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현석의 해외 언론 읽기_12] 서평 : 미국의 거대한 망상 ①
World Brief 12호에서는 전환시대의 한국의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포린 어페어스 2023년 5/6월호에 실린 리사 앤더슨(Lisa Anderson)의 <40년 전쟁>을 소개한다. 이글은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 NSC) 위원이자 최고의 중동 전문가인 Steven Simon의 최근 저서 “미국의 거대한 망상: 중동에서 미국 야망의 흥망성쇠”(Grand Delusion: The Rise and Fall of American Ambition in the Middle East)에 대한 서평이다.
Lisa Anderson. (2023, April 28). The Forty-Year War. Foreign Affairs.
40년 전쟁(The Forty-Year War)
이번에 소개할 글은 리사 앤더슨이 ‘40년 전쟁’(The Forty-Year War)이란 제하로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서평이다. 서평을 쓴 리사 앤더슨은 콜롬비아대학교의 국제관계학 명예교수이자 2011~2015년 카이로 소재 American University의 총장을 역임한 중동 전문가이다.
앤더슨이 서평을 통해 소개한 책은 사이먼의 최근 저서 “미국의 거대한 망상”(Grand Delusion)이다. 사이먼은 이 책을 통해 미국의 중동정책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을 군사적 개입 일변도에서 찾고 있다. 사이먼은 카터 대통령 시기부터 최근까지 8명의 대통령 시기를 연대기로 살피며 중동정책의 실패를 추적하고 있다. 사이먼은 미국의 중동정책 실패의 원인이 미국 일방주의를 정당화하는 망상에 빠진 정책결정자와 이런 정책과정에 있다고 분석하고, 이런 망상이야말로 ‘미국의 최악의 적’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그리고 사이먼은 자신의 신념에 기초한 망상에서 벗어나려면 중동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에 미국이 협력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서평자인 앤더슨은 이런 사이먼의 진단에 동의하면서도 부족한 점을 지적한다. 하나는 미국의 정치 주기 속에서 미국이 중동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리하지 않은 점, 두 번째는 디지털 혁신의 시대에 중동 변화에 대한 이해의 부족, 그리고 마지막으로 명확하게 미국의 중동정책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이먼 교수의 “미국의 거대한 망상”은 올해 2023년 4월에 출간된 신간이다. 그러나 사이먼 교수의 관점과 주장은 미국과 세계의 석학들 사이에서 계속 제기되던 내용과 맥락을 같이한다. 여기에서 사이먼 교수와 같은 관점에서 미국의 패권전략에 대해 비판적 해석을 제기한 석학의 명저를 몇 권 간단하게 소개한다.
첫 번째로 소개할 책은 우리나라에도 번역이 되어 출판된 존 J. 미어샤이머 교수의 명저 “미국 외교의 거대한 환상”(The Great Delusion. 이춘근 역. 2020. 김앤김북스)이다. 이책의 원제목은 The Great Delusion: Liberal Dreams and International Realities으로 2018년 Yale University Press에서 출판했다. 책 제목 “The Great Delusion”은 사이먼의 신간 제목 “The Grand Delusion”과 유사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미국의 대외전략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이 책의 주요 주장이 역사 서문에 함축적으로 잘 나와 있어 옮긴다.
“냉전이 종식될 무렵부터 미국은 ‘자유주의적 패권’이라고 불리는 심오하고 야심찬 자유주의적 외교 정책을 채택하기 시작 (...) 자유주의적 패권 정책의 목표는 가능한 한 많은 수의 나라들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바꾸어 놓는 동시에 개방적 국제경제 체제를 건설하고, 또한 더욱 효과적인 국제기구들을 건설하는 것 (...) 미국은 지구 전체를 미국과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로 가득 찬 세상으로 만들려고 했다 (...) 미어샤이머 교수는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이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군사력에 대단히 크게 의존했고, 거의 모든 경우 미국의 자유주의적 패권 정책은 실패했으며 미국이 개입한 국가들은 오히려 더욱 나쁜 상황으로 빠져 들어갔다고 보았다.”
즉 미어샤이머 교수의 주장은 미국이 냉전 이후 일극체제에 이르러서 “자유주의 패권” 노선을 채택하며 세계 전역을 자유주의 세계로 만들기 위해 무리하게 군사력에 의존함으로써 오히려 약소국의 상황도 나빠지고 미국 패권 역시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자유주의를 국내적 측면과 국제적 측면으로 구분한다. 국내적 측면에서 “자유주의는 善을 위한 진정한 원동력”이다. 그러나 국제적 차원에서의 자유주의는 다르다. “자유주의적 패권”(liberal hegemomy)를 추구하는 나라 ...“세계의 모든 나라들을 향해 중요한 사회공학적 행동(미국이 원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만들려는) 시도하고, 전쟁을 치르는 등 개입주의적 외교정책을 채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한 국가 안에서는 국가가 더 큰 힘을 가지고 위계적인 정치 체제를 갖고 있지만, 국제체제는 무정부적이기 때문에 현실주의와 민족주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으며, 자유주의 패권은 이런 민족주의와 현실주의에 직면해서 좌절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어샤이머 교수의 관점에 따르면 미국의 자유주의 패권에 입각한 군사적 개입은 미국의 몰락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
미어샤이머 교수의 관점과 주장은 싱가포르의 석학 마부바니와 맥을 같이하기에 두 번째로 마부바니의 책 두 권을 소개한다. (마부바니의 책은 아직 한국에 번역되지 않았다. 조만간 <월드 브리프>에 마부바니 교수의 책 서평을 발행할 계획이다.)
2020년에 출판된 마부바니의 책 “미중패권경쟁에서 중국이 승리했는가?”(Has China Won?)는 미어샤이머 교수의 관점과 맥을 같이하며, 미국이 군사력에 집중함으로써 스스로 패권의 힘을 축소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렇게 미국이 군사적으로 스스로 소모시킨 대표적인 지역이 중동임은 물론이다. 마부마니는 이 책에서 미국이 옳고 세계의 기준을 정한다는 일종의 선민의식에 입각해서 총을 앞세우는 대외전략(자유주의 패권전략)을 정당화하는 것을 철학이나 이론적 접근으로 비판하는 게 아니라, 그저 이것 자체가 미국의 이익을 좀먹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이 이런 망상에 빠져서 세계를 상대로 일방주의적 횡포를 자행하는 동안 중국은 성장했고, 중국이 미국의 경제력을 능가하는 것은 필연이라고 마부바니는 전망한다. 마부바니는 그렇다고 미국 패권이 종말할 것이라고 내다보지는 않는다. 마부바니는 미국이 계속 패권을 유지하면서도 세계가 같이 발전할 수 있는 방안으로 총을 내려놓고 경제협력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마부바니의 또 다른 책은 작년에 출간된 “아시아의 시대 21세기”(The Asian 21st Century)이다. 이 책은 핵심 주장은 세계의 중심이 서구에서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으며,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된 배경에는 미국 국내정치와 사회경제가 민주주의(democracy)를 벗어나 금권정치(plutocracy)로 나쁘게 변질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 책은 국제관계에 대한 진단에서 얻을 교훈점과 더불어 한국의 경제성장과 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에게 있어서 오늘날은 선진국 진입과 세계경제전환이 맞물리며 새로운 성장모델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다. 마부바니의 이 책은 이 시점에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중심을 잡지 못하면, 어떤 일이 발생하고 한국의 역사적 경로는 어디로 갈지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역시 Plutocracy 성격이 강화되고 있고, 그로 인해서 사회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한국의 이런 plutocracy 정치와 사회의 흐름이 전환시대의 세계적 조류와 어떻게 연결되고 그 여파가 무엇인지에 대해 이 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참고로 <월드브리프 11호 “아시아의 제3의 길”>에서 포린어페어스(2023.2.)에 기재된 마부바니의 장문의 기고를 소개한 바 있는데, 이 글은 마부바니의 두 권의 책에서 말하는 핵심 주장을 요약해서 담고 있어 책 두 권을 대신해서 읽고 참고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