “새로운 핵협의그룹(NCG) 설립”(네 번째 문단)과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다섯번째 문단) 등 협의체 설립일 뿐이다. “미국 전략핵잠수함의 한국 기항”(다섯번째 문단)도 약속되긴 했는데, 이와 같은 미국 전략자산의 전개는 한국이 확인할 수도 없는 사항이다. 무엇보다 마지막 일곱 번째 문단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달성이라는 공동의 목표”와 “북한과의 전제조건 없는 대화와 외교”가 언급된다. 즉, 미국이 이 선언에서 추구한 것이 ‘핵공유’나 ‘전술핵 배치’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과의 대화’ 노선이란 점이 명백하게 제시된다.

▶  미국은 ‘핵공유’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화’를 주문했다

즉, ‘워싱턴 선언’의 의미는 이중적으로 분석될 수 있다. 먼저 미중대결 구도에서는 한국 민주당 정부의 ‘균형 외교 노선’을 허물고 확고한 ‘미국 경사’의 길을 택했다. 그러나 남북문제 해결의 측면에서는 윤석열 국민의힘 정부가 선전해온 ‘압도적인 힘에 의한 평화’가 아니라 오히려 한국 민주당 정부가 노력해왔던 ‘북한과의 대화’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 노선이 채택됐다.

윤석열 정부는 그간 남북 관계에 있어 ‘대화’의 필요성을 부정하고 ‘압도적인 힘에 의한 평화’를 천명했다. 그래서 출범 이후 사실상 남북대화 자체를 기피해왔다. 문재인 민주당 정부의 대화 노선을 대선 캠페인 때부터 ‘위장 평화쇼’라고 공격해왔기 때문에, 원론적으로는 대화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명목으로 북한 문제 자체에 접근하지 않고 방기한 것이다. 그 결과 북한이 도발을 할 경우 “너희들 왜 그러는 것이냐”라고 물어볼 만한 채널조차 구축되지 못했다. 외교계에선 윤석열 정부가 북한 도발에 대한 분석을 워싱턴에 전화를 걸어서 물어 본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였다. 그렇게 워싱턴에 물어보면 워싱턴에선 ‘조선일보’의 ‘영어 번역 기사’를 제공하면서 설명한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전해졌다. 설령 북한을 ‘동포’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고 ‘위험’으로만 바라 본다고 하더라도 ‘관리’는 필요할 것인데, 그 최소한의 관리조차 하지 않고 방치한 셈이다. 이런 맥락까지 고려해보면 ‘워싱턴 선언’의 마지막 문단에서 제시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한과의 대화’라는 정책 노선은 미국이 윤석열 정부에게 “우리는 한국에 핵을 제공할 생각이 없다. 북한 문제는 당신들이 대화를 통해 풀어라”고 주문한 상황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있다.

‘압도적인 힘에 의한 평화’를 말할 때 윤석열 정부가 염두에 둔 것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 번째 옵션은 한국의 자체 핵무장이었다. 둘째는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였다. 셋째는 이른바 ‘나토(NATO)식 핵공유’였다. 연초부터 윤석열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자체 핵무장’ 발언은 미국이 둘째나 셋째를 약속해 주지 못할 경우 한국이 첫째를 택할 수도 있다는 언급이었다. 대통령실은 이를 원론적인 언급이었다며 의미를 축소했으나, 대통령의 발언은 그 외교적 파장을 고려하여 철저하게 관리되어야 한다. 비록 윤석열 대통령의 경우 실제로 ‘진지한 노림수’가 아니라 ‘원론적 언급’으로 실언처럼 발언이 흘러 나왔을 가능성이 높겠으나, 미국 측에는 그리 받아 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후 미국의 네오콘과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공유하는 국제정세 인식에선, 대한민국이 핵보유를 갈망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언급 이후 한국 시민들의 상당수가 핵보유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미국에도 전해졌다. 미국의 보수적 싱크탱크에서도 ‘한국이 핵보유를 원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니 핵확산을 금지하기 위해선 잘 달래야 한다’는 견해, ‘한국의 핵보유가 미국에게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견해’, ‘한국이 핵보유를 한 이후 민주당 정부가 들어설 경우 프랑스 드골 정부의 사례처럼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수 있으므로 미국의 국익에 저해될 거라는 견해’ 등이 우후죽순 백가쟁명의 형식으로 나타나고 한국에도 전해졌다. 미국의 중론은 당연히 한국의 핵보유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겠으나, 극히 일각의 ‘용인론’이 한국의 보수 세력에게 희망을 주기도 했다. ‘워싱턴 선언’의 발표 직전까지,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은 윤석열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세 가지 옵션 중 하나를 용인받을 것이라는 희망섞인 전망을 했다. 그러나 미국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핵공유’와 논리적으로 모순될 수밖에 없는 ‘한반도 비핵화’ 노선 및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의 재확인이었다.

▶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 134조 vs 미국의 한국 투자는 8조, 경제적 성과는 어디에?

이것은 윤석열 정부와 한국 보수세력이 믿어 왔고 추구해온 안보전략이 파탄났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조선일보는 4월 27일자 사설에서 “워싱턴 선언을 보면 미국은 북한 핵 무력화보다는 한국 핵개발을 더 우려하는 것 같다”(<[사설] 한미 핵 협의그룹 창설, ‘韓 핵 족쇄’는 강화됐다>)고 논평했다. 미국에게 북한은 그리 큰 위협요인이 아니고,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더 중요한 것은 미중대결 구도에서 한국을 미국 측으로 끌어 당기는 것이기 때문에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압도적인 힘’을 미국은 이미 가지고 있으며, 북한 문제에 대한 ‘평화’는 이미 미국에겐 실현되고 있는 일이며, 그 ‘압도적인 힘’을 대한민국에 빌려줄 의사는 없다. 남한과 북한, 즉 대한민국과 북한 사이의 평화는 ‘압도적인 힘’이 아니라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추구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미국은 어린애 팔 비틀듯이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을 허물어 버렸고, 대북정책에 한한 한 윤석열 정부로 하여금 문재인 민주당 정부 노선으로 회귀할 것을 주문했다고 봐야 한다.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미국 측의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가 없는데도 잠깐이나마 ‘사실상 핵공유’, ‘핵공유라고 느낄 수 있는 상태’ 등의 말장난을 한 것도 이 사실을 필사적으로 가려야 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워싱턴 선언’의 성격상 거기에 포함될 수는 없었지만, ‘워싱턴 선언’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성과물에도 전혀 언급되지 못한 경제 문제도 크나큰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은 스스로를 ‘1호 영업사원’이라고 자부했고, 이번 국빈 방문에도 무려 122개 기업체의 인사들이 동행했다. 그러나 한국 기업이 약속한 미국 투자액은 134조에 달하는 반면 윤석열 정부가 방미 성과로 자랑하는 미국 측 투자액은 8조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넷플릭스의 3조 투자는 몇 년 전부터 진행된 통상적인 수준으로, 대통령실이 김건희 여사의 업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부풀린 것이라는 의혹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한국의 대미외교의 근본적인 목표를 생각해본다면, 경제적으로는 자유무역의 확대를 통한 이익 추구, 외교적으로는 한반도 평화 조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잣대로 판단해봤을 때,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보다도 기록적인 ‘사상 최대 무역적자’를 경험하는 한국 정부가 미국의 보호무역 정책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나 반도체법(‘반도체 칩과 과학법’)에 대한 어떠한 협상적 접근이 없었고 내세울 성과가 없다는 것은 사실상 정부의 역할을 방기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미중 대결구도에 윤석열 정부가 ‘가치외교’란 이름으로 지나치게 휩쓸려가 대중무역에서 보는 ‘손실’을 미국으로부터라도 보상받는 협상을 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간 한국 정부는 ‘재벌 수출대기업의 민원’에만 반응할 뿐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그리고 노동계의 이해관계에는 무관심하다는 평판이 있었는데, 윤석열 정부는 심지어 ‘재벌 수출대기업의 민원’에도 무관심한 비애국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

한반도 평화 조성 문제로 봐도 윤석열 정부는 평화가 목표가 아니라 한미일 vs 북중러의 국제적 진영대결의 선을 긋는 것 자체를 목표로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령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 문제에 개입할 수 있으면 대한민국에 이득이라는 발상은, 일본 군대를 끌어 들여서 청나라 군대를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하려 했던 구한말 개화파의 오류, 청국 군대와 일본 군대를 끌어 들여서 동학농민혁명군을 진압하려고 했던 고종의 오류를 그대로 반복하는 수준이다. 또한 이 정부 재임 기간에 중국과 대만의 양안 분쟁이 일어날 경우 대한민국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어떠한 고민도 없이, 그저 미국 측이 팔을 잡아 끌면 아무런 저항없이 끌려 들어가 전쟁상태로 돌입하는 결말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합리적인 예측으로 대두하고 있다.

▶  민주당은 ‘새로운 평화 노선’을 제시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은, 안보적 차원에서 ‘워싱턴 선언’의 이중적 의미를 간파하고, 워싱턴 선언에서 빠져 있는 안보 문제와 경제 문제까지 보강하여, 시민들을 향해 ‘새로운 평화 노선’을 대안으로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윤석열 정부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중이지만, 그렇다고 민주당이 ‘한반도 비핵화’를 허무는 세 가지 옵션 중 하나를 추구하자고 주장할 수는 없다. 한반도 문제에서 핵무기 사이의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 恐怖─均衡)은 평양과 워싱턴 사이에 이루어지면 족하지, 굳이 서울과 평양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할 이유는 없다. 한반도에서의 남북 전면전은 굳이 핵이 없더라도 ‘공멸’이고, 우리가 원하고 추구하는 바는 그러한 상황에 빠져들지 않도록 긴장을 완화하고 위험을 관리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햇볕정책이 북한 핵개발과 고도화를 통해 ‘파탄’났다고 인식하고 있고, 보수주의자들 역시 그러한 판단을 부추기고 있다. 그런 인식을 피하기 어렵다면, 우리가 굳이 ‘햇볕정책’이란 이름을 고수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더 이상 비핵화를 선결 목표로 하는 평화 노선을 추구하기는 어렵고, 북한 핵보유라는 현실 위에서 위험을 관리하는 평화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 이 경우 이 평화 정책은 ‘비핵화’를 여전히 목표로 하겠지만, 그것을 유일한 목표로 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개략적인 노선을 제시할 수 있다.

첫째, 대한민국의 외교전략은 대중국 포위노선으로 일본이 발제하고 미국이 승인한 ‘인도-태평양 전략’에 빨려 들어가는 것이어선 안 된다.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선 인도조차 온전히 동의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시선이 우세하다. 왜냐하면 인도는 중국 견제에는 동의하면서도, 미국의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는 소극적이거나 오히려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자국의 국익을 위해서라도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아세안(ASEAN) 국가들과 함께하는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 그리고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을 계승하고 재설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냉전과 블록화시대에 무역로와 원자재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그러하다.

둘째, 대한민국의 대북정책은 미국의 조언을 받아들여 대화를 통해 위기를 관리하는 새로운 평화 노선이 되어야 한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국제기구에서 내는 성명서에는 동조하되, 이와 별도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민간 교류의 길을 터야 한다.

셋째, 대한민국은 신냉전 및 블록화의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대한민국이 그간 수혜를 입었던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노선을 일정 부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과도 맹목적인 디커플링이 아니라 ‘아세안(ASEAN) 경유를 통한 의존도 줄이기’의 노선을 취해야 하고, 미국의 보호무역적 정책들에 대해서도 자유무역의 가치를 논하면서 한국 대기업들의 이익을 실현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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