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IRA법, 현대에겐 재앙, 토요타에겐 기회?
[팩트와 관점 창간준비3호]
미국 IRA법, 현대에겐 재앙, 토요타에겐 기회?
: 미국의 IRA 대응에서 발빠른 일본과 뒷북치는 한국, 외교도 경제임을 깊이 인식해야
by 「팩트와 관점」 편집부
특히 토요타 완성차 공장이 있는 웨스트버지니아주가 지역구인 조 맨친 상원의원의 반대에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맨친 의원의 행보가 전형적으로 토요타의 이득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부 및 외교 당국은 맨친 의원이 토요타의 이득을 지켜내고 현대기아차의 손해를 방기하는 동안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셈이다.
최근 한국 기업들의 눈부신 성과는 격변하는 환경에 대한 선제적인 적응의 산물이었다. 삼성전자가 전자업계에서 소니를 추월하는 감동적인 모습도 그렇기에 가능했다. 전기차로의 격변기에 잘 적응하는 현대기아차의 이익을 한국 정부가 대변하지 못하는 현실은, ‘추월의 시대’가 오게 되리라는 전망에 먹구름을 끼게 한다. 한국 정부는 이번의 실패에서 교훈을 이끌어 내야 한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의 최대의 피해자가 한국 자동차업계, 특히 현대자동차그룹이 될 거라는 우려가 날로 커지고 있다. IRA가 현재 조항대로 통과된다면 북아메리카 지역에서 최종 조립·생산된 전기차에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의 보조금(세액 공제 혜택)을 주게 된다. 현재 한국에서 생산해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현대차 아이오닉 5, 기아 EV6 등의 전기차는 보조금을 받지 못한다. 이러한 격차는 현대차의 조지아 공장이 완공되는 2025년까지 3년 동안이나 유지되게 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 5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미국에서 로보틱스,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자율주행, 인공지능(AI) 등 신사업 분야에 5조 6000억원을 추가 투자할 계획을 수립하고도 전혀 배려를 받지 못하고 손해를 입게 됐다. 실제로 지난 8월 IRA가 발표된 이후 9월부터 현대기아차의 미국 시장 내 전기차 판매대수는 현저하게 줄기 시작했다. 현대차 미국판매법인(HMA)은 9월 한 달간 전기차 아이오닉5를 1306대 판매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8월 판매량 1517대보다 14%(211대) 줄어든 수치였으며 7월 1984대보다는 30% 이상 줄어든 수치였다. 기아의 전기차 EV6도 9월 한달간 1440대가 팔렸는데, 8월 판매량 1840대에 비해 22%(400대) 감소했다. EV6는 지난 7월엔 1716대가 팔렸다. 다만 현대차 측에서는 이러한 판매감소는 비수기 및 반도체 수급의 영향 탓일 가능성이 있으며, IRA의 영향력은 내년 상반기까지 가봐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미국 의회는 외면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IRA에서 피해를 보지 않을 ‘최선’의 상황은 북미산 외 전기차에 대해 보조금 지급(세액 공제)을 제외하는 조항을 3년간 유예해줘야 한다는 내용의 개정안이 통과되는 것이다. 당초에는 8월에 IRA 법을 발표한 바이든 정부가 11월 중간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후에는 협상의 여지가 있다고 봤다.
최근 한국 정부와 현대기아차는 상업용 친환경 차량은 북미에서 제조됐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조항에 주목, 이달초 미 행정부에 보낸 2차 정부 의견서를 통해 렌터카나 리스 차량에 쓰이는 전기차도 상용차로 인정해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할 것을 요구했다. 이렇게 임대한 전기차를 소비자가 구매할 경우에는 중고차에 적용되는 최대 4000달러의 세제 혜택을 적용해달라는 내용도 함께 요청했다. 미국 재무부는 29일 공개한 세부지침에서 상업용 전기차를 '납세자가 재판매가 아닌 직접 사용 또는 리스를 위해 구매한 차량'으로 정의해서 현대기아차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했다. 현대기아차로선 한숨 돌린 셈이 됐다.
그러나 IRA 자체에 대한 한국 측의 개정 요구는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웨스트버지니아주)의 막강한 반대에 부딪혀 있다. 맨친 의원은 재무부의 세부지침이 현대기아차에게 숨통을 틔워주는 것조차 반대해왔다.《한국경제》 12월 14일자 기사 <IRA 보조금 개정 난항 빠지나…美 의원 "한국 요구에 반대">의 보도에 따르면, 13일(현지시간)에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은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유감스럽게도 일부 차량 제조사와 외국 정부가 미 재무부에 렌터카, 리스차량, 공유차량 등에도 (보조금) 허용을 요청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이를 받아들이면 기업들이 북미 투자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맨친 위원은 “IRA 조항을 개정하면 자동차 제조사들이 평소처럼 (미국에 공장을 두지 않고) 사업을 계속할 것”이라며 “이는 미국의 운송 부문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 맨친 의원은 일개 상원의원이 아니다. 그는 미 상원에서 IRA 법안 통과의 ‘캐스팅 보트’를 쥔 인물로 여겨진다. 맨친 의원은 당적은 민주당이지만 중도파로 분류된다. 13일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민주당 잔류를 확신할 수 없다”는 뜻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상원 에너지·천연자원위원회 위원장도 맡고 있다.
조 맨친 상원의원의 IRA 개정안 반대가 의미하는 것
지난달 미국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의석수를 50석에서 51석(공화당 49석)으로 늘렸지만 중도보수 성향인 커스틴 시네마 상원의원이 민주당을 탈당하면서 도로 50석으로 되돌아왔다. 그래서 맨친 의원이 반대표를 던지면 나머지 민주당 의원들의 표가 49표로 과반에 미달해 민주당 단독으론 법안 통과가 어렵다.
문제는 조 맨친 의원이 처음부터 IRA를 가장 엄격한 형태로 유지하자고 주장한 이가 아니었다는 데에 있다. 조 맨친 의원은 작년까지 IRA의 이전 버전이었던 조 바이든 행정부의 ‘더 나은 재건 법(Build Back Better·BBB)’이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촉진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연합뉴스》 12월 7일자 기사 <美민주, 조지아 승리로 상원서 확실한 다수…인플레법 개정 주목>에 따르면, 민주당은 조 맨친 의원과 커스틴 시네마 의원의 반대 때문에 BBB를 IRA로 수정해야만 했다. 이는 IRA의 예외조항 확대가 해외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짓는 것에 방해된다는 현재의 입장과는 상반된 것이다.
조 맨친 의원의 행보를 이해하려면 BBB와 IRA의 내용 차이, 그리고 그의 지역구의 특성을 파악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동아일보》의 지난 8월 26일자 기사 <선제 로비로 피해 줄인 日…韓, 법 통과뒤 늑장 대응>에서 상세한 분석이 나왔다. 작년 BBB 법안의 핵심 논쟁은 ‘Union Made Car(노조가 있는 기업이 만든 차)’에 약 4500달러의 세제 혜택(보조금 혜택)을 추가로 주겠다는 것이었다. 또한 BBB에는 친환경차 판매량이 20만대를 초과시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조항도 있었다. ‘Union Made Car(노조가 있는 기업이 만든 차)’ 조항에 대해서는 미국 공장에 노조가 있는 GM과 포드는 크게 환영했으며, 노조가 없는 토요타와 테슬라는 반대했다. 한편 ‘20만대 초과시 보조금 제외 조항’에 대해선 20만대의 판매량에 근접한 토요타와 GM이 반대했다. 조 맨친 의원은 BBB에 반대하면서 IRA로의 수정안을 이끌었는데, IRA에선 ‘Union Made Car(노조가 있는 기업이 만든 차)’과 ‘20만대 초과시 보조금 제외 조항’이 모두 사라졌다.
조 맨친 의원의 지역구인 웨스트버지니아주는 토요타의 공장이 위치한 곳이었다. 조 맨친 의원이 토요타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은, 한국 정부와 현대기아차가 현대기아차의 공장이 위치한 조지아주의 의원들을 활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난 10월 현대자동차 등 미국 내에서 전기차 생산을 준비하고 있는 업체에 대해선 IRA의 보조금 지급 관련 조항 적용을 오는 2026년까지 유예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낸 라파엘 워녹 상원의원이 바로 조지아주 출신이다.
결국 조 맨친 의원이 BBB를 IRA로 개정하는데 역할을 함으로서, 토요타는 손해를 덜 보게 됐고 현대기아차는 상대적으로 손해를 뒤집어쓰게 됐다. 토요타는 기존에 보조금을 수령하던 자사의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PHEV)가 ‘Union Made Car(노조가 있는 기업이 만든 차)’와 ‘20만대 초과시 보조금 제외 조항’에 걸려 보조금 수령이 끊길 위기를 벗어났다. 현대차는 기존에 받던 보조금이 끊기게 됐는데, 최대 경쟁자인 테슬라는 보조금을 수령하게 되면서 가격경쟁력의 격차가 엄청나게 커졌다.
조 맨친 의원이 대변하는 토요타의 입장에서는, 전기차 업계의 시장점유율을 막 끌어올리기 시작한 현대기아차가 주춤하는 것이 자사에게 최대의 이득이기도 하다. 조 맨친 의원의 행보가 마치 현대기아차만 정확하게 타격하는 ‘핀포인트’, ‘사다리 걷어차기’로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민간이 혁신에 적응해서 도래한 ‘추월의 시대’, 정치권이 발목 잡아서야?
최근 한국 정부는 IRA 문제에 대해 총력대응을 하고 있고, 유럽과 일본도 함께 손해를 본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항의가 미국에서 ‘이슈’가 됐다고 해명하는 중이다. IRA의 파급효과에 대해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공을 흘리는’ 수준의 실수를 해놓고, 정부의 역할을 방기한 것이 아니라고 변명하는 꼴이다.
한국 자동차업계가 당한 손해는 유럽과 일본의 그것과 동등한 수준에서 놓고 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현대기아차는 기존 완성차업체 중에서 전기차 혁신에 가장 잘 적응한 회사, 사실상 테슬라에 이어서 두 번째 전기차완성차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호평을 바탕으로 북아메리카와 유럽 시장에서 하늘을 찌르는 기세를 보여주려던 찰나, 정부의 역량 부족으로 인해 ‘독박’ 수준의 손해를 감수하고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돌이켜보면 삼성휴대폰은 한때 핀란드의 노키아보다 열세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아이폰이 열어젖힌 스마트폰 시대에 잘 적응하여 노키아가 핸드폰을 포기하는 세상에서도 안드로이드폰 업계의 주요 주자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케이팝과 케이드라마 등 문화산업의 국제적 번성도 유튜브 및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과 같은 뉴미디어의 흐름에 올라타서 이루어졌다.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이 기존 선진국과 대등해지거나 일부 산업 분야에선 추월할 수도 있을 거라는 ‘추월의 시대’라는 전망도 이 흐름 위에서 가능했다. 마찬가지로 현대기아차도 테슬라가 열어젖힌 전기차 혁신의 흐름에서 세계 수위 자동차업체로 도약할 기회를 맞이한 참이었다. 전자업체에서 삼성이 소니를 능가한 것처럼, 현대기아차가 토요타를 능가하는 것도 꿈은 아니었던 시점에 뜻밖의 ‘찬물’을 뒤집어 썼다.
혁신에서 뒤지던 토요타는 시간을 벌었고, 혁신에 적응하던 현대자동차그룹은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국가의 산업정책, 그리고 정치가 경제를 지원하기는커녕 최소한 방해하지는 말아야 한다. 한국의 정부 당국자들은 이 사건에서 올바른 교훈을 얻어야 만이 비슷한 사건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IRA 개정안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이전 상황을 복기하면서 외무부가 사태를 언제부터 파악했는지, 외무부의 보고를 대통령실이 이해하지 못하고 경시한 것은 아닌지 여부까지 확인해봐야 할 것이다.
#IRA #인플레이션감축법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