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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 stories and ideas.

사람과의 만남이 행복한 경영학자, 류성민 교수

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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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민 경기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 인터뷰 및 정리 - 한윤형 넥스트브릿지 기획위원
넥스트브릿지의 회원 동정 코너인 ‘잇는 사람’은 회원들 각자의 생활과 연구,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하면서 지지와 협업을 도모하고자 합니다.
이번 준비 4호에는 경기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류성민 교수와의 인터뷰를 싣습니다.

최근 한국기업경영학회 차기회장(2024년)으로 내정된 류성민 교수는 2월 말의 어느 주말 넥스트브릿지 여의도 사무실에 나와 한윤형 기획위원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류성민 교수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래서 학회 활동도 즐겁다고 했다. 논문도 교수로서는 적지 않게 쓰는 편이라 했다. 올해 1월 1일부터는 한국인사관리학회에서 발간하는 <조직과 인사관리 연구>라는 저널의 편집위원장도 맡고 있다고 했다.

차기 학회장을 맡게된 기업경영학회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서, 그의 연구와 활동의 동기를 추적해 보았다.

Q. 기업경영학회 차기 학회장이 되신 것을 축하드린다. 학회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주신다면?

경영학계에 여러 학회들이 있다. 한국기업경영학회는 그중 가장 큰 학회는 아니고 중견학회 정도 된다. 경영학의 각 분야, 인사 조직, 마케팅, 재무관리, 회계를 모두 포괄하고 있는데, 경기 및 인천 지역 교수님들이 많이 참여하는 학회다.

Q. 학회에 따라 진보적이랄까, 보수적이랄까 그런 성향의 차이가 있을는지?

경영학 분야 학회들은 기본적으로는 조금 보수적으로 볼 수 있다. 아무래도 경영의 기본 목표가 기업의 이윤 창출이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 같다. 한국기업경영학회의 경우도 그런 부분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학회 부설로 한국기업경영연구소가 있는데 그 곳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연구 같은 것도 한다. 기업의 입장에서 하는 연구이긴 하지만 그래도 경영관련 협회들에서 하는 연구만큼 기울어져 있지는 않고, 기업과 직원 양자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내 경우는 세부 전공이 인사/조직인데, 인사/조직 분야 사람들은 인간 및 노동을 다루기 때문에 다소 진보적인 경우들이 많다. 사회운동에 참여하거나 학생 때 학생운동을 한 이들의 비율도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Q. 어떤 이유로 인사/조직을 공부하시게 됐는지 궁금하다.

저는 한국항공대학교 출신이다. 거기서 야학 활동을 통해 학생운동에 몸을 담게 됐다. 항공대의 경우 원래 국립대학교였다가 나중에 대한항공 재단으로 편입된 특수성이 있다. 그래서 학생 숫자가 아주 많지는 않지만 항공대를 다시 국립화시켜야 한다는 운동을 역사적으로 했던 배경이 있었다. 그런 흐름에 동참하면서 한편으로는 90년대 자주적 학생회를 만드는 학생운동을 했었다. 1995년에는 학생회장을 했었고, 총학생회장 선거에 나가서는 다행히 떨어졌다. (웃음)

이후 졸업을 앞두고 여러 가지 고민을 했다. 학생회가 과거보다 조직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시기였기에 학생운동,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아쉬웠던 것을 고민하게 되었다. 지금 MZ세대가 논의되는 것처럼 당시에는 X세대 담론이 등장했던 시기다. 학생회장을 하면 나만 잘하면 끝나는 게 아니라 다음 학생회장이 될 이를 잘 만들어야 하는데, 조직에서 사람을 남기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학부 전공이 경영학이었으니 조직에서 사람을 남기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인사/조직에 관한 공부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다. 사실 사회 진출도 생각했기 때문에 당시에 원서 내서 합격한 기업도 있었지만 고민하다가 공부의 길을 택하게 됐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Q. 대학원에선 공부만 하셨을까?

처음엔 그랬다. 인사/조직에 관해 재미있게 배우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학생회 하던 습관이 있다 보니 다른 거 아무것도 안 하고 공부만 하는 게 다소 건조해졌다. 어느날 관악청년회 회원 모집 광고를 보고 연락해서 찾아가게 됐다. 이게 2000년의 일이었다. 모집광고를 보고 찾아온 사람이 그 전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하더라. 낙성대에 사무실이 있었고, 같이 술을 마시면서 친해지게 됐다. 그렇게 청년회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그때 청년회활동에 합류해서 2004년 즈음 만들어지는 한국청년센터까지 주욱 참여하게 됐다. 지금의 실업급여를 포함한 청년층의 실업에 대한 것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운동을 했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연구를 통해 논의를 도왔다.

박사를 진학하게 된 계기도 청년회와 관련이 있다. 사실 박사과정은 갈까 말까 고민이었다. 집안 사정도 별로 좋지 않았다. 부모님은 박사를 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지만 고민이 많았다. 박사과정을 시작한 것이 2001년인데, 그때는 6.15 공동선언 정국이 있어서 통일운동의 영역도 넓어졌을 때다. 나도 통일운동에 합류해야 하는지 고민도 있었다. 그런데 청년회 사람들과 얘기를 해보니 박사를 하는 게 좋겠다고 하더라. 당시는 막 86세대라 불리는 80년대 학번 선배들이 정계 진출을 하고 있었던 시기다. 그분들이 좋은 선배들이긴 했지만 대학 시절 상황상 운동에 집중하셔서 분야별 전문성은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여겨지는 부분이 있었다. 청년회에서 우리 세대는 좀 다르게 그런 전문성을 보완하기 위해 공부를 좀 더 해보면 좋겠다는 조언들을 했다. 그래서 학생회에 대한 아쉬움으로 좀 더 배워서 활용하자는 생각으로 석사를 갔다면, 박사는 일종의 조직적인 결의와 개인적인 욕구가 만나서 시작하게 됐다. 인사/조직 쪽으로 주욱 공부를 해서 2007년에 박사를 받았다. 박사학위 공부하는 와중에 앞서 말한 한국청년센터에서 하던 청년실업 운동을 도왔는데, 넥스트브릿지 송현석 운영위원장과 함께 했다. 그때 운동이 지금의 실업급여를 체계화하는데 도움이 조금은 됐다고 생각한다.

Q. 박사 학위 취득 후엔 바로 학교로 지망하신 것인지? 경기대학교로 오게 되신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원래는 학교에 그렇게 빨리 갈 생각은 없었다.

박사 학위 취득 후 2008년에는 한국노동연구원이란 국책 연구기관의 연구원으로 갔다. 한국노동연구원은 노동과 고용 분야에서는 최고의 브레인 기관이다. 시카고학파에서 공부한 보수적인 분들도 계시지만, 꽤나 진보적인 분들도 많았다. 거기서 1년 넘게 현장 및 정책 연구를 했는데, 중간에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게 됐다. 처음엔 별 차이를 못 느꼈는데 원장이 바뀌더니 연구원의 체계가 전반적으로 무너지게 되었다. 그때 이명박 정부의 청와대에선 한국노동연구원이 노무현 정부 때 노동정책에 상당한 관여를 한 것으로 판단했던 것 같다. 그래서 참여정부 시절 정책 라인을 깨뜨리려면 한국노동연구원을 약화시켜야 한다고 보고 그런 활동을 했던 것 같다. 연구위원 협의회를 없애고, 조례 안 온 연구위원, 애국가 안 부른 연구위원을 자르려고 시도하고,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같은 것도 폐기시키고, 노동조합도 부수려고 했다. 나는 그때 주니어급 연구위원이었는데, 주니어급 연구위원들에게 정부의 보수적 노동정책에 대한 연구를 하라고 지시하니 많은 반발이 있었다. 저는 경영학 분야이다보니 상대적으로 정체성을 잘 숨긴 편인데, 어떤 연구위원은 지시를 거부하니 뒷조사까지 하는 등의 어이없는 행태들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주니어 연구위원들 다수가 나오게 되었는데, 나 역시 그 시기인 2009년에 우연히 경기대학교에 지원을 했다가 갑자기 옮기게 되었다.

Q. 교수가 된 후엔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

역시 처음에는 정체성을 숨기고 강의와 연구 열심히 하면서 잘 지냈다. (웃음) 물론 계속 시민사회 운동하는 분들을 만나고는 있었다. 그러다가 ‘소통과 공감’이란 단체를 시작하게 됐다. 역시 송현석 넥스트브릿지 운영위원장과 함께 한 것인데, 우리끼리는 주로 제가 말을 던지면 송현석 위원장이 실행하는 그런 흐름이었는데 이때도 그랬다. ‘세대 내에선 소통을 하고, 세대 간에는 공감을 하자’는 취지였다. 그 외에 경실련 노동위원회 활동을 했고, 함께하는 시민행동에서 좋은기업센터 운영위원을 맡기도 했다. 2012년 대선에서도 문재인 후보 지지선언 등의 활동을 했다.

민교협과도 인연이 닿았는데, 함께하는 시민행동에 나를 끌어들였던 선배가 민교협에서 주도하여 삼성에 대해서 비판을 하는 포럼을 기획하고 책도 같이 쓰자고 해서 합류하게 됐다. 사실 나는 아주 학문적으로 건전하게(?) 발표했다. (웃음) 삼성이 경영전략은 좋은데 인사제도 측면에서는 너무 성과주의 기조니까 이런 것만 좀 보완했으면 좋겠다. 연봉 격차가 너무 큰 문제, 근로시간이 너무 긴 문제를 조정하자는 식의 발표를 했다. 그런데 당시 토론자로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분이 오셔서 세게 토론을 했다. “분급제를 아십니까...” 삼성은 분 단위로 급여를 책정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겨레 등에 기사가 굉장히 세게 나왔고, 나는 경영학자로서 삼성을 비판한 아주 과격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때 포럼과 연구는 <위기의 삼성과 한국 사회의 선택>(2014)이란 책으로 묶여 나왔다.

2016년에는 김상곤 전 장관이 민주당 인재영입위원회를 맡았을 때 그 일을 도와드리게 됐다. 김상곤 전 장관은 서울대 경영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를 받으신 개인적으로 선배님인데, 그러면서도 교육 운동을 했던 매우 드문 케이스다. 한신대 교수로 계셨기 때문에 경기도 교육감 때도 도움을 드렸다. 김상곤 전 장관이 민주당 인쟁영입위원장을 맡게 된 시점에 간사가 송현석 운영위원장이었다. 그때 참여한 인연으로 2017년 대선에선 노동정책 일부와 평생교육, 직업교육 파트의 공약을 같이 만들게 됐다. 문재인 정부 때는 교육부, 중소기업벤처부, 그리고 고용노동부에서 정책자문위원을 했다. 노동연구원 출신이다보니 노동정책 연구도 많이 하고 용역도 많이 했는데 주로 근로시간 단축, 임금 체계 관련한 연구를 했다.

Q. 근로시간 단축, 임금 체계에 관한 연구 내용의 대략이 궁금하다.

우리나라에는 법적으로 정해진 소정근로시간이란 게 있다. 지금은 40시간이었는데, 그전에는 오랫동안 48시간이었다.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논의가 진행되면서 40시간으로 정착이 됐다. 그때에도 근로시간을 줄여도 되느냐 마느냐 논쟁이 많았다.

그러나 소정근로시간이 조정된 후에도 실질근로시간은 연장근로, 초과근로, 주말근로까지 해서 68시간까지 쓸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이걸 줄여야 한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었는데, 2017년 하반기 국회에서 주 52시간 근로시간 상한제가 갑자기 합의되어 버렸다. 이건 정부에서 진행된 게 아니라 국회에서 여야 합의가 된 거다. 저도 주장해온 바고, 근로시간을 차츰 줄여야 한다는 점은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었지만 좀 너무 급하게 벌어진 상황이 됐다. 그래서 경영계는 뿔이 났고, 여러 가지 사이드 효과가 나타나리라는 우려가 많았다. 따라서 이런 부분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안들에 대해서 계속 연구해왔다. 유연근로시간제, 예를 들면 선택적 근로제, 재량근로제, 재택근로제 등에 관한 연구를 했다.

임금체계의 경우 우리나라는 연공급, 즉 호봉제다. 이것은 그 자체로는 나쁜 임금체계가 아니다. 정년이 보장되고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상황에선 좋은 제도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기업들은 성장이 둔화됐고 공공기관을 제외하면 정년이 무의미한 상황이 되었다. 조금이라도 연봉을 더 주면 회사를 옮겨 다니면서 일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연공급의 특징은 젊을 때는 적게 받고 나이들어서는 더 받는 생활급제라고 볼 수 있다. 젊을 때엔 처자식이 없지만 나이 들면 가정이 생기니 나중에 더 보상해주자는 이연보상의 개념이다. 저축했다가 찾아가는 것과 유사하다. 그런데 요즘 상황에서는 이런 체계는 젊은 층 입장에선 매우 불공정하다고 느낀다. 본인은 어차피 이 회사에서 정년까지 일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회사에서 일하는 기성세대를 보면 하는 일에 비해 너무 많이 가져가는 것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다만 기성세대의 관점에선 ‘나도 젊을 때엔 열심히 일하고 적게 받았는데?’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렇다고 연공급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답이 아니고, 그러면 어떻게 바꾸느냐의 문제가 된다. 일단 직무급제라는 대안이 있다. 중요하고 어렵고 회사에 기여하는 이에게 더 주자는 취지다. 이건 성과급과는 다소 다른 개념이다. 성과급은 연공급과도 함께 붙여서 반영할 수 있다. 크게 봐서 직무로 갈거냐, 능력으로 갈 거냐, 연공으로 갈 거냐로 나뉘는데 한국은 지금까진 연공급제였다. 그런데 한국에 직무급제를 바로 도입하기가 어려운 부분도 있다. 한국은 직무로 가기엔 업무 범위가 너무 넓다. 그래서 업무에 대한 평가가 너무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계는 노조의 주요한 멤버들이 젊은 층이 아니고 시니어들이기 때문에 연공급제를 선호하는 게 당연하다. 그래서 MZ세대 사무직 노조가 따로 생기는 것도 자연스럽다. 이들의 이해관계는 기존의 노동조합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의 노조는 생산직 중심이고, 사무직은 정년 보장은 엄두도 못 내니 당연히 이해관계가 달라진다.

지금 논의 지형에서 정부는 무조건 직무급으로 가자고 하고 있고, 현장을 잘 아는 노동연구원 출신들은 직무급으로 우리가 바로 갈 수는 없기 때문에 과도기적인, 혹은 중간 어디쯤에서 만나는 제도가 없는지를 고민하고 있다. 그런 고민 끝에 나온 것 중 하나가 임금피크제이기도 하다. 한편 일본이 택하고 있는 역할급, 독일식의 다소 넓은 직무급(직무+책임) 등을 고민하며 대안을 만드는 논의가 이십여년째 진행되고 있다.

Q. 그 외에 최근 관심 가지고 있는 문제가 있으시다면?

일-가정 균형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일-가정 균형 제도는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는데, 사용하는 문화는 잘 안 되어 있다. 상사 눈치를 보면서 제도를 써야 하는 상황인데, 그렇지 않고 자유롭게 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다. 그래도 지금은 상당히 바뀌긴 했다. 애 낳으면 출산휴가가 남성의 경우 하루였는데 지금은 5일로 늘어났다.

Q. 분명히 바뀌고 있는데, 충분히 빨리 바뀌지 않아서, 저출생 문제가 더 심화되는 것 같기도 하다.

제가 저출생 정책 쪽의 전문가는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결혼하고 애를 낳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가지고 있는데, 이건 좋은 정책은 아닌 것 같다. 지금 체제에선 결혼하면 아이는 생긴다. 결혼한 사람들만 나누어서 보면 출생률은 반등했다. 그런데 결혼 건수가 현저히 떨어지니 전체 출생률은 떨어졌다. 즉, 결혼할 만한 상황을 조성해줘야 하고 미래가 보장이 된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출산하면 돈 주는 정책보다는 그 돈을 빼서 결혼 진작 정책에 집중하면 어떨까 싶다. 농담 삼아 결혼하면 1년 월급은 그대로 주고 장기 휴가 다녀오라고 하면 어떨까? 일종의 결혼하면 안식년 같은 것을 주는 것이다. 그렇게 지원하는 대신 그 후 10년은 빼박 열심히 일을 하도록 설계하면 어떨까. 어찌됐든 결혼을 위한 동기부여, 유인을 줘야 한다.

내 생각은 그렇다. 조선소에서 일할 사람이 없다. 그러면 사람들이 안오고 힘든 만큼 월급을 더 줘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거기에 혜택을 더 줘야 한다. 이게 가장 자본주의적인 방식이며, 자본주의 체제에서 제일 좋은 방식이라고 본다. 한국은 육체노동 임금이 다른 나라에 비해 적은 편인데 이런 걸 바꿔야 한다. 사회주의로 가자는 것도 아니고 자본주의에서 풀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마치 젊은 층이 힘든 일 하는 걸 무조건 기피하는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운전기사 대리 부르는 것과 같다. 만원에 안 오면 만 오천원 불러야 하고, 그래도 안 오면 이만원 불러야 한다. 요즘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상당히 급여를 많이 주고 있다. 그 노동 중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상 하지 않으려는 일들도 꽤 있다. 사실 그래서 노동집약 중소기업에선 외국인 노동자 고용에 대한 지원도 필요하다. 그러나 엔지니어 산업으로 넘어갈 수 있는 산업들의 경우, 그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고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임금과 복지를 많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동화만이 답은 아니다. 이런 걸 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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