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가능한 탄소중립의 길을 찾는, 김재민 (주)이젠파트너스 대표

이번 준비1호에는 탄소중립 • 에너지분야에서 활동하고 계신는 ㈜이젠파트너스 김재민 대표와의 인터뷰을 실습니다. 지난 2022년 11월 16일 임시 사무실인 여의도파라곤 828호에서 넥스트브릿지 한윤형 기획위원이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Q. 대단히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계신 것 같다. 본인이 지금 하시는 일을 간략히 소개한신다면?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크게 봐서는 영리법인과 비영리법인, 두 개의 활동을 하고 있다.
먼저 영리법인으로는 ㈜이젠파트너스의 대표를 맡고 있다. 제로탄소 에너지 컨설팅 전문기업이다. 제로탄소 건물과 제로탄소 도시를 기획하고 컨설팅한다.
그리고 비영리법인으로는 (사)지역경제녹색얼라이언스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이 단체는 친환경탄소중립 관련된 기술과 제품을 공급하는 일을 한다. 일종의 기업들의 협회에 해당하지만 전문가들이 같이 들어가 있다. 개인 회원, 기업 회원, 단체 회원이 있다. 환경부 승인을 받은 비영리법인인데 제가 공동 대표로 운용하고 있다.
Q. 두 개의 활동을 하신다지만 전문성은 하나의 영역으로 모아지는 것 같다. 두 활동의 차이가 있다면?
말씀하신대로 영역 자체는 일치한다. 차이가 있는 게 있다면 영리법인의 경우는 기업활동이다. 수익창출이 목적이며, 투자자도 있다.
반면 비영리법인은 목적사업으로 공공의 이익을 추구한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탄소중립사업을 지원하고 지역의 경제를 부흥시키는 그런 사업들을 기획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Q. 전공 내지는 관심사가 평범하지는 않으신데, 어쩌다가 제로탄소 문제, 에너지 문제를 고민하게 되셨는지? 특정한 계기가 있으셨는지?
학부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했다. 석사는 건축공학 중에서 건축설비를 다뤘다. 건축설비 문제 중에 에너지가 포함되어 있다. 석사논문은 삼성 반도체 공장의 에너지 절약 모델을 만드는 것이었다. 어떻게 친환경적으로 실내 공기환경 등을 구축할 것인가에 관한 내용을 다뤘다. 이후 영국의 스트라스클라이드대학(University of Strathclyde)으로 유학을 갔을 때 에너지 시뮬레이션 모델링을 다루게 됐다. 거기서 박사학위를 받은 내용이 바로 에너지 계획을 위한 정보 시스템 모델을 만드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영국이나 유럽은 다들 알다시피 기후변화 대응 문제에 민감하지 않나. 그래서 재생에너지, 그 중에서도 풍력발전소, 에너지효율 문제 및 건물 에너지 문제에 대해 많이 공부했다. 그렇게 영국의 대학에서 23년을 보냈는데, 대학에서 학생들도 가르쳤지만 주로 연구를 했다. 1997년에 영국으로 간 이래 1998년부터 연구보조원(연구조교)을 했으며, 연구원과 책임연구원을 거치면서 5년 동안 강의도 했다. 그러다가 제작년에 은퇴를 해서 한국에 돌아왔다.
국내에서 제로에너지연구를 하게 된 계기는 영리법인 ㈜이젠파트너스를 십여년 전에 창립하면서부터다. 그 시절 이명박 정부에서 녹색성장을 내세우지 않았나. 녹색성장을 위해서는 건물에너지를 얼마나 줄일 거냐가 중요한 문제였다. 건물은 결국 도시의 구성요소니까 도시가 어떻게 에너지 사용을 줄일 것인가란 문제이기도 했다. 이전부터 그런 연구를 해오다 보니 전공성을 살려서 영국의 대학과 한국의 기업을 엮어서 같이 연구를 해보자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이젠파트너스를 창립한 이후 삼성전자, 에뜨리라고 하는 전자통신연구원, LH공사 등과 함께 프로젝트를 했다. 신재생에너지를 건물에 도입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
그러다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탄소중립이 의제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저는 굳이 따지자면 이제 영국국적을 가진 한국계 외국인인데, ‘브레인풀’이라고 하는 전문가 초청프로그램에 초빙됐다. 한국의 학술재단, 연구재단에서 외국에 있는 주요 분야의 연구자들을 초빙하는 프로그램에 초대를 받아서 한국해양대학교에서 초빙교수로서 일년 반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에서 탄소중립에 대한 정책이 나오기 시작했고, 나도 자연스럽게 관련된 교육과 연구활동을 하게 됐다. 그렇게 하다 보니 한국 쪽이 이제 탄소중립 정책에 대해 굉장히 적극적이고, 최근 한국 기업들이 ESG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사정을 보다 보니 사업 계획을 한국에서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영국의 대학을 조기 은퇴하고 왔다. 영국의 대학은 조기 은퇴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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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운영은 아직 이 분야가 수익이 나지는 않지만, 사회전반적으로 공익적인 차원에서 기후변화 대응의 일환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캠페인이 아니라 사업적으로 하고 있다. 기업체나 정책전문가들과 같이 모여서 비영리 법인을 만들었다. 주로 기초지자체의 탄소중립 사업들을 기획해주고 지원해주는, 얘를 들면 기초지자체가 중앙정부의 사업을 지원해서 지원금을 받을 때 보조금을 받는다 할 때 전문가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걸 지원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Q.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어떻게 에너지절약문제, 환경문제 같은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을까? 특히 1990년대에 그런 관심을 가진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석사를 하면서 대학 연구실에 갔을 때, 거기가 건축설비환경 연구실이었다. 그 연구실에 가면 환경문제도 다룰 수 있고 설비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저는 앞으로는 에너지 쪽이 해야 될 것이 많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석사논문을 에너지 효율화 쪽으로 간 거다. 반도체공장은 에너지소비가 일반 건물보다 20배 이상 많다. 그래서 만약에 이 영역에서 에너지소비를 십분지 일로 줄일 수 있다면 굉장히 많이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석사논문은 그렇게 연구 입문 과정으로 했고, 좀더 깊은 공부를 하려고 영국에 유학을 가서 공부를 심화하게 됐다. 영국의 에너지 시뮬레이션 기술이 가장 앞서 있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유학을 가보니 영국에선 신재생에너지에 관심이 많았고, 저도 자연스럽게 그런 연구를 하게 된 계기가 됐다.
예를 들면 EU의 과제로 스마트 에너지라고 하는, 온라인 에너지 서비스 문제로 3년간 큰 과제를 수주해서 했다. 주로 EU과제는 유럽국가의 기관들이 발주하고 3개 회원국 이상이 모여서 과제를 수행한다. 대략 15년 전 일이었는데, 어떻게 해야 온라인으로 수집되는 실시간 정보를 통해 에너지를 효율화할 것인가, 그 과정에서 재생에너지를 접목할 것인가의 문제였는데, 당시 그와 비슷한 연구사업들을 많이 참여했다. 그때부터 인터넷을 통해서 에너지 정보 서비스를 어떻게 할 거냐, 모니터링을 어떻게 할 거냐, 문제를 다뤘다. 에릭슨과도 같이 일해 봤다.
그런 일을 하다보니 영국의 우리 대학에서 삼성물산하고도 같이 일을 하게 될 기회가 생겼다. 강남에 있는 삼성물산 건물, 삼성타워 건물을 지을 때 우리가 컨설팅을 하게 됐다. 건물이 올라가기 전에 어떻게 친환경적인 건물을 만들지를 설계했다. 당시 삼성에선 그룹 차원으로 연구팀을 꾸렸는데. 우리는 유럽 쪽 파트너로 참여해서 일을 하게 됐다. 그 결과물이 삼성 입장에서도 상당히 만족스러웠는지 그 이후에 우리 연구소에서 교수급이 삼성물산 연구소에 들어가서 2년간 일을 했고 그 과정에서 계속 삼성 쪽 일을 수주하고 과제를 함께 했다. 그렇게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을 자주 왔다갔다 하게 됐고, LH나 SK나 GS건설이나 건설기술연구원 등과도 같이 일을 하게 됐다. 에너지 모델링을 통해 에너지 시스템을 복합적으로 고려할 때 어떤 도시의 탄소배출량을 산정하고 비용을 계산하는 일을 주로 했다. 그게 8~9년 전의 일이었으니 그때부터 친환경적인 일을 한 것이다. 영국의 대학에서는 기술적인 부분을 지원하면서 한국 쪽 일은 파트너들과 함께 기업을 창립하고 운영하면서 하게 됐다. ㈜이젠파트너스가 창립되고 일하게 된 계기가 그러하다.
Q. 오마이뉴스 기고문을 보면 신재생에너지 문제를 다루면서도 산업적인 관점에서 다루고 계시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말하자면 한국 정부의 정책은 너무 당위적이고 추상적이라는 비판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확실히 그렇다. 이 얘기는 계속해서 하고 있는 것인데, 내일신문에도 ‘김재민의 탄소중립’이라는 칼럼을 한 2년 넘게 쓰고 있다. 사실 그 느낌은 최초의 탄소중립 정책이 나오던 시점부터 받았던 인상이다. 왜냐하면 한국이 그동안 이 분야에서 진행을 안 했다. 가령 박근혜 정부 때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그전에 이명박 정부는 녹색성장이라도 진행을 했다. 그렇게 공백이 있다가 문재인 정부가 2020년 총선에서 압승하면서 의회에서도 힘이 났기 때문에 그린뉴딜이라고 하는 정책이 확실히 나오게 됐다.
“그린뉴딜 정책이 나온 건 좋았는데...
유럽 정책의 복사 같았다.”
그런데 그 방향 자체는 사실은 대부분 유럽의 정책을 거의 복사한 듯한 그런 것이었다. 심지어 기술까지 복사하려고 했다. 제가 영국에서 왔는데 영국에서 스코틀랜드는 풍력발전을 주로 한다. 그 문제를 다룬게 '넥스트브릿지 칼럼 35화 <종교화 된 믿음... 풍력 발전의 치명적 단점>'이었다.
연간 평균 풍속이 이 정도면 일 년 중 어느 계절에는 이보다 강한 바람으로 사람들이 걷기가 어려울 정도가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고 그런 정도 바람이 있는 지역은 대체로 거주 환경으로 적합하지 않다. 가령 영국 스코틀랜드의 북쪽 지역(하일랜드라고 부른다)이 바로 그런 곳인데, 살기가 어려워 인구 밀도는 높지 않다.
▲ 인터뷰어 첨부 : '넥스트브릿지칼럼 35화' 원고 중에 두 단락이 이러하다.
"큰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전선이 울리는 소리가 들린다. 우산을 쓰기가 어렵다"와 같은 표현을 굳이 쓴 이유는, 그 느낌은 숫자로는 잘 표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과연 ‘한국적 솔루션’은 뭐냐, 그걸 찾는 걸 우선해야 하는데, 영국이나 유럽이 이렇게 갔다는 걸 보고 거기에 끼워맞추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 많이 보인다. 아마도 영국과 독일이 먼저 했기 때문에, 그걸 선도라고 보고, 그것까지 쫓아가야 한다고 하는 조급함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어떤 문제가 생기나면, 우리가 그렇게 조급하게 갔을 때, 우리가 투여하는 자원이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지 못하고 증발하고 소모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환경정책, 신재생에너지정책에 대한 신뢰성이 사라지고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저는 계속 이 문제에 대해 경고를 했던 것이다.
“「탈원전」 표현은 전략적 실수...
원전 늘리는 것도 대안 안돼.”
Q. 국내의 논의를 보면 신재생에너지에 비판적인 이들은 주로 친원전파로서, “한국의 자연환경은 애초에 신재생에너지에 맞지 않다. 원전만이 답이다”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저는 한국은 신재생에너지가 결코 안 된다는 입장도 극단적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탄소중립이라고 하는 거는 결국엔 지구의 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탄소배출을 줄이자는 것이다. 그런데 온난화라는 건 생태계의 문제이고, 인류의 지속가능한 번영을 위한 것인데, 원자력의 문제도 또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지 않나. 탄소배출은 안 하지만 다른 환경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후쿠시마 등의 사례에서 드러났듯이 100개가 지어져서 단 1개라도 문제가 되면 문제가 큰 것인데, 과연 그런 모험을 걸 만큼 원자력발전소가 꼭 필요한 것이냐는 의문은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저는 그간 친환경 정책을 막 밀어왔던 문재인 정부 내, 민주당 내의 친환경정책 입안자들이 친원전파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만들어 놓은 측면이 있다고 본다. 그들이 지나치게 신재생에너지에 집착하면서, 그 정책의 비현실성에 대해 친원전파들이 반론하는 것이 설득력을 가지게 됐다. “신재생에너지가 결국 작동을 안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뭘 해야 할까요. 그러면 원자력 아니겠습니까”의 논리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전략적 포인트에서 매우 순진한 부분이 있었다고 본다. 현실적인 얘기를 하자면 오히려 원자력이 에너지 비중에서 40% 이상을 갈 수가 없다. 이건 기술적인 문제 말고도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그러하다. 사실 에너지 신기술들은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이 100% 공급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가령 지금 석탄이 40%고 가스가 30%라고 할 때 탄소제로를 한다고 원자력이 그 모든 것을, 70%를 커버할 수는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산업적인 문제에서도 그러하고 새로 원전을 지으면서 지역주민들의 설득을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문제에서도 그렇다. 그렇다면 우리가 원자력을 몇 년까지는 몇프로까지 할 거냐 여기서 논의를 하고 싸움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원자력을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면 반대급부가 발생한다. 앞서 말한 전략적 실수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원자력이 안 된다면서 풍력을 내세웠는데, 풍력이 잘 작동을 안한다면 당연히 사람들은 ‘그럼 원자력이 대안인가?’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저는 ‘탈원전’이란 표현도 전략적으로 잘못된 말이라고 생각한다. 에너지믹스의 구성을 바꾸는 문제, 에너지 전환의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
“한국의 아파트 문화는 축복인 부분 있어...
유럽 추종이 대안은 아냐.”
Q. 선생님이 원고에서 하시는 말씀을 살펴보면 한국의 맥락, 한국의 환경에 걸맞는 친환경정책을 구상하는 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로 논지가 그런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그런 친환경정책의 예시로는 무엇을 들 수 있는지 말씀해주신다면?
논지는 그런 것이 맞다. 저는 대표적으로는 아파트 문화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잘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인데 아파트는 대단히 에너지 효율적이고, 그래서 친환경적이다. 그렇게 수직적으로 공간을 결합시킨 형태는 유럽에는 거의 없다. 아파트와 그 주변에 모여있는 복합시설들처럼 집약적으로 모여 있지 않은 거다. 유럽은 단독주택 위주니까 사람들이 멀리 퍼져서 살고 이동하는데 에너지를 많이 쓰게 되고 그래서 탄소중립을 위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은 부분도 있다. 유럽인들더러 한국의 아파트처럼 모여 살라고 하면 그게 단시간 내에 되겠나. 가령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반발하지 않겠는가. 유럽의 문화, 유럽의 정책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정작 유럽의 생활방식이나 그 문제점은 잘 모르는 셈이다.
이건 근데 한국만 그러는 건 아니다. 미국을 봐도 유럽을 따라가자고 하는 엘리트들이 있다. 미국 엘리트 일각에 본인들이 아무리 잘 살아도 유럽이 문화적으로 우수하다고 보는 그런 열망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무슨 문제를 논하든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나 복지국가가 해법이라고 말한다. 제레미 리프킨의 <유러피안 드림> 같은 사례들이 있지 않나. 재미있는 게 특히 학술회의 같은데 가면 영국인들은 미국인들을 향해 우월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미국인들이 또 알아서 기죽어주는 분위기가 있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다소 자유분방한데 특히 미국 동부 보스턴 같은 동네 사람들은 영국에 대해 기가 잘 죽는 것 같다. 학계나 정치, 언론 방면에서 그런 분위기가 강한데 이게 한국 쪽에도 전달이 되는 것 같다.
사실 유럽에 대한 추종은 일본이 우리보다 더 심한 것 같다. 일본은 에너지 문제를 꽤 일찍 겪은 나라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일시적으로 많은 발전소를 폐쇄하고 촛불로 지냈던 사례도 있다. 만약 한국에서 동남방의 원자력발전소에서 문제가 생겼다면 그 지역이 초토화됐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 일본 열도가 얇고 길게 늘어져 있는 형상이니까 후쿠시마 등 동일본지역 일부가 거의 폐허가 되어도 그 지역을 막고 나머지 지역은 보존할 수 있었다. 한국이라면 어떻게 됐겠나. 다만 한국이라면 그렇게 한 지역을 사실상 격리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한 지역이 폐허가 되고 사실상 격리되어 버렸다고 한다면 다른 지역에 사는 친척들이 가만히 있었겠는가. 그런데 일본은 외부에서 도와주지 않았고 사실상 그 지역을 버렸다. 그래서 사태의 심각성이 한국에선 잘 지각되지 못하지만 실은 엄청나게 심각한 사태다. 그렇게 에너지 문제를 먼저 겪은 게 일본인데도 환경 쪽으로는 유럽을 추종하는 게 보통이다. 마치 유럽 쪽에서 내놓은 기후변화 정책을 가장 근사하게 모방한 정책 레포트를 내는 것이 목표인 모범생인 것처럼 행동한다. 일본도 제조업이 강한 나라인데 재생에너지가 그 산업을 떠받칠 수 있을 것인지, 이런 현실적인 고민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자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다수가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건 환경적인 면에선 축복이다. 지금도 80%가 살고 있고 더 늘어날 것이라고 하지 않나. 물론 그간 아파트가 욕망의 상징이었고, 재개발해서 용적률을 높이면 살던 사람도 큰 이익을 얻을 수 있고 이랬던 구조는 수요 공급의 법칙이 있으니까 어느 정도 선에서 끝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에너지적으로 세뇌받은 문제가 뭐냐면, 한국인들이 엄청나게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악당’이라고들 하지 않나. 명확히 말하면 ‘악당’인 부분은 산업, 그중에서도 제조업이다. 우리나라 개인들의 생활에서의 에너지 소비량은 명백하게 유럽보다 적다. 산업 분야 에너지 빼고 계산하면 실제로 그렇게 나온다. 유럽의 단독주택은 주거환경의 관점에서 보면 본인들에겐 매우 쾌적하고 좋을 수 있는데 에너지 소비의 관점에서는 명백하게 나쁜 것이다.
에너지 소비의 효율은 집적하면 집적할수록 높아진다. 몇 년 전에 제가 흥미롭게 봤던 것으로 김부선 배우가 ‘난방열사’라고 찬탄받았던 사건이 있다. 그 아파트에서 몇십 세대의 가구가 전기량은 올라가고 전기비는 내고 있는데 중앙난방 시스템에서 난방비는 전혀 내고 있지 않았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었다. 그 시기에 빈집이거나 해외를 가거나 그러지 않았는데도 그랬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미터기 유량계를 건드려서 조작했거나 아니면 관리사무소에서 부정을 저질렀다고 생각한 거다. 그런데 2년 후에 성동경찰서에서 조사결과가 나왔는데 그런 종류의 부정은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찰서에서 내리는 결론은 ‘부정이 없었다’에서 끝나는데 그럼 이 사건의 함의는 뭘까.
제 생각은 이렇다. 아파트처럼 집적된 난방체계에서 영리한 사람들은 설정온도를 낮춰서 난방비를 거의 안 쓸 수 있다는 거다. 한두 세대가 아니라 수십 세대가 나왔으니까 단순한 미터기 설비의 결함이나 오류가 아닌 거다. 우리는 한국인들이 겨울에도 속옷차림으로 지낸다고 에너지 낭비를 지나치게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사람들이 설정온도를 24~26도 정도로 해놓고 산다고 했을 때, 그 중간에 어떤 사람들은 설정온도를 20도로 해놓고 난방비를 하나도 안 쓰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도 문제는 있다. 스웨덴이라면 이 문제를 ‘에너지 저스티스’란 관점에서, 모두들 열기를 공급받은 만큼 돈을 내야 하는데 누군가는 무임승차를 했다고 비판했을 것이다. 정의의 관점에선 물론 맞는 말인데, 에너지 효율의 관점으로 돌아오자면 집적해서 사는 아파트는 그만큼 적은 에너지를 쓰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따뜻하게 지낼 수 있는 구조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고, 그래서 제조업 공장이 아니라 생활환경의 측면에선 유럽보다 친환경적으로 살고 있다.
“탈탄소 하느라 제조업 버릴 건가?
우리가 그럴 수는 없다.”
영국 같은 경우를 생각해보면 영국도 과거에는 에너지를 많이 쓰는 나라였다. 자동차공장과 조선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대부터 그런 제조업 경쟁력이 낮아지고 일본과 한국에 산업을 뺏기게 됐다. 대처가 영국병을 고쳐보자고 했지만 노동조합 때려잡는 것 이상의 효과는 없었다. 이후 20세기 말에 토니 블레어 정권이 등장해서 돈 많이 들어가는 제조업은 아예 버리고 자원이 적게 들어가는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가자고 천명하게 됐다. 제가 영국에 유학간 시기가 딱 그때 정도였다.
영국 정부가 8년 전에 디커플링 관련한 보고서를 냈다. 그러니까 영국에선 GDP 상승과 탄소 배출률 상승의 관계에서 디커플링을 이룩했다고 자랑한 것이다. 실상을 따지면 제조업을 전부 버렸으니까 그게 가능했던 것이다. 영국 한 나라는 그렇게 살 수 있다. 인류 전체로 봤을 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디커플링이 맞나. 자동차는 버리고 군사용 탱크는 남기는 등 부가가치가 아주 높은 것만 남긴 식이다. 롤스로이스도 자동차는 포기했지만 제트엔진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럼 용광로에서 철 만드는 건 누가 하나. ‘소는 누가 키우냐’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
지금 영국의 방식은 그렇게 값싸고 양산하는 제조업은 중국에게 맡겨 버리고, 중국에게 문제를 떠넘겨버리고 중국이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기후악당이라고 비난하는 식이다. 한국더러 기후악당이라고 하는 것도 큰 틀에서 다르지 않다. 오히려 자기 지역에선 고급스럽게 배출 안 하고 지구 차원에선 문제를 해결한 바 없으면서도 자기 나라는 문제를 해결한 것처럼 말하는 것이 더 ‘악당’같은 측면도 있다.
결국 핵심은 그렇게 얌체같게 해서는 안 되고 내가 사용하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 배출된 탄소에 대해선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거다. 이게 사실은 기후변화 문제에 대처하고, 탄소발자국을 봐야 하고, ‘라이프 사이클 어세스먼트’를 보자고 할 때 다 나오는 개념이다. 유엔 IPCC에서 제시하고 있는 기후변화 대응 전략이다. 탄소정의적인 관점에서 탄소세를 도입하자고 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문제가 생긴다. EU에서 2년 후에 제정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앞선 얘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뒤틀린 것들이 많아진다. 값싼 제조업은 중국에 떠넘겨버리고 그 중국에게 사실상이 관세를 물리겠다는 것인데, WTO 체제로 자유무역을 한다면서 그런 걸 주장하는 게 모순이 아닌가 싶은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태양광패널의 전세계 90%는 중국산이다. 유럽의 경우는 그 상황이 싫은 것이다. 자국의 태양광산업은 몰살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상황은 이미 끝난 거다. 중국 입장에서 본다면, 수지타산이 안 맞았던 태양광 사업의 위기를 중국이 해결해준 건데 거기다 대고 욕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도 새만금에서 태양광패널을 깔았는데, 중국산을 썼다고 문재인 정부가 국산산업 죽이고 중국을 챙긴다고 뭐라고들 한다. 그런데 중국산 태양광패널이 국산의 1/3 가격이다. 정책 집행하는데 비용을 세 배 썼다면 그때는 배임 운운하지 않았을까. 이것은 글로벌 벨류 체인(GVC)의 문제다. 중국산이 싫다고 자동차 부품에서 중국산 덜어낼 수 있나. 밥에서 돌멩이 빼듯이 할 수 있나. 그러면 자동차가 안 돌아갈 텐데? 이런 식으로 굉장한 모순들이 있다. 서유럽 정책이 정답이라고 믿고 있는 정책입안자들에 대한 주의 및 경고가 필요하다.
“천연가스가 중요한 시대...
전기비 두 세배 오르는 경제 문제에 대해
누가 고민하고 있나?”
특히 숫자상으로 얘기하는 것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 사실 연구하는 사람들은 숫자 나와 있는 걸 보고 연구아이템을 잡는 경우가 거의 없다. 왜냐하면 지금 정리된 숫자로 남아 있는 것은 이미 3년 전 정보이기 때문이다. 그럴싸하게 나와 있는 보고서들, 영국이나 유엔에서 나온 보고서들은 편집작업에만 2년씩 걸리는 게 보통이다. 그 보고서에 실린 숫자들이 어떻게 현실을 반영하겠나. 연구하는 이들은 날 것 자체를 따라잡으면서 내 쪽에서 그 현황을 평가할 수 있는 평가 프레임을 가설로 형성하고 그걸로 평가한다. 그런데 한국 같은 후발주자들은 보고서를 보고 그 보고서 결론 방향으로 가자고 정책을 입안하기가 쉬운데 그래서는 속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탄소배출량의 핵심 문제는 산업 부분이다. 한국의 경우 산업 부분 배출이 한 3억톤되고 일반인들 생활 영역은 5천만톤 정도다. 6배 정도 격차가 난다. 이 문제 해결은 1~2년에 될 수 없고, 지금부터 제대로 시작해도 1~20년이 걸리는 문제다. 영국처럼 제조업을 없애서 해결할 건가? 영국처럼 경쟁력이 떨어져서 애물단지가 된 것도 아닌데 우리가 그럴 수는 없는 거다.
에너지믹스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시나리오가 있어야 한다. 원자력은 일단 일정 비율을 유지하고, 석탄은 줄여야 하는 것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중간에 대체자원으로 할 수 있는 건 천연가스 밖에 없다. 천연가스가 당분간은 30%는 책임져야 한다. 그런데 그러면 천연가스의 수요가 늘어난다. 가격이 높아진다. 이에 대해 어떻게 대안을 마련할 거냐, 이게 정책의 첫 번째 과제가 되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에너지도 수소냐, 핵융합이냐, 지금으로선 명확한 답이 없다. 기술이 어떻게 발전할지 지금 단계에서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지금 에너지 안보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는 천연가스다. 이건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천연가스가 마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값이 폭등한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전쟁이 끝나면 가격이 낮아질까? 안 낮아질 거다. 좀 낮아지기는 하겠는데 우리가 알던 그 수준으로 돌아가지는 못한다. 예전에 천연가스는 아주 싼 가격으로 효자노릇을 했는데 이제 그렇게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전 기준의 두배, 세배 높아진 채로 계속 가거나 점진적으로 더 높아진다. 그러면 전기가격이 가스가격과 연동되어 간다고 볼 때 우리 전기비는 두 배로 올라야 한다. 지금 두 배로 올리지 못하니까 한국전력이 뒤집어쓰고 있다. 지속가능하지 않다. 이대로 한전이 계속 뒤집어쓰면 한전이 망해야 한다. 이렇게 대규모 적자를 보면서 안 망할 도리는 없다. 상장회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결국 전기비가 두 세배는 올라야 하고 그게 일반 서민들의 생활에 타격을 주고 우리 삶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텐데, 이 문제를 인지하고 그에 대해서 정책 대안을 내는 역할을 우리 정당이 하고 있냐는 거다. 정부 기관에선 그래도 조금씩 하는 거 같은데 정당에선 안 나오는 것 같다. 이런 게 큰 문제고, 이른 문제들을 정치 영역에서 논의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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