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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석의 해외 언론 읽기_12] 서평 : 미국의 거대한 망상 ②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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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쟁(The Forty-Year War)

Grand Delusion: The Rise and Fall of American Ambition in the Middle East (by Steven Simon. Penguin Random House, 2023, 496 pp.) 리뷰

Lisa Anderson. (2023, April 28). The Forty-Year War. Foreign Affairs.

The Forty-Year War
How America lost the Middle East.

중동에서 미국의 패권은 몰락하고 있다

2023년 3월 중국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외교관계 회복을 중재했다. 이것은 중동에서 미국 영향력 감소를 확연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반면 바이든은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간 주둔해온 미군을 철수했다. 이것은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서방사회로 견인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시기에 사우디의 체제비판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와 관련됐다며 모하메드 빈 살라만 사우디 왕세자를 “왕따”(pariah)라며 비난을 퍼부었다. 이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은 사우디에 석유 증산을 요청했으나 사우디는 이를 외면했다. 미국과 이란의 핵협상은 이란 민주화 시위에 대한 이란 정부의 폭력적 탄압으로 좌초됐다. 역사상 가장 극우적인 이스라엘 정부는 미국이 만들어낸 중동의 아브라함 협정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보면, 중동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영구적으로 감소한 것일까? 미국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묶인 상황에서, 그리고 중․러와 경쟁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중동에 신경 쓸 여력이 있을까?

오바마와 트럼프 정부는 아랍의 봄 시기 중동의 민주화 지원에서 이스라엘과 바레인·모로코·수단·아랍에미리트 간 평화협정까지 중요한 군사·외교적 결정에 수차례 관여해왔다. 그러나 ‘리비아와 시리아, 그리고 예멘에서의 파괴적 내전’, ‘이집트와 레바논, 그리고 튀니지의 경제 붕괴’, ‘기후와 불평등 그리고 지역의 불안정 등 증가하는 위협’ 그리고 ‘중동 전역의 권위주의 부활’ 등 중동 지역에 많은 이슈가 산적해 있으나, 미국이 주도하는 이슈는 거의 없다.

전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 NSC) 위원이자 최고의 중동 전문가인 스티브 사이먼(Steven Simon)은 그의 최근 저서 <미국의 거대한 망상: 중동에서 미국 야망의 흥망성쇠>(Grand Delusion: The Rise and Fall of American Ambition in the Middle East)에서 중동에서 미국의 몰락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설명하고 있다.

사이먼은 1979년 이란혁명에서부터 2022년 12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재집권까지 중동에서의 미국의 노력을 추적한 끝에, 그의 책 제목에서 말하고 있듯이 워싱턴의 중동 전략은 한마디로 “망상적”(delusional)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미국의 중동정책 실패의 원인은 중동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관심도 크지 않은 정책결정자들에게 있다. 이들은 지신의 의도는 선하다는 자기 확신에 차서, 조작된 “원대한 구상”을 계속 중첩하는 지속적인 망상 속에 빠져있다. 사이먼이 적시하고 있듯이 “이것은 엄청난 오해와 끔찍한 오류, 그리고 거대한 규모의 죽음과 파괴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이먼의 이 결론은 충분하지 않을지라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더 시급한 문제는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시대에 워싱턴이 이런 재앙적 실수들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지, 또는 이런 교훈을 통해 보다 건설적인 방향으로의 중동 전략 변화 여부이다.

미국의 여덟 가지 실패

중동에서 미국의 패권이 몰락한 이유 : 오판과 오만 위에 자기신념을 세운 미국의 망상

사이먼은 이 책에서 다룬 많은 중동 정책과 전략에 본인이 직접 참여해온 증인으로서 권위를 갖고 지난 반세기에 걸친 미국의 중동정책을 설득력 있게 평가했다.

사이먼은 레이건 정부와 아버지 부시 정부에서 미국 국무부에 근무했으며, 클린턴 정부와 오바마 정부에서는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고위직을 역임했다. 그가 공직을 떠났을 땐 여러 대학과 싱크탱크에 있으면서 테러리즘과 중동에 관한 책을 저술했다.

그러나 사이먼은 자신이 참여한 정책들에 박수를 보낼 이유를 찾지 못한다. 사실, 그는 자신이 워싱턴에서 일한 수십 년 동안 진행된 미국의 중동 정책들은 어리석었다고 믿고 있다. 중동의 안정과 민주주의 증진, 그리고 테러를 근절시키고자 했던 미국의 야심 찬 계획들이 오히려 종종 권위주의를 강화하고 경제적 재앙을 악화시키며 폭력을 자극했다. 사이먼은 “이 망상은 사실을 간과한 의도의 신념화에 뿌리를 둔다. 이런 망상적 신념은 미국은 자기 의지대로 현실을 만들 수 있고, 누구도 미국에 딴지 걸 수 없으며, 미국의 정책 대상(중동)은 아무런 선택권이 없다는 것이다.” 즉 사이먼을 포함한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이 미국의 전략적 이익과 더불어 (미국의 입맛에 맞게) 중동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오히려 문제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거대한 망상>은 연대기순으로 8명의 역대 미국 대통령과 행정부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지미 카터 대통령 중재한 1979년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의 역사적인 평화 평화협정인 ‘캠프 데이비드 협정’에서 출발한다. 사이먼에 따르면, 이협정 이전까지 미국은 중동 개입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존 F. 케네디, 그리고 린든 존슨 대통령은 군사적 개입을 영국에게 맡긴 채 중동지역을 외면했다. 그러나 “미국이 중동 정책을 군사화하기 시작한 것은 1979년 이후이다”라는 사이먼의 말처럼, 캠프 데이비드 협정 이후 상황은 확연하게 바뀌었다.

중동에서 미국의 패권이 몰락한 이유 : 군사적 개입 전략

사이먼의 관점에서 보면, 소극적인 개입에서 군사적 개입으로의 변화는 1980년대 초반 레이건 행정부의 실패한 레바논 내전 개입에서부터 오바마가 스스로 “엉망진창”(shit show)이라고 말한 리비아 개입(2011년 리비아 독재자 알 카다피에 대항하는 민주화 시위를 뒤따른 미국 주도의 나토 개입)에까지 모든 사례에서 드러났다.

사이먼은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포함해서 ‘독수리 발톱 작전’(이란의 대학생들에 의해 점령된 이란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 직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미국이 시도했으나 참담하게 실패) 등 카터의 불운한 이란 정책에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다. 사이먼의 평가에 따르면, 이 실패로 중동정책은 미국 선거에서 큰 의제가 되었으며, 1980년 대선에서 레이건 승리의 원인이 되었다. 레이건을 다룬 챕터에서 사이먼은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과 이란-콘트라 스캔들 등 레이건 대통령의 테러 대응을 평가한다. 사이먼은 “레이건 대통령의 두 번 임기 동안 레이건 행정부가 중동에서 시도한 그 어떤 정책도 미국을 더 낫게 만든 것은 없었다”라고 결론 내렸다.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4년 임기 동안, 미국은 이라크군을 쿠웨이트에서 철수시켰고, 1991년 마드리드 회담(the 1991 Madrid Conference)에 개입함으로써 이후 수십 년 동안 미국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그리고 다른 아랍국가들 사이 협상의 조력자가 되었다. 그러나 사이먼의 평가에 따르면, 조지 H. W. 부시 행정부의 성과는 그다지 크지 않다. 사이먼이 밝힌 바와 같이, 실제로 걸프전 승리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프로세스의 시작은 부시가 클린턴에게 물려준 “쌍둥이 환상”(twin illusions)에 지나지 않았다. 클린턴 정부는 1993년과 1995년에 걸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가 존재를 상호인정한 오슬로 협정을 끌어냈다. 그러나 협정 이후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는 실제 과정은 없었고, 클린턴의 두 번째 임기 동안 진정한 평화협정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무위로 끝났다. 결국, 클린턴 정부는 중동에 대해 희망 속에 몇 년을 보냈지만, 클린턴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물려준 것은 자신이 받은 아버지 부시 대통령에게 받은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미국의 중동정책의 군사화는 2001년 9.11 테러를 계기로 절정으로 치달았다. 사이먼은 9.11 테러는 미국 본토를 공격했다는 그 공격 자체로도 놀라웠지만, 백악관이이 공격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에 말문이 막힐 정도로 당황했다. 사이먼은 “부시 행정부가 정보부의 임박한 공격에 대한 경고에 그렇게 무심할 수 있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9.11 테러 직후, 부시 정부는 한술 더 떠서 9.11 테러에 대한 복수를 소설 모비딕의 아합 선장의 복수처럼 정당화하고, 레이건 정부와 아버지 부시 행정부 출신의 네오콘과 매파 관료들에게 지휘권을 맡김으로써 지하디스트 위협의 본질을 왜곡했다.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은 테러 단체와 관련이 없다는 대테러 당국의 결론에도 불구하고, 테러 단체인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아니라 사담 후세인이 주요 표적이 되었다.

왜곡의 결과,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하고 점령했다. 그러나 미국의 이라크 침공 결과로 더 급진적인 반미 테러 단체인 ISIS(the Islamic State; 이슬람국가)가 배태되었다. 돈 먹는 하마가 된 이라크 전쟁과 ISIS와의 분쟁, 그리고 이라크 상황과 비슷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은 이익을 얻지 못했고, 중동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지도 못했다. 이 시기에 대한 사이먼의 평가는 참담하다. 미국은 “가장 위대한 강대국”이란 믿음을 갖고 부시 행정부는 전쟁에 나섰지만,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패전했으며 수십만 명의 사람을 죽이거나 죽게 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취임하면서 중동에서의 이런 혼란을 종식하려 했으나 ISIS의 부상과 예상하지 못한 2010~2011년 아랍의 봄에 의해 오히려 이 문제에 끌려 들어갔다. 오바마는 2009년 카이로 연설에서 미국의 중동 정책의 새로운 시작을 약속함으로써 호평을 받았지만, 중동 국가 정부(미국 동맹국 정부)에 대한 대중 폭동(아랍의 봄)에 대한 오바마 행정부의 모호한 대응은 민주주의자와 독재자 모두에게 배신감을 줬다. 사이먼에게 있어서, 오바마의 유일한 업적인 2015년 이란핵협정(정식명칭 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JCPOA)이 트럼프 취임과 함께 사문화된 것은 씁쓸한 아이러니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정책을 계승하는 대신 오랫동안 미국에 의지해온 이집트의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과 사우디의 모하메드 왕세자 정권 등 독재정권을 포용하는 한편, 불타는 복수심으로 이란(the Islamic Republic)을 압박했다. 그러나 효과는 없었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는 수십 년간 진행해온 이스라엘과 파키스탄 사이의 평화 프로세스에 대해 가식적인 지지를 철회하고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겼으며 ‘아브라함 협정’을 기획했다. 아브라함 협정은 이란에 대한 우려와 이스라엘 사업에 대한 열망,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운명에 대해 더는 큰 관심이 없는 바레인, 모로코, 수단 그리고 아랍에미리트 등 네 개국과 이스라엘을 묶어줬다.

트럼프의 대외전략의 성격은 주고받는 거래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대외전략과 미국의 중동 정책이 만나자, 민주주의 촉진에 대한 신념과 전략적 우위에 초점을 맞춘 현실주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중동 정책의 혼란이 더 커졌다고 사이먼은 주장한다. 사이먼은 “전반적으로 트럼프의 중동정책은 오바마 4년보다 더 나빠 보인다”라고 평한다. 트럼프는 중동에서의 미국 영향력을 급속하게 약화시켰다. 사이먼은 “중동에서 미국의 개입, 특히 군사적 개입의 효용성, 목적, 그리고 효과가 감소”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바이든이 2021년 취임할 무렵, 미국의 중동 전략은 자기 파괴적이었으며, 미국의 적이든 우방이든 중동의 주요 국가 어느 누구도 미국과 미국의 전략에 관심이 없었다.

미국의 최악의 적

사이먼의 평가는 정책결정자와 정책과정

미국이 지난 45년 동안 엄청난 규모로 중동에 개입했던 것을 고려하면, 미국의 정책이 왜 그렇게 형편없는지 궁금하다. 사이먼은 이 질문에 몇 개의 답을 제시한다. 첫 번째로 이런 결과를 만든 사람들에 대한 평가이다. 사이먼의 평가는 다음과 같다. 카터 대통령의 측근은 “고장났다”. 레이건 행정부는 아랍-이스라엘 평화 프로세스는 “거의 완벽하게 멍청하다”는 관점을 가진 “성마르고, 교활하며, 고집센 적대자들”로 가득했다. 아버지 부시 행정부는 “찬란한 미국 패권과 희망적인 사고에 빠져” “눈이 멀었다.” 클린턴의 중동 전문가들은 “잘못된 원칙에 사로잡혔다.” 조시 W. 부시는 “명백하게 편협하고, 무관심하며, 충동적으로” 대외 정책 딜레마에 서투르게 접근했다. 리비아에서 오바마의 고전은 악의적인 의도가 아니라 단지 “무능함”에서 기인했다. 그리고 트럼프는 그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에게 중동정책을 맡김으로써 “사익을 추구하는 정실 자본주의”(self-dealing crony capitalism)를 추구했다. 이런 목록을 읽고 난 후, 미국의 세금이 불량배와 악당의 무리에게 월급으로 나갔다는 결론을 부정하기 어렵다.

사이먼에게 중요한 또 하나의 사안은 매우 큰 결함투성이의 정책과정이다. 중동 정책은 상식이나 전략적 통찰력보다 항상 “정치적 명령, 이념적 집착, 감정적 충동, 그리고 부처 간 양립할 수 없는 우선순위의 충돌이 마무리되지 않은 조정 과정”에 의해 결정되었다. 9.11 테러 발생 18개월 전에 사이먼과 대테러 전문가인 다니엘 벤자민은 함께 “수니파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대규모 살상 공격” 가능성에 대해 뉴욕타임즈에 기고했다. 사이먼은 테러에 대한 인지와 조기 경보가 이렇게 있었다는 점을 대중에게 환기시키며, 아무리 뛰어난 분석가라도 좋은 구상을 실행으로 옮기기 어렵다는 점을 토로했다.

사이먼이 놓친 점들

사이먼이 간과한 미국의 중동 정책 실패에 대한 다른 설명들이 있다. 사이먼은 (미국 역대 정권의 거대한 망상을 구성함으로써,) 광범한 국가 이익과 세계 발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단기 정책 선택을 규정하는 정치 주기를 중요하게 고려했어야만 했다. 냉전이 종식됐을 때, 미국의 승리주의는 미국 정책의 결과에 대한 더 깊은 숙고와 중동에서 미국의 이익이 정확하게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워싱턴의 자기분석을 방해했다. 예를 들어, 사이먼은 1970년대 워싱턴의 중동 개입이 시작했을 때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취약성이 두드러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미국의 보호와 큰 비용을 드린 지원 하에서 21세기가 시작할 때, 사우디와 이스라엘 양국은 이익이 엇갈리면 워싱턴에 도전할 준비가 된 지역의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사이먼은 약했던 양국이 강대국이 된 것을 성공으로 생각하지만, “어떤 대가를 치를 것인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진다. 이것은 중요한 고려사항인데, 왜냐하면 미국의 이스라엘과 사우디 지원으로 인해서 미국과 중동은 값비싼 대가를 치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안전과 걸프 지역 석유에 대한 안정적 접근(50년 전에는 중동에서 미국의 이익이 절대적 척도가 아니었다)이 오늘날에도 미국의 중동 정책을 계속 결정해야만 하는가 하는 질문을 제기한다.

동맹과 적대국과의 양국 관계에 대한 사이먼의 강조 역시 이 책이 놓치고 있는 점을 보여준다. 그 첫 번째는 디지털 혁신이다. 디지털 혁신은 미디어를 변화시키고, 공급사슬을 확장시켰으며, 금융산업을 성장시켰고, 군사기술을 재편하고, 스파이 활동과 독재권력에 대변혁을 일으켰고,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이런 디지털 혁신의 시대에 세계 초강대국의 역할과 이해관계는 역시 필연적으로 변화했다. 그러나 사이먼은 인터넷 보급과 문해력부터 인구 증가와 청년실업까지 오랜 기간 중동의 일상 생활을 형성해온 사회적 힘과 경제적 힘, 그리고 기술적 힘의 종류에 대해 논하지 않았다. 이런 이슈를 놓친 것은 정당화하기 어렵다. 특히 변화의 원동력 중 상당수가 미국에서 개발되거나 미국과 연관된 기술들이다.

사이먼은 정보 분석가들이 정책의 약점을 드러내는 데는 능숙하지만 “이 약점들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한탄하고 있는데, 그의 저서 “거대한 망상” 역시 더 효과적인 미국의 중동 전략을 제시하지 못한 한계를 갖고 있다.

경청하거나 길을 잃거나

워싱턴은 오랫동안 중동을 저지해야 할 대상으로 부정적으로 규정해왔다. 따라서 정책결정자들은 냉전 시기에는 소련의 영향력을 억지하기 위해 중동 국가들을 조종했고, 탈냉전 시기에는 클린턴의 “이중 봉쇄”(dual containment) 전략으로 이란과 이라크두 나라를 조종해서 서로 견제하도록 했다. 클린턴 이후 행정부들은 중동에서의 불량국가(rogue state) 억지, 테러 방지, 핵확산금지, 대량학살무기 조사, 난민 통제 등 수많은 위험을 찾아냈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미국이 아무리 큰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도 개입(engagement)보다 좋은 결과를 낳지는 못했다. 지역주민과 관련한 산발적인 노력들은 미국에 호의적이지 않은 지도자와 협상에 직면해서 흔들렸다. 2007년 가자지역 선거에서 하마스의 승리나 2012년 이집트에서 무슬림 형제단 출신 대통령, 또는 2022년 이스라엘의 극우정부와 같이 지역의 정치적 열망이 오히려 지역 불안으로 나타나면, 이것은 예방과 봉쇄 정책의 또 다른 근거가 되었다.

미국이 정말 중동에서 원한 것이 무엇일까? 조지 W. 부시는 “자유”를 증진하기 위해 이라크 전쟁을 감행했다. 오바마는 “인권” 보호를 위해 리비아에 개입했다. 트럼프는 단순하게 돈이 되는 거래를 원했다. 이제는 변화가 필요하다. 그 변화는 워싱턴이 말을 줄이고 중동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것이다. 미국 정책결정자들은 요새화된 대사관을 나와 중동 국가의 외교관들을 만나 중동 지역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러면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중동 정부들이 선전하는 거대 프로젝트와 무기와 사이버 보안 분야의 가장 값비싼 최신 신기술을 선보이는 화려한 무역 박람회 뒤에서 이집트의 비공식 경제 속에서도 기술 스타트업이 고군분투하며 활기찬 뛰는 현장이 눈에 들어올 것이고, 중소기업을 위해 환경규제를 개혁하도록 미국의 영향력을 활용할 것이다. 중동의 목소리를 경정하면,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계속되는 폭력을 외국 간섭 탓으로 돌리는 리비아 대중의 생각을 읽을 수 있을 것이고, 미국이 무시하고 있는 무기 금수 조치를 이행하도록 워싱턴에 권고할 것이다. 중동의 현실을 보고 듣는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레바논의 낙후된 전력 인프라를 보고 전력망 재건을 위한 국제적 노력을 촉구할 것이다.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모든 것을 안보 위협의 렌즈를 통해 보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 기술을 “이중 용도”(기술을 무기로 전용)로 사용하려는 국가를 찾아내서 이런 의도를 좌절시키는데 에너지를 쏟을 것이다.

미국이 중동에서 미국의 이해관계를 정확하게 규정할 때까지, 중국의 최근의 외교적 승리가 알려주는 것처럼 미국의 실패는 늘어날 것이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을 좌절시키려는 노력을 줄이며 어정쩡한 개입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다. 워싱턴이 개입에 대한 거부감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미국은 개입할 수밖에 없다. 간헐적인 군사적 타격으로 지역의 군사 지도자를 간단하게 “제거”하는 것은, 더 큰 불만과 분노에 가득 차 폭력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만 양산할 뿐이다. 끝으로 사이먼은 미국의 전략변화를 희망하며 글을 마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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