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그인
Thoughts, stories and ideas.

'통합의학'을 목표로 '현대한의학'의 길을 걷는, 황만기 박사(서초아이누리한의원 대표원장)

편집실
편집실
- 38분 걸림 -
황만기박사(서초아이누리 대표원장) / 인터뷰 : 한윤형 넥스트브릿지 기획위원
넥스트브릿지의 회원 동정 코너인 ‘잇는 사람’은 회원들 각자의 생활과 연구,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지지와 협업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이번 준비 7호에는 서초 아이누리 한의원 대표원장이신 황만기 박사님과의 인터뷰를 싣습니다. 2020년 3월부터 현재까지 서강대학교 전인교육원 겸임교수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황만기 원장님의 서초동 사무실(서초 아이누리 한의원)을 한윤형 기획위원이 5월말 평일 저녁에 찾아가 인터뷰를 했습니다.

Q. 먼저 한의학을 선택하신 이유가 어떻게 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모종의 사회적 관심도 있으신 거 같은데, 그것은 어떻게 형성되셨는지도요.

저는 원래는 양방 신경정신과 전문의(대학병원 교수)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중국의학 5천년>이라고 하는 MBC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시청하게 되었습니다. 그걸 보고서, 한의학 분야가 굉장히 매력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그리고 아주 흥미롭게 현대과학적으로 잘 연구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세계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로 한의과대학으로 진로를 바꾸게 되죠.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입학이라는, 제 자발적 선택은, 지금 생각해봐도, 제게는 매우 좋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제 적성에도 잘 맞았고, 호기심이 많고 도전 정신이 강했던 제가 지향하는 인생의 가치관과 방향성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던 유익한 학문이라는 생각을 지금도 합니다. 앞으로 더 즐겁게 연구할 거리가 충분히 많이 남아 있는 미발굴 상태니까요. 광산을 가봐도 금이나 다이아몬드가 막 널려 있는 것이 아니라 돌 속에 섞여 있지요. 그런 것들을 잘 발견해서 정제하는 연구 작업을 더욱 열심히 진행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제 또래가 한의과대학에 입학하자마자 1990년대에 한약분쟁이란 게 생겨서 약사분들과 엄청 싸우게 됩니다. 한약분쟁은 김영삼 정부 때, 그러니까 1993년도에서부터 1년 정도, 그리고 1995년에서 1996년 사이에 1년반 정도 이렇게 두 번에 걸쳐서 진행됐습니다. 핵심적인 쟁점은 약사가 한약장을 제도적으로 들여놔서 쓸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것이었죠. 우리는 그 실력이 국가적으로 공인이 안 된 약사가 한약을 사용할 수 없다고 반대했습니다. 그때 상당히 세게 투쟁을 했거든요. 1년 반 동안 수업 거부도 하고 미등록 제적 투쟁을 했습니다. 당시 4천여명의 한의대생이 유급당하고 120여명의 한의대생이 제적을 당했는데, 저도 미등록 제적당한 사람이었죠.

대한한의사협회 황만기 부회장은 지난달 27일 서울여성플라자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대표상임의장 이종걸, 이하 민화협) 제25차 정기 대의원회(공동의장 홍주의)에서 통일부장관표창장을 수상했다. ⓒ https://www.facebook.com/allergyfreeOMD

이 과정에서 사회적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우리가 이렇게 공부를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연구 작업을 한다 해도 사회에서 그것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의미를 발현하는 것이 힘들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때 투쟁의 결과로 긍정적인 것도 있고 부정적인 것도 있는데, 가장 긍정적인 것은 국립 한국한의학연구원이 처음으로 생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1990년대 이전 한의학과 그 이후 한의학이 또 많이 다르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추정을 합니다. 그때까진 한의과대학과 한의사란 제도만 있었을 뿐 국가 연구기관이 하나도 없었죠. 그때 투쟁을 통해서 생긴 국립 한국한의학연구원은 오늘날 매년 450억 정도의 국가 차원에서의 예산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그전까지는 우리는 완전히 비제도권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경희대의 경우 의대도 있고 치대도 있고 한의대도 있는데, 똑같이 6년을 다녀야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의대나 치대는 졸업하면 공중보건의나 군의관을 졸업생 전원이 모두 갈 수 있었는데, 한의대를 졸업하면 거의 갈 수가 없었어요. 그 당시의 투쟁 이후에는 (물론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서) 한의대 졸업생들도 이제는 모두 갈 수 있게 권리를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전까진 국립 한의과대학이 없었고 전부 사학재단이었는데, 투쟁의 결과로 국립 부산대학교에 한의학전문대학원이 만들어졌죠. 이후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해방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 한방 주치의가 제도적으로 당당히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그때의 투쟁이 여기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역동적 과정을 통해서, 사회적 관심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던 것 같고요.

또 하나 흥미로운 부분이 있는 게, 해외 의료 봉사를 다니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저는 시간이 허락되는 대로, 캄보디아를 비롯한 저개발국가들에 가서 한방 의료 봉사를 했었는데요. 양의사 선생님들도 보통 같이 가시지만, 환자 대기줄은, 한의 진료실 쪽으로 훨씬 길게 섭니다. 환자들이 더 몰린다는 거죠. 왜냐하면 양의사 선생님들은 병원의 시스템을 그대로 들고 가지 않으면 해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거든요. 치과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죠. 그 무거운 기구들을 들고 가는 건 상당히 어렵지요. 비용적으로도 문제가 되고요. 반면 한의사 선생님들은 침구(鍼灸)와 한약제제만 잘 준비해서 포장해가면 되니까 한의사분들이 훨씬 더 의료 봉사 현장에서 환영을 받게 되더라고요.

2019년 미얀마한의약해외의료봉사 ⓒ https://www.facebook.com/allergyfreeOMD

그런데 제가 한의과대학 재학생 시절부터 의료 봉사를 주기적으로 다니면서 사회복지사 선생님들과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을 많이 만나게 됐어요. 그분들이 사회복지관 등에서 또는 직접 집으로 찾아가서 사회경제적 조건이 어려운 처지의 아이들에게 무료로 ‘성문기초영문법’이나 ‘수학의 정석’ 같은 것을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시는 활동을 하는 것이 매우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래서 한의사가 된 이후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해서 사회복지사 석사도 마치고 사회복지사 자격증(1급)도 땄습니다. 그런데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다 보니 한의학과 접근 방식이 유사한 것 같은 거예요. 한의학과 사회복지학이 맞닿은 그 측면은,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차이이기도 한데요. 한의학은 그 사람에게 현재 남아 있는 힘, 그러니까 면역력이라 할 수 있죠. 이걸 최대한 이끌어내고 강화시키고 조절시켜서 외부의 상황 변화에 대해 똘똘하게 잘 반응할 수 있는 건전한 면역시스템을 만드는 게 아주 중요한 치료 방법입니다. 그렇게 해서 스스로 싸울 수 있게 하는 힘을 주는 거죠. 그런데 사회복지학에서도, 어렵고 힘든 분들에 대해 무한정 도와줄 수만은 없으니까 ‘강점 관점’(strength perspective)이란 전략적 방향을 취합니다. 단점만 개선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적게라도 남아 있는 강점을 발견해내고 이걸 강화시켜 주려는 태도죠. 이것이 면역력을 강화하려는 한의학의 기본적 방향과 맞닿아 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회복지사 분들을 존경하다가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그 틀에서 사회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게 됐습니다.

Q. 그런데 원장님 이력에서 독특한 부분이, 의과대학 공부도 하셨더라고요. 흔치 않은 일일 것 같은데, 이건 어떤 의도로 하신 걸까요.

정확히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일반대학원 의학박사 수료입니다. 이 과정은 의과대학 학부 과정이 아니라서, 졸업하거나 수료했다고 해서, 양의사로서 활동할 수 있는 그런 과정은 아니고요. 의과대학의 대학원 과정이니까, 순수하게 공부를 하러 간 거죠. 제가 공부한 과정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의학 교실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세부 전공이 의사학, 즉 의학의 역사에 대한 공부였고, 두 번째는 의료 윤리에 대한 공부였으며, 세 번째는 의철학 공부였어요. 당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일반대학원 과정에서 한의사는 저 포함 세 명 밖에 없었으니까, 한의사로서 의과대학 대학원에 진학해서 이런 공부를 수행한다는 것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고, 다소 독특한 케이스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껏 의학박사 학위 논문은 제출하지 못해서, 그와 관련된 질문을 이렇게 받게 되니, 다소 쑥스럽고 부끄럽네요.

ⓒ https://www.facebook.com/allergyfreeOMD

제 의학박사 학위논문 주제는, 1945년 대한민국 해방(광복) 이후에 남북한이 정치적으로 분할되면서 한의학이 두 정치 체제에서 어떤 식으로 다르게 제도적으로 발전해 나갔는가 하는 거였습니다. 남한에서는 한의학이라 부르지만 북한에서는 고려의학이라고 부르거든요. 해방 이후 남북한의 한의학 및 고려의학의 제도 변천사 비교를 박사논문 주제로 삼았어요. 그 논문 주제를 보다 심층적으로 잘 다루기 위해서 북한 쪽 자료를 열람하고 인터뷰도 수행하기 위해서 2006년에서 2007년까지는 평양과 개성을 총 2회 방북하기도 했습니다. 북한 현지의 보건소 소장님들과 말씀도 나누고 자료도 얻고 했었는데요. 그 2007년 이후 지난 16여년 동안 남북관계가 다소 경색 상태이다 보니, 더 이상 방문도 하지 못하고 있지요. 하루빨리 평화 무드가 조성되어서, 제가 의학박사 학위논문을 제출하고 꼭 졸업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Q. 이제 아마 이런 질문을 예상하셨을 텐데, 유독 우리나라가 양의사와 한의사 간 갈등이 심한 것 같거든요. 일본에 비해서도 그런 거 같은데, 이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 그리고 그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너무 심하죠. 이건 보건의료계 전체 차원으로 봐도 바람직하지 않죠. 서로가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장점을 취하면서 나가면 국민분들에게는 훨씬 더 좋을 텐데요. 거의 정치적 진영 논리에 맞먹는 수준의 갈등 상황이 있어서 매우 안타깝죠.

일본과 우리의 차이는,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로 의료체계가 강제로 일원화가 됩니다. 일본도 메이지유신 이전에는 한의학이 주류의학이었거든요. 일본에선 황한의학(皇漢醫學)이라고 표현합니다. 중국에선 중의학(中醫學)이라고 하고요. 여하간 일본은 이 황한의학(皇漢醫學)을 양의학과 분리시킨 것이 아니라 양의학 시스템에다가 강제적으로 통합을 시켜버린 것이기 때문에, 그후 한의사는 단 한 명도 배출이 안 됐지만 대신 일본의 81개 의과대학 중에서 한의학을 안 가르치는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양방 의사 선생님들이 한약을 자유롭게 쓰시죠. 일본의 양의사 선생님들이 한의학과 한약에 대해 쓴 연구 논문, 관련 도서들도 엄청 많지요. 우리나라에 번역도 제법 많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양의사 선생님들은 이런 부분은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여하간 일본은 이렇게 제도적 일원화가 되어 있으니 양의사 선생님들이 양약과 한약을 병용 투약하는 경우도 대단히 많지요. 일본이 우리와 사이는 별로 안 좋아도 노벨상을 25개 넘게 받은 과학 선진국이고, 그중 노벨 생리의학상만 해도 무려 5개를 받지 않았겠습니까? 그런 과학 및 의학 선진국에서도 한의학적 지혜와 기술을 매우 폭넓게 질병 치료에 잘 활용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에서도 2015년에 투유유(屠呦呦) 여사라는 중의학자가 한약을 활용한 연구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어요. 흔히 ‘개똥쑥’이라고 불리는 ‘청호(靑蒿)’라는 한약재에서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이라고 하는 항말라리아 성분을 추출한 연구였죠. 이런 사실도 국내 양의사 선생님들은 잘 모르셔요. 학술적인 차원에서의 차분한 논의보다는 그저 정치적 차원에서의 적대감과 거부감만 표현하고 계신 경우가 많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제 친구들 중에서도 양의사들이 굉장히 많은데요, 저 같은 한의사는 한의과대학에서 6년간 동의보감이나 달달 외우는 것으로 착각하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전통 문헌을 그냥 반복 암기하는 수준의 커리큘럼일 거라 오해합니다. 하지만 이미 수 십년 전부터 한의학의 현대과학적 차원에서의 치료적⦁예방적 가치를 제대로 잘 확인할 수 있는 훌륭한 연구들이 세포실험⦁동물실험⦁임상시험 등을 통해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SCI 국제의학저널에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발표(게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북아시아 지역(중국⦁한국⦁일본 등)에서의 한의학 뿐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에도 자국만의 전통의학 시스템들이 산발적으로 존재하고 있어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스페인, 러시아 등의 유럽 국가에서는 동종 요법과 함께 허브를 통해 치료하는 시스템도 있는데요, 이런 것들은 각각 해당되는 나라에서의 전통의학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은 역사가 그리 오래된 나라가 아니라서, 자국의 전통의학 시스템은 특별히 없는 상황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한의학에 대해서 엄청난 연구비를 투자해서 놀라울 정도로 (메이저 의과대학원들과 유명 병원들 및 주요 보건의료 관련 공공기관들을 중심으로 해서) 열심히 연구하고 있고, 유럽의 전통의학도 막대한 예산을 집행하면서 치열하게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연구 성과들도 이미 많이 나와 있습니다. 여러 나라들에서의 전통의학에서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질병 치료를 위한 지혜와 실질적 치료 방법들을, 현대과학적으로 충분히 잘 검증(안전성⦁유효성)하고, 환자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하려는 시도를 오래 전부터 수행하고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 의대, 존스 홉킨스 의대, 듀크대 의대 등 글로벌 탑 의과대학에서도 그러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도, 현대 양의학에서 잘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난치성 질병을 해결하기 위해서 전통의학 관련된 연구를 많이 합니다. 결국, ‘통합의학’의 방향으로 진행되는 연구가 많아요.

황만기 박사의 2건의 특허 ⓒ https://www.facebook.com/allergyfreeOMD

그래서 저는 다음 두 가지를 반드시 분별해서 언어화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요. ‘전통의학으로서의 한의학(전통한의학)’이 있고, 그것(전통한의학)을 현대과학적으로 재검증한 ‘현대한의학’이 실질적으로는 별도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 두 가지(전통한의학⦁현대한의학)를, 철저하게 다른 카테고리로서 분류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한의사는, 조선시대 이전의 전근대적 패러다임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전혀 아니라, ‘현대한의학’을 한의과대학에서 충분히 공부하고, 매우 빡빡한 수 많은 시험들을 무사히 잘 통과해서 졸업한 전문가라는 인식을 가져 주셨으면 해요. ‘전통한의학’이란 임상적인 피드백은 많이 거쳤지만 비균질적인 건강 정보 꾸러미라고 볼 수 있죠. 그러나 ‘현대한의학’은 안전성⦁유효성⦁경제성 평가를 엄격하게 거치면서 동시에 세포실험⦁동물실험⦁임상시험⦁메타분석 등도 충분히 진행해서 그 학술적 연구 결과들을 정밀하게 모아놓은 균질적인 정보의 광산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세계적 명성을 가진 국제의학저널(SCI)에 실리고 있는 한의학 관련 수 많은 논문들이 바로 ‘현대한의학’적 성과들을 대표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나 영화 등 많은 미디어에서는 아직도 한의학을, 너무 ‘전통한의학’적인 프리즘을 통해서, 뭔가 신비한 것으로만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의학에 대한 양의사들의 오해와 무지와 편견은, 바로 이러한 문화적 인식 오류에서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일종의 문화 지체(文化 遲滯) 현상이지요. 그래서 저는 늘 제 양의사 친구들에게 말합니다. (현대한의학에 대해 알고 싶다면) “드라마나 영화만 보지 말고, 제발 현대과학적인 한의학 논문을 읽어보아라!”

Q. 한의학에 대해 우려하시는 분들 얘기를 들어보면, 한약재 중에서 실은 오래 먹으면 특정 장기에 안 좋은 건데 그걸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이 잘 모르고 경동시장 등에서 구입해서 장복하다가 건강을 상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도 하던데요?

그러한 오해들도, 21세기 한약(전문한의약품)이 어떻게 현대과학적으로 그리고 얼마나 제도적으로 엄밀하고 철저하고 위생적으로 관리되고 있는지를 전혀 몰라서 생긴 착각일 뿐입니다. 1960~70년대 이전의 소위 경동시장식 한약 관리 시스템이라면 그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어쩌다 간혹 발생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건강에 좋지 않은 한약재가 버젓이 일반인들에게 유통된다는 말 자체가, 대한민국 식품의약품안전처를 너무 우습게 보는 발상이지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그런 일은 사실상 있을 수 없습니다.

특히 한의원과 한방병원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이미 품질과 안전성을 인정받은 ‘규격품 한약(전문한의약품)’만을 법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 ‘규격품’은 hGMP라고 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법적으로 엄격히 정해놓은 (일정 수준 이상의) 고도의 위생 설비를 제대로 갖춘 한의약 전문 제약회사에서 생산되는 것입니다. 즉 표준화(규격화)되고,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고, 품질(효과성)도 일정 부분 이상이란 것이 유효 성분 추출을 통한 검증을 거쳐서 과학적인 확인이 충분히 이루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한의원이나 한방병원에 공급되는 것입니다. 예전에, (몇 해 전에 이미 돌아가신) 저희 장인 어른께서 은퇴하시고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면서 당귀나 인삼 같은 한약재도 소소하게 재배하셨었는데, 그것들을 사위인 저한테 가져다 쓰라고 말씀하셨었는데요, 그것을 장인 어른 말씀 그대로 가져다가 한의원에서 사용하면 바로 불법이 되는 것이라서, 잘 말씀드리고 장인 어른의 제안을 거절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즉, 재배된 한약재들은 일단 hGMP 설비를 갖춘 한의약 전문 제약회사에서 품질(상품⦁중품⦁하품)에 따라 수거를 해가고, 엄밀한 세척 과정을 포함한 여러 가지 단계의 안전성 검사 과정을 거치고, 유효 성분 검증도 시행합니다. hGMP 설비를 갖춘 한의약 전문 제약회사에서 안전성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아예 공급 자체가 안 되는 시스템인 것입니다. 적어도 한의원이나 한방병원에서 처방되는 한약(전문한의약품)이 혹시나 안전성 검증이 제대로 잘 안 되었을 것이라는 걱정은 전혀 안 하셔도 됩니다,

Q. 질병에 걸리지 않은 건강한 일반인들이, 보다 높은 수준의 건강 관리를 위해서, 꾸준하게 영양제처럼 복용할 만한 한약 처방이 있다면 어떤 한약 처방을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경옥고’를 제일 무난하게 추천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허준 선생님의 동의보감에 나오는, 수 없이 많은 한약 처방들 중에서 제일 첫 번째로 기재된 한약 처방이 바로 경옥고입니다. 그래서 더욱 유명하게 되었지요. (경옥고가 심신을 모두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좋은 효능을 잘 발휘해서 결국) 경옥고를 복용한 사람의 얼굴빛을 밝게 만들어준다 또는 백옥처럼 윤기있는 얼굴 피부를 만들어준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한약 처방 이름이 경옥고가 된 것이지요. 경옥고의 핵심적인 약리학적 원리는, 부족한 기혈을 잘 보충해주고 기혈의 순환 능력을 향상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특히 얼굴) 피부가 촉촉하고(피부 윤택도 강화) 맑고 밝게 보이도록 만들어주는 기능이 잘 발휘되는 것이지요. 경옥고는 장기적으로 오래 먹더라도 전혀 문제(부작용)가 없습니다. 다만 가격이 좀 비쌀 뿐이지요. 조선시대 임금님들에게는 거의 매일매일 진상(처방)한 기록들이 승정원일기 등에 나옵니다.

혹시나 경옥고 처방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시는 경우, 여러 가지 몸에 좋은 한방차들을 추천드릴 수도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사실, 2배 빠른 골절 회복을 위한 특허한약 ‘접골탕’에 대한 특허(대한민국)를 보유하고 있는 관계로, 그리고 국내 최초 골절⦁골다공증 한의약 연구⦁치료 서적인 <골절⦁골다공증 비수술 한약 치료 이야기 - 특허한약 접골탕의 모든 것>의 단독저자인 관계로, 평소 골절 환자들을 상당히 많이 치료(대면 진료 + 비대면 진료)하고 있는데요, 특허한약 ‘접골탕’ 처방에서는 ‘당귀’가 핵심 한약재입니다. 당귀는 기본적으로 혈액 순환을 좋게 만들어주고 뼈세포 증식 효과가 이미 현대과학적으로 입증되어 있지요. 예전에는 이 ‘당귀’라는 한약이 한방부인과 질환(특히 생리통 및 난임 치료)에 많이 처방되었던 한약재인데요, 최근에는 뼈세포 증식 효과가 현대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되었기 때문에, 골절⦁골다공증 환자들에게 평상시 뼈의 섭생을 위해서, 꾸준하게 ‘당귀차’도 열심히 먹으라고 권유하고 있습니다.

Q. 원장님의 진료실 서재에는 참으로 다양한 책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의학과 한의학을 모두 넘어선 책들도 많은데요. 진화의학과 진화심리학 관련된 책들도 보이고, 아동 상담 관련한 책들도 많이 있네요. 한의학이란 게 뭐랄까 요소론적이라기보다는 전일적, 홀리스틱한 측면이 많지 않습니까? 원장님의 사고방식도 좀 그렇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 https://www.facebook.com/allergyfreeOMD

제가 운영하고 있는 한의원에서는 골절⦁골다공증 환자가 약 35% 정도 되고 나머지 65% 정도는 소아청소년 환자들입니다. 홀리스틱(Holistic)이라는 용어를 아주 잘 말씀해 주셨는데요, 소아청소년이야말로 몸과 마음이 통합된 존재들이지요.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은, 때가 묻는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게 익숙해질 수 있는 존재로 변화되어 간다는 것과 비슷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살았던 옛날 사람들이 수 천년 동안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전통한의학적으로 치료했는가를 일반인 분들에게 설명할 때, 박상륭 선생님(소설가)께서 만드신 훌륭한 합성어인 ‘뫎’이라고 하는 용어를 많이 활용합니다. ‘몸’, ‘맘(마음)’, 그리고 ‘말’을 합친 조어이지요.

일본의 양의사 선생님들은, 제도적으로 본인들이 양약과 한약을 모두 처방할 수 있으니까, 각각의 효능을 비교해서, 여러 책들을 통해 다음과 같은 말씀들을 많이 하고 계세요. 양약은 질병을 멈춘다, 반면에 한약은 질병을 허락한 몸의 불균형을 균형 상태로 회복시킨다. 이렇게 ‘스톱’(Stop)과 ‘리커버리’(Recovery)라는 개념으로 양약과 한약의 효용성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혹은 건축(실내 인테리어)에 비유해서, 양약은 철거반 역할을 수행하고, 한약은 복구반 역할을 수행한다고도 표현합니다. 사실 우리나라 국민 분들도 본능적으로 그렇게 한의학과 양의학의 장점을 무의식적으로 활용하면서 살고 계시지 않습니까? 갑자기 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면 양의사를 먼저 찾지만, 수술 후유증 등의 후속적 관리와 재발 방지(예방)가 필요하다고 할 때에는 한의사를 많이 찾으시지요.

중국은 일본과 같은 전면적인 일원화 시스템은 아닌데, 중의학과 서의학 그리고 중서결합의학 이렇게 세 개의 독립적인 분야가 각각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중의사와 서의사 그리고 중서결합의사 이렇게 세 종류의 의료인이 있지요. 그런데 중국 정부에서는 2001년도부터 야심차게 정부(국가중의약관리국)에서 ‘중의우세병종 프로젝트’를 가동하기 시작합니다. 이게 무엇이냐 하면, 중의학으로 치료하는 것이 (서의학으로 치료하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더) 임상적으로 효과가 뛰어나고(효과성 평가) 또 부작용도 훨씬 덜한(안전성 평가) 질병들을 (현대과학적 논문을 기준으로 해서) 잘 선별해서 정부(국가중의약관리국)가 공식적으로 국민들에게 발표하는 작업인 것입니다. 2022년도 하반기 기준으로 해서, 중국 정부(국가중의약관리국)가 인정한 중의우세병종은 총 508개입니다. 중의우세병종에 속한 해당 질병 목록을 몇 가지 살펴보자면 아토피 피부염, 알레르기 비염, 성조숙증, 키성장, 천식, 골절, 골다공증, 잦은 호흡기계 합병증, 발육지연, 면역저하 등 대한민국 국민분들도 한의원을 (양방에 비해서) 더 많이 방문하시게 되는 그런 대표적인 질병들입니다.

Q. 중국과 일본의 사례를 들어보면, 결국 한국에서도 양의학과 한의학을 점진적으로 통합해가는 제도 개혁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맞습니다. 저도 그러한 ‘통합의학’으로서의 방향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와 같은 극한 대립적 구도로 양의사와 한의사가 감정 싸움만 지속하는 것이 국민분들 입장에서는 전혀 도움이 될 리가 없고, 괜한 불안감만 가중시키는 것이지요.

Q. ‘침술’에 대해선 어떻게 봐야 할까요? 한의학을 그저 막연하게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하시는 일부 국민분들도, 침술의 빠르고 뛰어난 효과에 대해서는, 대부분 인정하실 것 같거든요. 침술의 효능은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침술(Acupuncture)의 안전성과 효과성에 대해서는, 현대과학적 검증 작업이 이미 완료되었다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관련된 현대과학적 연구들이 굉장히 많아요.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이나 보건복지부 또는 국립 한국한의학연구원 등에서 수 없이 발표된 침술 관련 연구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침술은 자침한 부위(경혈) 주변 근육(연부조직)을 부드럽게 이완시켜 주는 국소적 효과를 넘어서, 각종 호르몬을 통한 내분비계 차원에서의 효과 그리고 신경세포와 면역세포를 통한 신경계 및 면역계 차원의 효과 더불어서 (후성유전학적 차원에서의) 분자생물학적 효과를 동시에 발휘합니다. 특히 뇌에도 작용을 하기 때문에 국소적 효과를 넘어서 전신적 효과를 내게 되는 것이지요. 침술에 의한 자극이 기계적⦁물리적으로 먼저 발생한 다음에 이러한 자극이 뇌에 전달되어서, 결국 뇌에서 각종 신호 전달 물질을 분비하면서, 전신적인 질병 치료 및 건강 증진 효과를 보이는 것이라는, 심리학적⦁신경학적⦁내분비학적⦁면역학적 조절 이론과 현대과학적 실험 결과들이 SCI 저널을 통해 많이 발표되었습니다.

Q. 원장님은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출신이기도 하신데요,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포함한 대한민국의 한의학 연구와 임상 수준은 중국이나 일본 쪽과 비교해서 어느 정도일까요?

전혀 뒤질 것이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포함해서 국립 한국한의학연구원도 있고 국립 한국한의약진흥원도 있는데요. 이런 연구 기관들에서 매년 발표되고 있는 논문들의 수준은 세계적으로도 탑 레벨에 가깝다라고 저는 평가합니다. 물론 중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아직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이 문제이긴 한데요, 이것도 시간과 예산과 기회들이 한의학계에 앞으로 좀 더 부여가 된다면, 충분히 좋은 성과가 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Q. 오늘 궁금한 걸 위주로 여쭤봤는데, 많은 걸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아이 환자를 많이 보신다고 하셨는데, 요즘 아이들이 예전에 비해 달라진 것, 건강 문제에서 좋아진 것과 악화된 것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 https://www.facebook.com/allergyfreeOMD

확연하게까지는 아니라도 조금 달라진 임상적 경향성을 보이는 것이 있어요. 바로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한 취약성이 행동적으로 매우 예민하게 많이 나타난다는 점입니다. 알레르기 질환이 늘어나는 것과 비슷한 양상입니다.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아이들은, 임상적으로 감수성이 높은 편이거든요. 심리행동적으로 많이 예민한 아이들, 좋게 말하면 감수성이 높고 나쁘게 말하면 아주 까다롭고 까탈스러운 아이들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토마스 보이스라고 하는 소아심리학과 교수님의 분류로, ‘민들레 타입 아이들’과 ‘난초 타입 아이들’이 있는데 이 중에서 후자(‘난초 타입 아이들’)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보통 이러한 ‘난초 타입 아이들’이 한의학적으로도 중요한 치료 대상이 되고 있는데요, 최근 들어서 그 비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체형(덩치)은 점점 커지는데 성격이나 행동은 매우 예민해지고 까다로워지고 참을성 자체가 예전에 비해 많이 부족해지는 느낌이예요. 그래서 그러한 심리적 스트레스에 대한 취약성이 지속되었을 때 결국은 행동적으로는 폭력적인 양상(타인에 대한 폭력과 자기 스스로에 대한 폭력 모두)으로 드러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더 글로리> 수준의 직접적 폭력이 아니더라도 미시적 폭력들, 은근하게 단톡방을 따로 만든다든지 하는 식으로 자기가 스트레스 받은 것을 타인에게 푸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저는 아이들의 체육 활동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주장합니다. 스트레스를 운동을 통해서 건전하게 정기적으로 푸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데, 부모님들이 조기 교육에 너무 몰입이 되어 계셔서 체력을 키워주는 것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포커싱을 좀 덜 맞추시는 거 같아요. 이렇게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많은 아이들은, 한의학적으로는 ‘간화가 쌓였다’라고 표현합니다. 간이 한의학적으로는 심리적 스트레스를 주관하는 장부거든요. 운동을 통해서 충분히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풀어내지 못하면, ‘간화’라고 해서 간에 화가 쌓인다라고 보는 것이지요. 소아청소년 화병이라는 임상적 표현도 많이 씁니다. 한의학에서는 간주소설(肝主疏泄)이라고 해서 간은 내부와 외부가 소통하는 핵심적인 장부로 봅니다. 간화가 쌓이면 소통이 잘 안 되니까 울화가 치미는 것이지요. ‘속열이 쌓인다’고 보는 것인데요, 이렇게 쌓여있는 화가 어디로 나가지 못하고 계속 잔존해 있다가 어딘가 틈새가 될만한 상황이나 조건에서 발화가 되는 것이지요. 저는 교육복지 쪽에 관심이 많은데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가 사회경제적으로는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 어려운 사회경제적 조건에 있는 아이들의 교육 문제에 대한 정책적 대처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불균형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제가 조금이나마 힘이 되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감사합니다.

#황만기 #넥스트브릿지 #잇는사람 #통합의학 #현대한의학

작가와 대화를 시작하세요.
잇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