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가치외교'만으론 부족하다.
[팩트와관점 창간준비 2호]
윤석열 정부, '가치외교'만으론 부족하다.
: 민주당이 친중이었다는 프레임 왜곡은 사기, 미국의 손을 잡되 중국에도 가까이 가는 방안 모색해야
by 「팩트와 관점」 편집부
그러나 민주당 정부가 한미동맹을 훼손했다는 근거가 되는 이른바 ‘친중 경사론’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 베이징대 연설을 토대로 한 ‘민주당 중국몽’ 공세는 청년층의 인식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맥락을 따져봤을 때엔 사실 날조에 가까웠다.
윤석열 정부가 현재 마주친 외교적 문제들은 ‘가치외교’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렵다. 미국 일방주의 시대, 양극의 냉전시대와도 다른 지정학적 다극 체제의 시대에서 실리를 얻는 구체적인 전략이 있어야만 한다. 그런 면에서 윤석열 정부는, 노무현 정부 시기의 외교적 선택을 참조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손을 잡되 중국에도 가까이 가는’ 좁은 길을 발굴해야만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이었던 올해 초 대선 후보 캠페인에서 "민주당 정권에서 무너져 내린 한미동맹을 재건하겠다"라고 말한 바 있다. ‘복원’도 아니고 ‘재건’이란 표현을 쓸 만큼 민주당 정부는 한미동맹을 훼손했다는 인식이 기본에 깔려 있었다.
한편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4일 한미 친선 비영리단체 코리아소사이어티 톰 번 회장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경우 미국과 중국 간 균형을 잡겠다는 명분으로 약간의 흔들림이 있었고, 그 때문에 불편하게 생각하는 한국인이 적지 않았다"라고 평했다. ‘약간의 흔들림’과 ‘불편하게 생각하는 한국인’이란 표현을 쓴 것은 미국 측에서 ‘한미동맹 훼손없다’라는 입장을 밝힐 경우에도 빠져나갈 구멍을 찾기 위한 수사적 기교였다고 볼 수 있다. 오세훈 시장처럼 말할 경우 ‘훼손’이 아니라 ‘약간의 흔들림’이고, 불편하게 생각한 건 ‘미국 정부’가 아니라 ‘일부 한국인’이었다고 발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정치인과 윤석열에 대한 보수언론의 이중잣대
‘직설적인 윤석열’과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 오세훈’에게 명분을 주려는 보수언론의 칼럼과 보도도 넘쳐난다. 지난 6일 <한국일보>에서 이성현 조지HW부시 미중관계기금회 선임연구위원이 <바이든이 문재인을 만나려 했던 이유>라는 칼럼을 썼다. 여기서 이성현 위원은 “당시 워싱턴 조야에서는 한국 정부의 '친중 경사론'에 대한 우려와 대북 관여정책인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유세(遊說)에 대한 '피로감'이 상당했지만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미국 정부가 ‘한미동맹 훼손없다’고 말했더라도 그걸 진심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또한 이성현 의원은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고 장쩌민 전 중국 국가주석의 분향소를 찾아 조문한 것은 ‘공공외교’였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공공외교란 상대방 국가의 정부 뿐 아니라 시민 및 유권자의 호감을 사기 위해 노력하는 외교적 전략에 해당한다. 그런데 과연 이성현 위원이 문재인 대통령이 그와 같이 행동했거나, 이재명 당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어서 그와 같이 행동했을 때에도 ‘공공외교’라고 평했을지는 의문이다. 꼭 이성현 의원이 안 그랬더라도, 보수언론의 논객들은 이 사안조차 민주당 정부의 ‘친중 경사’의 사례로 비판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보수정치세력과 보수언론이 합심하여 이렇게 ‘뻔한 사실관계’조차 부정하면서 ‘민주당 정부는 한미동맹 훼손’이라는 ‘프레임’에 집착하는 행태는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한 두 번의 일도 아니다. 가령 지난 5월 27일 <동아일보>의 이기홍 대기자는 <문재인 정권이 한미동맹 강화시켰다는 궤변>이란 칼럼을 통해 문재인 전 대통령이 과거 바이든 대통령과 한 5.21 공동성명이 의미있는 성과물이었던 것은 사실이나, 문재인 정부가 이를 이행할 의사가 없었고 미국 측도 여전히 불신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워싱턴 조야’의 분위기를 근거로 논지를 전개하면 반박할 방법도 없다. 미국 측이 한미동맹은 굳건하다고 말했다고 반론해봤자 ‘그것은 한국 유권자들을 향한 미국의 공공외교일 뿐’이란 식으로 답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보수정치권과 보수언론의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해 ‘친중 경사’의 프레임을 씌우는데 성공한 계기는, 문재인 대통령 임기 초인 2017년 방중에서 있었던 베이징대 연설이다.
당시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몽이 중국만의 꿈이 아니라 아시아 모두, 나아가서는 전 인류와 함께 꾸는 꿈이 되길 바랍니다. (...) 한국도 작은 나라지만 책임 있는 중견국가로서 그 꿈에 함께 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특히 젊은 층의 생각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한국의 인터넷 커뮤니티 여론에선 “민주당 정부가 중국몽을 지지했으며, 우리 대통령이 한국을 ‘작은 나라’라고 폄하했다”라는 식의 견해가 확산되었다. 그리하여 ‘문재인 중국몽’, ‘민주당 중국몽’이란 말이 거의 자동 완성 검색어 수준으로 청년층의 인지에 심어졌다. ‘민주당의 친중경사’라는 보수언론 수준에서의 담론적 공격보다, ‘민주당 중국몽’이라는 일종의 ‘스티커 메시지’(스티커처럼 사람들의 마음 속에 착 달라붙는 메시지를 일컫는 말)가 만들어진 것이 청년층의 인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베이징대 연설의 진실
그런데 ‘중국몽’이란 말은 본시 현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이 2012년에 발표한 통치이념이자 외교전략이었다. ‘중국몽’은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간 중국이 고수해왔던 ‘도광양회’ (‘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는 뜻으로, 1980년대 중국의 대외 정책을 일컫는 용어)의 노선을 뒤집은 것으로 이해됐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의 당시 연설에서 ‘중국몽’이 언급된 앞뒤 맥락을 보면 이렇게 된다. “중국은 단지 중국이 아니라, 주변국들과 어울려 있을 때 그 존재가 빛나는 국가입니다. (...) 그런 면에서 중국몽이 중국만의 꿈이 아니라 아시아 모두, 나아가서는 전 인류와 함께 꾸는 꿈이 되길 바랍니다. (...) 저는 중국이 더 많이 다양성을 포용하고 개방과 관용의 중국정신을 펼쳐갈 때 실현 가능한 꿈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어서 ‘한국은 작은 나라’라는 예의 문장이 이 뒤에 배치된다.
즉,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은 중국의 노선에 무비판적으로 동참한 것이 아니라,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보편성을 지니려면 주변국들을 배려하고 다양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에둘러 지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오히려 당시의 전후 맥락을 고려하면, 2016년 사드 배치 이후 중국 측이 취했던 ‘한한령’(한국 기업의 생산품, 특히 대중문화에 대해 취해진 비토조치.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이해됐으나, 중국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그런 조치를 취했다는 사실을 부정했다)에 대한 항의의 측면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미중대결 시대에 한국의 입지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가 됐다. 한국은 안보적 한미동맹의 틀을 훼손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한국의 제조업 등 산업에 요구하는 ‘디커플링’을 당장에 실현할 수는 없는 처지다. 애초 미국의 경우도 중국이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기술을 소유하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것이지, 중국의 저가공산품 전체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은 아직까지 만들지 못하고 있다. 한국이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입장에서도 완전한 디커플링은 쉽지 않을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또한 이념을 따라서 두 패로 갈렸던 과거 냉전시대와는 다르게, 미중대결 시대는 미국 일방주의 시대나 양극의 냉전시대와도 다른 다극체제의 양상을 지니고 있다. 가령 일본이 발제하고 미국이 수용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축인 인도의 경우 ‘반중’이라는 전선에선 적극적이지만 러시아와의 관계에선 미국의 반러 포위전략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인도는 러시아산 원유를 싸게 구매하면서 이 정국에서 실리를 추구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가가 미국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등, 지금의 국제정세는 이념이나 진영이 아니라 각국의 지정학적 실리에 따라 여러 결로 요동치고 있다.
‘실리외교’의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입장에선 미중 사이에서 운신의 폭을 가늠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손을 붙잡되, 중국에도 가까이 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한국산 전기자동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파악하지 못한 외교, 국내정치만을 고려하여 중국에 큰소리를 내다 중국에 제조공장이 있는 기업들을 우려하게 만드는 외교로는 안 된다.
윤석열 정부가 보수정치세력과 보수언론이 합작한 ‘민주당 친중경사론’을 부여잡고 있는 한, 그들이 내세운 ‘가치외교’의 폭은 매우 좁아진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는 대통령이 휴가를 핑계로 미국 하원의장 팰로시 의원을 만나지 않는 등 갈팡질팡 하다가 그나마 최근에는 러시아와 중국의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UN 결의안에 거듭 찬성표를 던지면서 방향성을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가치외교’만 강조한다면 그것은 외교적 과제를 수행한 척 하는 자기면피에 불과하다. 가치외교를 하더라도 그 틀 안에서 여러 나라들을 향해 한국의 국익을 실현할 수 있는 세부적인 전략이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치 기간에 있었던 국방력 강화 노선과 동북아균형자론을 돌아보게 된다. 당대에 동북아균형자론은 ‘한국이 미국 중심 세상에서 이탈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미국을 자극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시 부시 대통령과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후손에게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 국방력 강화 노선을 실행하게 됐다. 공군력과 해군력을 강화하기 위해 전략자산을 구매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이명박 정부 때 ‘훼손된 한미동맹이 복원됐으므로 필요없다’면서 구매 취소하는 촌극도 있었다. 세월이 지난 시점에서 본다면 어느 쪽이 더 국익에 부합했는지는 분명하다. 오히려 한미동맹의 관점에서도 한국의 국방력 강화로 인해 미국에게 더 도움이 되는 우방,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우방이 된 측면이 있다. 현재 윤석열 정부가 자랑하는 폴란드를 향한 방산수출의 성과와, 그 이전 문재인 정부 때 있었던 ‘한미 미사일 지침 해제’(사정거리 제한이 사라짐) 역시 그 시대의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지난 2019년 5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10주기에 참석해서 추도사를 낭독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저는 또한 자기 목소리를 용기있게 내는 지도자의 모습을 그렸다. (노 전 대통령이) 목소리 내는 대상은 미국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느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노 전 대통령은 국익을 위해 모든 일에 대해 마다하지 않고 목소리를 냈다. 물론 의견의 차이는 갖고 있었으나 그런 차이점은 한미동맹의 중요성보다 우선되는 가치는 아니었다. (서로) 동맹을 공고히 하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소회했다.
이는 진정으로 존중받는 동맹은 강대국의 노선에 맹종하는 동맹이 아니라, 자국의 국익을 바탕으로 상대방을 치열하게 설득하면서 합의를 도출하는 동맹이란 점을 알려주는 사례라 볼 수 있다. 외교에서 상대방의 신뢰를 얻으려면 요구조건을 들어주는 것과 함께, 우리가 모종의 노선을 가지고 일관적인 선택을 내릴 거라는 믿음을 주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지금의 윤석열 정부가 과연 미국이나 중국, 혹은 일본 등에 그러한 믿음을 주고 있는지 의문이다. ‘한미동맹을 재건’했다는 수사만으로 미국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윤석열 정부는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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