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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석의 해외 언론 읽기_11] 아시아의 제3의 길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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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분 걸림 -

해외 언론 읽기 11호에서는 ‘신냉전 시대, 한국의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포린 어페어스> 2023년 3․4월호에 실린 마부바니의 장문의 기고를 소개한다.

Asia’s Third Way. Mahbubani, Kishore. (2023, February 28).  Foreign Affairs.

Asia’s Third Way
How ASEAN survives—and thrives—amid great-power competition.
아시아의 제3의 길(Asia’s Third Way)

이번에 소개할 글은 미국과 중국 양측에서 신뢰를 얻고 있는 키쇼어 마부바니의 “Asia’s Third Way”이다. 마부바니는 싱가포르 외교부 차관과 주유엔대사, 국제연합안전보장이사회 의장을 역임하고 현재 싱가포르국립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이다.

마부바니는 미․중의 지정학적 패권경쟁이 현시대를 규정하며, 이 경쟁에서 중국이 미국에 승리하거나 최소한 양대패권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전제를 깔고 있다.

마부바니가 다루는 소제는 “아세안”의 평화와 실리주의 노선이다. 아세안은 미국과 중국의 경쟁과 압력을 자국과 아세안 지역의 이익을 원칙으로 미․중 패권경쟁에서 지정학적 장점을 이용하여 미국과 중국 양측과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균형외교를 추구하고 있다. 아세안이 이런 전략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은 아세안의 막대한 인구와 시장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부바니가 이글에서 정작 주장하려는 것은 미국과 중국 대외전략의 차별점 부각시켜 미․중경쟁에서 결국 중국이 승리할 것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설득하고 있다. 마부바니에게 있어서 미국은 미국우선주의를 앞세워 안보와 경제에서 미국의 이익만 추구해서 개발도상국가와 남반구 국가들의 반감을 사는 반면, 중국은 공동성장을 추구함으로써 이들의 신뢰를 얻고 있고 있다. 이런 대외전략과 신뢰관계의 차이가 미국의 중국 봉쇄와 탈동조화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며, 이런 차별점이 결국 미․중경쟁에서 결국 중국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 주요한 이유이다.

마부바니의 전망을 전적으로 수용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신냉전이란 말 자체가 중국의 성장과 미국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만은 사실이다. 이 상황을 미국은 안보와 긴장 레버리지를, 중국은 일대일로를 통한 경제협력 레버리지를 강하게 당기는 것도 사실이다.

안보와 경제를 포함한 전면적인 미․중패권경쟁과 신냉전 속에서 한국의 길을 무엇일까? 아세안의 경험에서 배울 점은 무엇일까?

아시아의 제3의 길(Asia’s Third Way)

미․중패권경쟁 속에서 아세안의 생존과 번영 전략 : positive-sum 접근

현재는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경쟁 시대가 규정력을 가진다. 그리고 무역과 대만 등 놓고 미중 긴장 고조는 많은 나라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동남아는 미중패권경쟁 속에서도 평화와 번영의 길을 이미 준비하고 있다. 동남아는 베이징과 워싱턴 사이에서 신뢰관계에 기초한 좋은 외교적 관계를 굳건히 할 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이 동남아의 성장과 발전에 크게 이바지해왔다.

지난 20년간 미국과 유럽의 경제 침체했지만, 동남아시아는 극적인 경제와 사회발전을 이룩했다. 2010~2020년 사이 아세안(2020년 아세안 10개국 GDP는 3조 달러)은 유럽연합(유럽연합 GDP는 15조 달러)보다 세계 경제성장에 더 크게 이바지했다.

동남아의 성장과 화합은 아세안 덕분이다.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은 협렵적인 지역 질서를 구축하고, 실용과 협력의 문화를 세웠다. 이 질서는 지역 내 깊은 정치적 골을 연결하고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경제성장과 발전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역설적으로 아세안 성공의 가장 큰 힘은 아세안을 위협하는 패권이 없었다는 점이다. 싱가포르 외교관 Tommy Koh의 말처럼 “미국, 중국과 인도는 공동의 아젠다가 없기 때문에 동남아지역에서 운영자 역할을 할 수가 없다. 미국-중국-인도 세 패권국이 합의할 수 없기 때문에 아세안이 주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패권국가들이 우리의 중립과 독립성을 이해하는 한, 아세안은 계속 유지할 수 있다”

미중 지정학적 패권경쟁에 대한 아세안의 실용적인 접근은 다른 개발도상국 세계의 모델(전범)이 되었다. 세계인구의 상당수가 사는 지구 남반구 정부들은 경제발전에 관심이 많지 베이징이나 워싱턴 어느 한쪽에 서기를 원하지 않는다. 중국은 이미 아프리카를 지나 남미와 중동에 깊이 스며들었다. 만약 미국이 남미와 중동지역 국가들과 깊은 관계를 유지심화하고자 한다면, 미국은 아세안의 성공 스토리를 학습해야만 한다. 지구 남반구는 대결적인 제로섬 접근보다 아세안의 실용적인 파저티브섬(positive-sum, 윈윈전략) 접근을 더 잘 받아들일 것이다.

중국의 일대일로에 실행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미국

평화와 실용주의

아세안이 항상 중립적인 것은 아니었다. 1967년 미국의 강력한 후원으로 세워졌기에, 중국과 구 소련은 아세안을 미국의 신제국주의의 산물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중국은 경제개방을 하면서 최근 몇십년 동안 동남아지역을 포용해왔다. 아세안은 중국과 2002년에 자유무역협정 체결 이후 중국과 무역을 급격히 확대했다. 2000년 아세안-중국 무역은 290억 달러로 아세안-미국 무역의 1/4에 불과했으나, 2021년 아세안-미국 무역 3,640억 달러로 늘었지만, 아세안-중국 무역은 6,690억 달러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아세안의 미․중 무역은 아세안의 경제성장에 큰 힘을 불어넣었다. 2000년 아세안 지역 GDP는 단지 6,200억 달러로 일본의 1/8에 불과했으나, 2021년은 3조 달러로 성장했다(일본은 5조 달러). 그리고 2030년이면 일본보다 아세안 경제가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 6억 8천만명의 아세안과 14억명의 중국의 밀접한 경제관계는 아세안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아세안-중국의 상호 이익이 되는 관계는 이제 시작이다. 2022년 1월 발효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은 향후 10년간 경제성장이 크게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다.

아세안이 중국과의 밀접한 관계를 추구함과 동시에 미국과도 마찬가지로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동남아시아를 무시했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아세안과 관계 증진을 위해 크게 노력했으며 아세안 국가들은 바이든의 노력에 크게 호응했다. 2022년 5월, 바이든은 아세안 정상들을 백악관으로 초청하여 아세안 정상회담을 주최했다. 같은 해 6월 바이든 행정부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IPEF)을 출범시키고, 아세안 지역에서 미국의 경제적 개입 강화를 추구하고 있다. 아세안 10개국 중 7개 국가가 호주, 피지, 인도, 일본, 뉴질랜드와 한국과 더불어 IPEF에 참여함으로써, 아세안이 미국과의 관계를 강력하게 유지하려는 의지를 보여줬다.

아세안과 중국의 지리적 근접성은 아세안이 미국보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더 많은 갈등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미 남중국해와 중국의 5G 기술을 놓고 양측의 갈등은 발생했다. 중국은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필리핀 그리고 베트남 4개국과 영토분쟁 중이지만 이것은 아세안 10개국 모두와 관계를 저해시킨다. 실례로, 2012년에 중국은 어리석게도 아세안 장관회의의 공동코뮤니케에 남중국해 분쟁에 대한 언급을 배제하도록 당시 아세안 의장국인 캄보디아에 압력을 행사했다. 실제로 인도네시아가 이 장관회의 일주일 후에 아세안 공동입장을 중재함으로써 교착상태의 남중국해 이슈해결에 개입할 수 있었으나, 베이징은 자카르타와의 관계에 실수하고 말았다. 소위 남해구단선(nine-dash line)이 인도네시아 나투나 제도와 가까울지라도 중국은 인도네시아에게 남해구단선이 인도네시아 영해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보장했었다. 그러나 2016년과 2020년에, 중국어선이 인도네시아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침해했고,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자국의 영토임을 재확인하기 위해서 나투나 제도를 방문했다.

앞으로도 남해구단선의 모호함은 아세안과 중국 관계에 자극 요소로 남을 것이고, 양측은 분쟁 위험을 줄이기 위한 남중국해 “행동강령” 합의에 도달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아세안-중국 관계를 발전시킨 실용주의 문화가 큰 충돌을 막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필리핀과 베트남 모두 남중국해 영토분쟁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경제 관계를 확대해왔다. 1952년에 중국은 베트남에게 우호의 증거로 원래 11단선에서 단선 2개를 삭제하면서 아세안 국가들과 실용적인 타협을 한 바 있다. 이런 예는 앞으로도 아세안과 실용적인 타협이 중국에게 현명한 선택임을 보여준다.

아세안-중국관계에서 또 하나의 갈등원인은 중국 5G 기술에 대한 미국의 공격이다. 5G 통신시스템 선택은 개별 국가가 결정할 사안으로, 중국의 화웨이 시스템에 대한 아세안 차원의 입장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아세안 특유의 실용주의가 우세해서, 각국은 필요에 따라 결정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은 화웨이와 5G 네트워크 구축을 계약한 반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그리고 베트남은 하지 않았다. 이것은 아세안 국가들이 미국관의 관계와 더불어 저렴한 기술이 주는 이익을 균형 있게 고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때때로 아세안 국가들은 자국의 이익을 중심에 두고 미국의 요구를 외면한다. 미국은 중국의 일대일로를 공격하는 캠페인을 전개해왔지만 실패했다. 아세안 10개국 모두 다양한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으며, 아세안은 중국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 계획을 수용했다. 홍콩과학기술대학교의 Angela Tritto, Albert Park와 Dini Sejkong에 따르면, 아세안 국가들은 2020년 현재 최소한 53개의 일대일로 산하 프로젝트를 착수했다.

이 프로젝트들은 상당한 보상을 가져왔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라오스는 일대일로 덕분에 수도 비엔티안과 중국 윈난성을 연결하는 고속철도를 놓았다. 최고속도가 시속 100마일인 고속철도는 15시간 걸리던 거리를 4시간 이하로 주파하며 중국발 무역과 관광에 청신호를 밝히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90마일 남짓 거리의 자카르타와 반둥을 연결하는 고속철도 건설에 중국을 선택했다. 인도네시아는 다른 나라의 고속철도를 구매할 수도 있었지만, 위도도 대통령이 중국에서 비슷한 거리를 차 한잔 마실 시간도 안 걸려 도착하는 고속철도를 직접 타본 이후 중국을 선택했다. 미국은 일대일로를 대신할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일대일로를 선택한 것은 당연했다.

아세안은 남반구의 선도 모델

미․중의 지정학적 경쟁에 대처하는 아세안 접근은 다른 개발도상국들이 따라야 할 교훈이 있다. 중국이 남반구에 있는 국가들과 투자와 무역 관계를 깊이 하자, 점점 더 많은 개발도상국이 아세안의 성과를 부러워하며 베이징과 워싱턴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는 실용적 접근을 채택하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은 아프리카와 깊은 경제적 관계를 구축해왔다. 미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은 아프리카 정부들에게 중국의 착취에 대해 경고했지만, 서방의 길고 혹독한 아프리카 착취의 역사로 설득력을 갖지 못했다. 반면 역사적 경험은 중국의 투자가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일자기를 만든다는 것을 증명했다.

개발경제학자 Anzetse Were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중국의 아프리카 투자는 매년 25%씩 증가했고, 2017~2020년 중국 투자는 다른 외국 투자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했으며, 아프리카로 유입된 자본의 20%를 차지했다. 그리고 서방의 비난과 달리 중국 기업들은 “중국인을 고용하기 위한 사업이 아니며”, “중국 기업 전체 인력의 70~95%를 아프리카인이 차지했다.”

반대로, 미국과 서방 국가들은 대부분 공허한 약속과 무대책만 남발했다.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의 외국직접투자는 중국의 외국직접투자의 절반에 불과하며, 미국과 서방의 개발원조 대부분은 자국의 컨설턴트와 기업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언론인 Howard French의 지적처럼, 미국은 개발원조에 대해 “점점 더 인색하고 경멸적”인데 반해, 중국은 “세계 공공재에 더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서구의 기후변화, 부패와 인권에 대한 위선 역시 아프리카에서 서구의 위상을 좀먹었다. 미국과 많은 유럽 강대국들은 아프리카에게 에너지 전환을 오랫동안 훈계했으나,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이후 아프리카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필요하자 갑자기 이런 훈계를 중단했다. 반면 중국은 서구와 달리 경건한 척하지 않고, 과중한 조건 없이 원조와 투자를 했다. 2022년 1월, 우후루 케냐타 케냐 대통령은 “중국과의 파트너십엔 중국이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는 요구가 없다. 중국과 파트너십은 우정의 파트너십으로 케냐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풀기 위해 함께 협력하고 있다 ... 우리는 우리가 필요한 것에 대한 훈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파트너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국은 남미에서도 깊은 관계 구축에 성공했다. 미국의회조사국(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에 따르면, 2002~2019년 사이 남미카브리해 지역과 중국의 무역 규모는 180억 달러에서 3,150억 달러로 확대했으며, 2021년엔 4,480억 달러로 급증했다. 이 수치는 미국과 남미 무역의 절반에 못 미치지만, 미국과 남미 무역의 71%가 집중하고 있는 멕시코를 제외하며, 남미 지역의 중국과 무역은 730억 달러로 미국을 앞선다.

특히 남미의 최대 경제국인 브라질과 중국의 무역 성장은 매우 놀랍다. 2000년 브라질의 중국 수출은 10억 달러에 불과했는데, 현재는 4일마다 10억 달러 상당의 상품과 서비스를 수출하고 있다. 이런 성장은 시진핑 주석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매우 가까웠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 재임기간에 일어났다. 이는 브라질ㄹ의 수도 브라질리아에는 아세안과 같은 실용주의가 확고히 자리를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걸프만 역시 중국이 깊이 들어가고 있는 또 하나의 지역이다. 전통적으로 걸프만의 석유부국들은 워싱턴의 보호를 기대했다. 그러나 미국과 긴밀한 정치와 안보 관계가 걸프만 지역 국가들이 중국과의 경제관계가 깊어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2000년에 걸프협력이사회(Gulf Cooperation Council, GCC)와 중국 간 무역은 200억 달러가 채 안 됐으나, 2020년엔 1,610억 달러로 달하여 GCC의 가장 큰 무역 파트너였던 유럽연합을 능가했다. 같은 기간 동안 GCC와 미국 무역 규모는 400억 달러에서 490억 달러로 완만하게 증가했다. 2021년 GCC와 중국 무역 규모는 1,800억 달러로, 이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무역 규모를 합친 것보다 크다.

GCC지역 국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큰 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s)를 가지고 있다. 이들의 투자 결정은 정치적 관심사나 우호관계에 따르지 않고, 최대성장을 기준으로 냉정한 계산에 따라 투자한다. 2000년 GCC 국부펀드는 거의 서방에 투자한 반면, 중국 투자는 외국 직접 투자의 0.1%에도 미치지 않았다. 그러나 2020년에 이르러서 대부분의 GCC 국부펀드는 중국 투자를 크게 늘렸다. 그러나 투자 규모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투자 규모를 알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2020년에 체결한 아브라함협정(the Abraham Accords)으로 바레인과 아랍에미리트가 워싱턴과 많이 가까워졌지만, 걸프 지역 국가들이 맹목적으로 미국과 타협하길 원치 않으며 또한 긴밀한 대중관계가 주는 경제적 이익을 포기하지 않는다. 미중 양쪽과 협력하려는 실용적 접근이 힘을 얻고 있다.

남반구에서 중국 영향력에 대응하는 미국의 어떤 노력도 실패할 것이다

군사협력에 무게를 둘 것인가 경제협력에 무게를 둘 것인가

많은 개발도상국이 미중패권경쟁에 대한 대응에서 아세안 접근을 적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워싱턴은 아세안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야만 한다.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한 아세안의 전략은 남반구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 중국은 이미 개발도상국들과 깊은 무역과 투자 관계를 추구하고 있다. 미국은 남반구 지역에서 실용적 접근을 할 것인지 아니면 중국과 제로섬 경쟁을 하고 이 지역을 위기로 몰고 갈 것인지 선택해야만 한다.

더 실용적인 미국의 접근은 무엇일까? 아세안과 더 나아가 지구 남반구를 다룸에 있어서 미국은 3개 규칙을 고려해야만 한다. 첫 번째는 어느 국가에도 베이징과 워싱턴 중 어디를 선택할 것인지 묻지 말아야 한다. 여기에는 실질적인 이유가 있다. 중국과 비교해서 미국은 아세안에 줄 게 없다. 긴축 재정과 해외원조 확대에 대한 의회의 저항으로 인해서, 베이징이 아세안에 제공한 것의 일부만 워싱턴은 제공했다. 실례로 2022년 5월 미국-아세안 정상회담에서, 바이든은 인프라, 안보, 펜데믹 대비 등을 위해 아세안에 1억5천만 달러를 제공하겠다고 공약했다. 반면 중국의 시진핑은 2021년 11월에 코로나와 싸우는 아세안 국가들을 돕고 향후 3년간 경제 재건을 위해 15억 달러를 약속했다.

워싱턴이 안보협력과 무기 판매에 있어서 더 많이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민간협력보다 군사협력에 너무 크게 의존한 것은 미국에게 손해가 될 수 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중국 전문가인 폴 해늘(Paul Haenle)은 <파이낸셜 타임즈>에서 “아세안 지역의 무역과 경제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미국은 대포와 탄약을 테이블에 올리는 반면 중국은 빵과 버터를 다룬다”고 했다. 베이징이 경제협력에 집중하는 반면 워싱턴이 군사문제에 집중하는 것은 미국의 큰 실책이다. 간명한 진실은 남반구 사람 대부분에게 최우선 과제는 경제적 발전이라는 점이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내가 일인당 국민소득이 지금의 가나보다 낮았던 1950~60년대에 싱가포르에서 자랐기 때문에 가난이 심리적으로 얼마나 사람을 쇠약하게 만들 수 있는지 알고 있다. 그리고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에게 경제성장과 성공 경험이 주는 심리적 고양 역시 잘 알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에 수세식 화장식과 냉장고, 흑백TV가 들어오자 나는 내 삶의 질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이것이 워싱턴이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한 반대 캠페인이 실수인 이유이다. 서방 정부와 언론은 일대일로는 여기에 참여하는 국가들을 부채함정외교(debt-trap diplomacy)에 빠뜨리는 사악한 계획으로 묘사해왔다. 그러나 유엔의 193개 가입국가 중에 140개 국가가 이런 해석을 거부하고 일대일로 참여 협정에 서명했다. 일대일로에 참여함으로써 얻는 많은 이익은 미국의 강요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역설한다.

두 번째 규칙은 다른 국가의 정치 체제에 대한 판단을 피하는 것이다. 미국이 다른 나라들에게 중국을 멀리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미국의 지위만 약화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민주주의 국가인 인도와 인도네시아는 중국의 성장에 대해 우려하고 있을지라도 베이징과 이데올로기 투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베이징이 자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느끼지 않는다. 많은 나라가 정치 판단을 더 복잡하고 미묘하게 내리고 있는 오늘날, 세계 정치 프레임을 민주 대 독재의 투쟁으로 규정한 것은 실수이며, 워싱턴이 세계를 정치체제 유형으로 구분하는 것은 그들의 이중잣대만 들어내는 것이다.

미국은 언제나 민주주의의 수호자여야 한다는 많은 미국 정책결정자와 여론 주도층의 이데올로기 신념을 고려할 때, 워싱턴이 이런 신념을 포기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냉전 시기에 공산주의 중국을 포함해서 비민주 체제와 협업하는 것을 배웠다. 만약 미국이 오랜 실용주의 문화를 되살린다면, 오늘날에도 실용주의를 할 수 있다.

세 번째 규칙은 기후변화와 같은 지구의 공동 문제에 대해 어떤 나라와도 기꺼이 협력하는 것이다. 워싱턴이 세계 경제에 대한 베이징의 영향력 확대가 불편할지라도, 청정에너지와 재생기술의 리더로서 중국의 성장을 포용해야만 한다. 중국은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이자 최대 석탄 사용국이다. 그러나 중국의 청정 기술에 대한 투자는 기후변화 대처에 매우 중요해질 것이다. 중국은 재생에너지의 생산과 소비에 있어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중국은 태양열 패널과 풍력터빈 그리고 전기차 배터리 최대 생산국이다. 즉 중국과 중국의 경제 파트너들 없이 기후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한 계획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 국가들이 발전과 인프라 수요에 충족하면서도 기후 의무를 실행할 수 있으려면 중국의 투자가 중요할 것이다. 중국수출입은행은 아르헨티나 후후이에 있는 남미 최대 태양광 발전소와 칠레 코킴보의 대규모 풍력 발전소를 포함하여 대규모 태양력과 풍력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했다. 중국은 청정발전, 수송, 산업 그리고 제조 프로젝트 개발을 포함하여 일대일로를 더욱 기후 친화적으로 만들고 있다. 그리고 유럽과 지속가능한 금융을 위한 텍소노미(에너지와 환경 친화 판단 분류기준) 개발에 협업하는 등 녹색금융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종합해서 보면, 이런 노력들은 브레튼우즈연구소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해온 그 어떤 노력도 능가할 것이다.

요컨대, 미국 정책결정자들은 최소한 중국의 경제 영향력 성장이 현재 세계의 공동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자산일 수 있다는 점을 사적으로라도 인식해야만 한다. 기후변화에 덧붙여 빈곤과 팬데믹 역시 미국과 중국이 더 큰 협력을 통해 더 효과적으로 다뤄야만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의 승리를 미국의 패배로 간주하거나, 반대로 미국의 승리를 중국의 패배로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면 이런 협력은 계속 불가능할 것이다.

이 세 개 규칙은 워싱턴이 적응해야만 하는 현실을 반영한다. 그 현실은, 개발도상국들이 발전해서 어려운 문제들도 정교하게 그리고 자주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세계를 민주와 독재, 선과 악 이분법으로 규정함으로써 큰 실수를 범해왔다. 워싱턴이 같은 이념과 체제를 가진 정부들과만 협력할 수 있다면, 사람 대부분이 다른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는 남반구에서 미국은 고립될 것이다.

개발도상국 대부분은 중국과 협력하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결국 남반구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을 축소하거나 반격하려는 그 어떤 미국의 노력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세계에서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두 강대국이 협력할 수 있는 분야를 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만 한다. 베이징과 워싱턴 모두와 협력하고자 하는 개발도상국들에 대해서, 미국은 아세안을 본보기로 삼아야만 한다. 아세안의 실용적이며 균형 잡힌 행동은 다른 개발도상국의 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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