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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권지역구로서의 대선거구제를 생각한다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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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와 관점 창간준비 1호]

생활권지역구로서의 대선거구제를 생각한다.

: '위성정당'에 막힌 선거제도 개혁의 이상, 유권자 효능감 유지하고 중도파 불만 수용할 다른 우회로는?

by 「팩트와 관점」 편집부

정치인들은 개헌과 선거법 개정 등 정치개혁 이슈에 흔히 매몰되지만, 유권자들은 ‘민생’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진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보기엔 ‘민생에 집중하는 정치’를 위해서라도 정치개혁이 필요하다.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수준의 딜레마가 있는 셈이다.

이런 실정에서 조금이라도 유권자들의 관심을 끄는 정치개혁안, 유권자들의 호응을 얻고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정치개혁안은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한국 유권자들이 원하지 않는 ‘3가지 불호’ 주장, 내각제와 국회의원 정수 확대, 비례대표제 강화를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다. 이 주장은 유권자들의 효능감을 훼손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지금까지는 소선거구제 기반에서 비례성을 강화하는 독일식 정당명부제 방향 대안이 선호됐지만, 현실적으로 실현되는 국면에서 ‘위성정당’이란 암초를 만났다. 더구나 최근 정치에서 중도파의 정치적 요구가 소외되고 있다는 ‘중도파의 불만’이란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그렇다면 ‘생활권 지역구’ 이른바 5인 이상 당선자를 내는 ‘대선거구제’라는 대안을 살펴보면 어떨까? 의외로 지금까지 논한 조건들을 잘 실현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많은 정치인들, 국회의원과 정당인들은 제도적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느낀다. 이중 권력구조 개편은 ‘개헌’ 이슈에 해당하고, 선거제도 개편은 ‘선거법 개정’ 이슈에 해당한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같은 기구가 구성되거나, ‘개헌연대’가 언급될 경우 해당 논의에 대한 의원들의 집중도는 높아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정치개혁 의제는 유권자들의 관심에 와닿지 않는다.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집중해주길 바란다. 이른바 ‘민생’ 문제다. 그런데 막상 정치인들은 활동을 하다 보면 정치개혁이 선행되지 않으면 정치인이 민생 문제에 집중할 수 있는 풍토가 오기 어려울 거라 느낀다. 그래서 다시 정치개혁 문제를 꺼내들게 되며, 그것이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현실이 갑갑해진다. 일종의 ‘고양이 목의 방울 달기’의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좋을까. 익숙한 제도는 유권자들에게 관성으로 작용한다. 경로의존이라고도 한다. 유권자들이 현행제도에서 느끼는 효능감과 불만이 동시에 있다. 정치영역에서 ‘효능감’이란 ‘나의 정치적 선택이 정치인 및 정치세력을 움직이고, 이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보는 신념 혹은 기대감’에 해당할 것이다. 이때에, 정치개혁론자들이 내세우는 제도가 그 ‘효능감’의 부분을 수정하겠다고 나온다면 그 제안은 외면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유권자들의 ‘효능감’과 ‘불만’을 섬세하게 분석하고, 효능감을 유지하면서 불만을 수용하는 방향으로의 제도개혁 안을 제출해야 한다. 그래야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고 설득의 대상을 점점 더 넓혀서,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다는’ 어려운 과업을 성취할 수 있다.

3가지 ‘불호’ 주장을 통해 살펴본 한국 유권자의 효능감과 불만

현 시점에서, 한국 유권자들이 바라지 않는 ‘정치개혁론자들’의 주요한 3가지 주장이 있다. 이것은 논리적인 분석이 아니라 경험적인 분석이다. 그 3가지는 이러하다. 첫째, 한국 유권자들은 적어도 현 시점에선 내각제를 원하지 않는다. 둘째, 한국 유권자들은 아직까지는 국회의원 정수 확대를 용인할 생각이 없다. 셋째, 한국 유권자들은 비례대표성을 강화하는 일에도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다.

이 3가지 ‘불호’ 주장에 대한 이유를 분석하면 유권자가 현 제도에서 느끼는 효능감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한국 유권자들이 대통령제를 내각제보다 선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통령은 유권자가 선출하지만, 내각제의 총리는 의원들이 뽑기 때문이다. 한국 유권자들은 내각제로의 전환을 ‘국회의원들이 내게서 대통령 뽑을 권리를 박탈하는 것’으로 느낀다. 여기에 대고 ‘합의제 민주주의 / 다당제 / 내각제’의 가치를 선호하는 ‘정치개혁론자’들이 “그래서는 안 돼요. 대통령제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우리는 더 아름다운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해요”라고 해봤자 설득이 되지는 않는다. 대통령 직선제에서 느끼는 막대한 ‘효능감’ 때문이다. 우리는 적어도 이 조건을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국회의원 정수 확대에 반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 유권자들은 국회의원이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에 대해선 내가 뽑은 대통령이 선출될 경우엔 막대한 효능감을 느끼지만, 국회의원에 대해선 그만한 신뢰나 기대가 없기 때문에 그 영역을 확장하는 것 자체에 반대한다. 심지어 과거 정의당에서 ‘국회의원 1인당 보좌진 수를 줄여서 인건비 총액은 지금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전제 하에 의원수 정수 확대’라는 우회로를 시도해봤는데도 잘 먹히지 않았을 정도다. 우리는 이 조건도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비례대표제에 대한 불호는 위의 두 불호에 비해서는 약한 편이다. 사람들이 비례대표제 확대에 비판적인 이유는, 비례대표제 자체가 몹쓸 것이라 생각한다기 보다는 현실적으로 비례대표제 강화 주장이 ‘국회의원 정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비례대표제 자체에 대한 불호의 감정도 상당히 깊어지고 있다. 한국 유권자의 비례대표제에 대한 불호의 감정은 ‘유권자인 내가 선출하는 국회의원이 아니라, 정당이 지명하는 국회의원’이라고 느낀다는 데에 있다. 이렇게 본다면 이 불호의 감정의 근원도 내각제에 대한 불만과 상당히 유사한 것이 된다.

거듭 말하지만, 현실적으로 정치개혁이란 것이 성립하려면 ‘이상적인 민주주의 원칙’이 아니라 ‘우리 유권자의 인식과 욕망을 설득할 수 있는 제안’을 내놓아야 한다. 개헌안에 대해서도 그러하고 선거법 개정 문제에 대해서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대선보다는 총선이 더 당면한 일정이기 때문에, 이 글에선 먼저 선거법 개정 문제에 대해서 논할까 한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라는 모범답안이 맞닥트리게 된 위성정당이라는 난관

먼저 선거법 개정 문제에 대해선 ‘지금까지의 모범답안’이 존재한다. 정치학계와 진보진영의 합의에 가까웠던 ‘독일식 정당명부제’가 그것이다. 이는 현행 ‘소선거구제 단순다수대표제’라는 경로는 인정하되, 여기에 정당 명부 투표의 비례대표성을 강화하여 다당제 요소를 끌어들인다는 것이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필두로 한 친노친문 그룹은 지역주의를 깨뜨리겠다는 목적을 위해 중대선거구제를 고려하기도 했으나, 그러한 의견은 ‘일본적 보수성’(자민당 중심의 보수정치, 지역구 세습 등)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비판을 흔히 받았다. 물론 당시 친노친문 그룹의 중대선거구제 제안이 당면한 지역주의 타파라는 목표에만 매몰되어 있는 등 세련되지 못한 면도 있었다.

그런데 ‘독일식 정당명부제’ 등 소선거구제 단순다수대표제를 유지하면서 정당 투표의 비례성을 강화하는 길을 따라간다고 해서 한 번에 제도를 바꿀 수는 없었기 때문에 당면하게 된 난관이 바로 ‘위성정당’ 논란이다. 위에서 지적했다시피 한국 유권자들은 ‘표의 비례성’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라도 ‘국회의원 정수 확대’를 용인할 의사는 없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비례성을 강화하기 위해선 254석의 지역구를 200석 정도로까지는 축소했어야 했는데, 이는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를 심하게 저해하는 것이므로 실현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준연동제’라는 발상이 생겼고, ‘준연동제’라도 46석 밖에 안 되는 비례의석으로 실현될 경우 거대 양당의 손해가 막심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캡’을 씌워야 하는 우회로가 고민됐다. 그리고 46석을 나눠서 ‘캡’을 씌우는 이 복잡한 계산 방식을 취하게 되니 맞이하게 된 ‘필연적인 제도적 꼼수’가 바로 위성정당이었던 셈이다.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위성정당을 비판하다가 결국 자신들도 위성정당을 만들게 됐다. 이른바 ‘내로남불’ 논란이 심해질 수밖에 없었고, 이재명 대표는 대선후보 시절 위성정당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정당이 선거과정에서 의석수에서 손해가 날 수밖에 없는 선택(상대방은 위성정당을 만드는데 우리는 만들지 않는 것)을 다만 윤리적인 결단으로 매번 내릴 수 있다고 믿기는 어렵다. 한 번 정도는 손해를 감수할 수 있을지 모르나 언제나 제도 내부에서 위험성과 파탄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유권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경쟁한 정당’이 의석수에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의 제도 개선을 도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행제도의 틀 안에서 ‘위성정당 방지법’을 만들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봤자 그 방지법을 우회하는 ‘위성정당이 아닌 척 하는 위성정당’까지 막기는 어렵다. 오히려 46석 비례의석에서 그런 장난을 치면 그보다 훨씬 규모가 큰 지역구 의석에서 유권자들의 징벌을 받을 수 있는 선거제도를 고민해보는 것이 더 실질적인 일이다.

중도파의 불만을 수용하기 위한 정치개혁의 필요성과 가능성

한편 최근 한국 정치권의 관성적 무력을 극복하기 위해선 중도파 유권자들의 의사가 관철되는 정치지형도를 복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과거의 한국 정치, 구체적으로 볼 때 1997년 대선에서 2012년 대선까지의 한국 정치는 양당의 강성 지지층 사이에서 중도파와 연성 지지층이 승자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타협적인 정치 구도가 ‘불만’인 급진주의자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방식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2022년 대선 이후부터는 새로운 상황이 펼쳐지게 됐다. 미국 등의 사회에서도 관측되고 있는 바, SNS와 유튜브로 뉴스를 소비하는 시대엔 ‘필터 버블’이라고 하여 정보를 편식하는 경향이 심화되고 ‘믿고 싶은 것을 믿게 되는’ 이들이 늘어나게 됐다. 한 사회를 살고 있지만 전혀 다른 정보 생태계 내부에서 각자의 신념을 강화하는 이들의 숫자가 늘어나게 됐다. 미국에서도 민주당 지지층과 공화당 지지층 사이의 생각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고 전망을 하는데, 한국 사회의 민주당 지지층과 국민의힘 지지층 사이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펼쳐지게 됐다.

과거의 여론지형은 일종의 단봉 낙타 형태, ‘U’를 뒤집은 형태였다고 볼 수 있다. 이 경우엔 거대양당이 경선 단계에서부터 중간 봉우리에 존재하는 유권자들이 선호하는 후보를 선호할 수 있었다. 경선 과정에서 중간 봉우리를 만족시키는 후보가 나오고, 그렇게 선출된 거대 양당당의 두 후보 중에서 중간 봉우리 유권자들이 당선자를 결정했다.

2022년 대선 이후의 여론지형은 일종의 쌍봉 낙타 형태, 즉 ‘W’를 뒤집은 형태가 됐다. 중간봉우리는 약해졌고 ‘왼쪽 봉우리’와 ‘오른쪽 봉우리’가 갈라서서 극단적 지지층이 원하는 후보가 선출됐다. 중도파가 2022년 대선에 싫증내면서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고 말하게 된 원인은, 이런 경우엔 중도파가 ‘누구를 더 견딜 수 없는지’라는 굉장히 정서적인 잣대로 투표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당의 선거캠페인도 합리적인 방식으로 진행될 수 없었고, 서로에 대한 미움과 경멸의 감정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사회통합에서 가장 거리가 먼 방식의 선거캠페인이 진행됐으며,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승복의 과정이 일어나지 않고 강성지지층에 휘둘리는 두 정당이 관성적으로 대립하는 구도가 반복되게 됐다. 이것은 유권자의 1/3에 해당할 중도파들의 정치적 효능감을 심각하게 박탈하는 지형도이기도 하다. 중도파들은 최근 한국 정치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 있으며, 민주주의 제도가 있더라도 선거나 투표 자체가 거의 무의미하다고 느끼고 있다.

발상의 전환, 5인 이상 당선자가 나오는 ‘생활권지역구’ 선거제

국회의원이나 정당의 선택이 아니라 유권자들의 선택으로 당선자가 결정되는 효능감을 뺏지 말아야 한다는 점, 그러면서도 중도파들에게 ‘상실한 선택권’을 돌려줘서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선거캠페인을 복원해야 한다는 점을 두루 고려할 때, ‘5인 당선자를 배출하는 대선거구제’(흔히 중대선거구제라고 말할 때, 2~4인의 당선자가 나오는 지역구를 중선거구제, 5인 이상 당선자가 나오는 지역구를 대선거구제로 본다)가 오히려 대안이 될 수 있다. 2인 당선자 중선거구제를 시행할 경우 ‘보수양당의 의석 나눠먹기’라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대선거구제의 경우 그러한 비판과는 거리가 먼 결과를 낳을 수 있다.

‘5인 당선자 대선거구제’라고 할 경우 ‘100만 인구의 50개 정도의 지역구’로 재편되게 된다. 이 점에서 ‘대선거구제’라는 표현보다 ‘생활권지역구’와 같은 표현을 제시하는 것도 고려해봄직하다. 인구가 많은 수도권 기준이긴 하지만, 시민들의 생활권은 서울의 한 구나 거주하는 시의 영역에 있는 반면 지역구는 더 잘게 나뉘어져 있는 경우가 보통이다. 인구 변동으로 인해 지역구가 재지정되는 과정에서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전형적인 ‘게리멘더링’의 풍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와 같은 폐해를 방지하는 ‘생활권지역구’로의 전환이라는 수사가 필요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상 수도권과 광역시를 제외하면 ‘100만 인구의 지역구’를 엮어내기가 어렵다. 그런 점에서 지역에서는 ‘보수양당의 의석 나눠먹기’라고 비판받지는 않을 규모, ‘60만 인구의 3인 당선자 중선거구’를 섞지 않을 수 없다. 거칠게 나눠보면 수도권과 광역시 거주민의 총합이 약 3560만, 그 외 지역 거주민 총합이 약 1580만이다. 전자를 5인 당선자 35개 지역구, 후자를 3인 당선자 26개 지역구로 나눌 경우 지역구와 지역구 의원 숫자는 61개 지역구의 253인이 된다.

이 대안을 섬세하게 고려해보면 위에서 논한 조건들을 잘 충족하면서, 가치론의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결과를 산출하리라 기대할 수 있다. 먼저 이 경우 거대양당은 한 지역구에 적어도 3인 정도의 후보를 공천할 것이고, 되도록 많은 수를 당선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려면 강성 지지층이 지지하는 후보와 연성 지지층이 지지하는 후보, 그리고 중도파가 지지하는 후보를 두루 배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당 내부의 다양성이 살아나고, 중도파들의 정치에 대한 효능감도 부활할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효능감 측면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가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비유적으로 수도권과 광역시에서의 선거 양상이 과거의 복싱 시합(1대1 대결)에서 농구 시합(5대 5 대결)으로 변하면 직능/세대/젠더 등 다양한 요소들이 더 잘 대의될 수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여러 종류의 지지층의 눈치를 더 보도록 만들면서도, 소수정당들에게도 기회를 줄 것이다. 비록 비례대표가 늘어나지 않더라도 비례대표가 추구하는 종류의 다양성을 제공해줄 것이다.

둘째로 이 제안은 중도파 뿐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도 유권자들의 효능감을 떨어뜨리기보다는 증대시킬 것이다. 물론 소선거구제의 직관적인 효능감을 무시할 수는 없으나, 다른 방향의 설득이 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영호남 지역구로 대변되는 한 정당의 지지율이 압도적 우위인 지역구에서도 유권자를 만족시키기 위한 경쟁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거의 1/3 가량의 지역구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정치적 경쟁이 더 치열한 형태로 발생하게 될 것이다. 경선 뿐 아니라 본선에서도 당내 주자들끼리의 경쟁이 전체 유권자를 대상으로 가능해질 것이다.

정당 민주주의 강화하는 제도 될 수 있으나, 유권자들의 거부감이나 박탈감을 피하기 위해 노력해야

당연히 ‘좋은 정치’는 제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는 과정에서 ‘좋은 사람’을 선발해야 가능하다. 제도는 제각각 장단점을 가지며 그 자체로 좋은 제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 정치의 실정에서는 적어도 당분간은 수도권에서는 물론 특정 정당 우위의 지역정치에서도 당내 주자들끼리의 경쟁이 일어나는 것이 더 ‘좋은 사람’을 선발하는데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된다면 이러한 제도변혁은 실질적으로 정당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이 경우 할당제는 비례대표제가 아니라 지역구에 결합해서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청년할당’과 ‘여성할당’은 현실적으로 비례대표 의원에 결합될 수밖에 없었고, ‘유권자가 아니라 정당이 지명한 할당제 청년/여성’이란 범주는 유권자들에게 환영받을 수 없었다. 양질의 인사가 공천되기보다는 당권을 쥔 양당 주류 정치인에 순치된 인사가 공천되고 있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할당제가 지역구 후보를 향할 경우 이런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될 수 있다. 특히 지금까지는 가장 보수적이고 나이든 후보가 출마하던 영호남 지역에서 청년 할당 공천이 긍정적인 역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상대당에 대한 비토가 가장 강한 영호남 지역에서 오히려 소수정당 출신 청년 후보가 바람을 일으켜 3인 이내 당선자가 되는 일도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다. 이러한 조류가 온다면 ‘지방소멸’이 현실화되는 이 시기에 지역사회에 새로운 활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역시 할당제에 대한 인식을 극복하는 것을 넘어 중앙정치와 지역정치의 관계설정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결과를 줄 것이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우리 동네에 편의시설을 유치하고, 혐오시설을 반대하는 것보다 좀더 넓은 문맥에서 정치를 하게 될 것이다. 지방자치의 자율성이 증대되고, 국회의원이 시도의원들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현실을 타파하는 파생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 메가시티끼리의 경쟁, 지방소멸을 극복하기 위한 지역거점도시의 설정 등이 필요한 현 시국에 대처하기에도 적절할 것이다.

여러 장점이 있는 제안이지만 유권자들의 거부감을 피하기 위한 전략적인 대응도 중요하다. 먼저 기존 소선거구제 단순다수대표제의 직관적 단순성을 지나치게 훼손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대선거구제가 논의되면 한 지역구에서 2~3표를 행사할 수 있게 한다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선호투표제’에 대한 상상력이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일단은 유권자 1인 2표(후보 1표, 정당 1표)의 틀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너무 많은 표를 제도적으로 허용하면 유권자들의 계산이 복잡해질뿐더러, ‘내 손으로 직접 승자를 선택한다’는 효능감을 사실상 뺏어가는 제도라는 반감을 가지게 될 가능성도 크다. 인구밀도가 낮은 농어촌 지역의 지역성을 탈색시키면서 생기는 박탈감 역시 별도로 섬세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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