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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쇼크'의 의미, 벌거벗은 임금님의 대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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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와 관점 창간준비 4호]

'이란 쇼크'의 의미, 벌거벗은 임금님의 대행진?

: 읽지 않고 떠드는 '대통령 설화 리스크' 집권 여당 전체가 인지부조화의 수렁에 빠졌다.

by 「팩트와 관점」 편집부

‘UAE의 적은 이란’이란 부적절하고 부정확한 발언으로 거대한 외교적 문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의 문제는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한국의 외교부와 정부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 문제를 ‘뭉개고’ 넘어가려고 한 방식을 보면, 대통령이 결코 문제를 인정하거나 사과를 하지는 못할 거라는 것을 전제로 해서 어떻게든 상황을 면피하려는 모습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라면 향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은 또 생길 것이며, 한국의 국익이 얼마나 침해당할 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UAE의 적은 이란’이란 부적절하고 부정확한 발언으로 거대한 외교적 문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의 문제는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한국의 외교부와 정부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이 문제를 ‘뭉개고’ 넘어가려고 한 방식을 보면, 대통령이 결코 문제를 인정하거나 사과를 하지는 못할 거라는 것을 전제로 해서 어떻게든 상황을 면피하려는 모습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라면 향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은 또 생길 것이며, 한국의 국익이 얼마나 침해당할 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의 적은 북한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16일 아랍에미리트(UAE)에 파병된 아크부대를 방문해서 한 격려발언은 한국의 국익에 하등 쓸모없는 논란을 불러왔다. 윤 대통령 발언의 의미는 ‘한국의 주적은 북한이듯이, 아랍에미리트(UAE)의 적은 이란이다. 파병 장병들은 그 이란이 한국의 적이라는 태도로 임해야 한다’라고 독해될 수밖에 없다. 달리 해석할 도리는 없다.

 ‘설화 사건’ 터진 이후에도 문제를 방치고 뭉개려고 한 한국

따라서 이란 측에서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국교관계가 있는 국가가 멋대로 ‘적’ 선언을 했는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미국) 국회에서 이새끼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 쪽팔려서 어떡하냐”는 발언은 사실 그대로라 하더라도 비속어 논란이지 미국을 적대국 취급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오히려 이 발언은 “(한국) 국회에서 이새끼들이 승인 안 해주고 날리면 쪽팔려서 어떡하냐”라고 들어야 한다고 극구 우겼는데, 이번 발언에 대해선 그런 차원의 해명조차 내놓지 않았다. 설화 사건 직후 온라인상에서 많은 누리꾼들이 “오해다. 다시 한 번 들어봐달라. 우리 대통령의 발언은 ‘이런! 우리의 적은 북한이다’라는 것이었다”는 식으로라도 해명하라고 조롱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한국 정부는 설화 이후에도 해명없이 혼란을 방치했다.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은 1월 17일 오후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윤 대통령 발언에 대해 “한국과 이란과의 관계와는 무관하다”, “장병 격려 차원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설명했다면서, “저희는 (이란이) 우리 설명을 이해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앞서 설명했듯 윤 대통령 발언의 의미는 ‘한국의 주적은 북한이듯이, 아랍에미리트(UAE)의 적은 이란이다. 파병 장병들은 그 이란이 한국의 적이라는 태도로 임해야 한다’라고 독해될 수밖에 없다. 이걸 ‘한국과 이란과의 관계와는 무관’하다느니 ‘장병 격려 차원에서 나온 발언’이란 식으로 해명하면 ‘우리 대통령의 말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얘기하는 것밖에 안 된다. 해야 할 일은 ‘바이든’을 ‘날리면’이라고 우겼던 억지 춘향으로라도 ‘대안적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하거나, 발언이 잘못되었음을 깔끔하게 인정하고 사과 내지는 유감을 표하는 방법 밖에 없다. 한국 정부는 후자를 선택할 수가 없기 때문에 사건이 발생한 후에도 며칠간 사태를 뭉갠 것으로 봐야 한다.

이란 외무부는 사태 직후인 1월 16일(현지 시각) “한국 대통령의 간섭하는 발언(meddling)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이 이슈에 대한 한국 외교부의 설명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주한 이란대사관도 대통령 발언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해명을 요구했다. 이 기간 동안 한국 정부는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의 발언처럼 ‘우리는 충분히 설명했고, 이란은 이해했다고 생각한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소망적 사고’로 사태를 무마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란 외무부는 1월 18일에는 윤강현 주이란 대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이란의 레자 나자피 법무‧외교차관은 윤 대사를 만나 이란과 페르시안‧걸프만 지역 국가 간의 뿌리 깊은 우호 관계를 설명하고, 윤 대통령의 발언이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해친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제재 이후 원유 교역이 중단되면서 한국의 은행에 동결되어 받지 못한 원유 판매 대금 70억 달러(약 8조 6100억 원)애 대해서도 한국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효과적인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이란과 한국의 관계를 재검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란 측은 최근 윤 대통령이 자체 핵무장 가능성을 언급한 것과 관련해서 NPT(핵확산금지조약)를 위반한 것이 아니냐며 한국 측의 설명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이란 대사를 맞초치하는 조치로 대응했다. 그러나 이는 적절하지 못한 대응이다. 사실 이란 측의 요구는 당연하며 정당하기까지 하다. 외교 관계에서 ‘적’이란 말은 전쟁 중인 적성국에게나 쓰는 말이지, 잠재적 적대국을 향해서도 자제하는 말이다. 한국에서도 북한을 ‘주적’으로 명시하는 것이 적절하느냐에 대해서 논쟁이 있는데, 설령 북한을 ‘주적’으로 본다고 하더라도 이는 종전이 아닌 휴전 관계, 서로를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하지 않고 반국가단체 취급했던 분단국가의 특수성에 의한 것이다. UAE와 이란이 현재 전쟁 중이거나 국교가 없는 나라도 아니고, 교역관계가 있는 나라인데 남북관계에 포개어 ‘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결코 타당할 수가 없다.

이란 외무부는 1월 23일에도 한국 정부의 조치가 ‘불충분’하다고 언급하며 압력을 가했다. 외교가에서는 사면초가 상태인 이란이 이번 논란으로 한국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일 거라는 관측을 하기도 한다. 이란의 지정학적 무기, 세계 원유 공급량의 1/5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항행도 문제다. 2021년 1월에도 한국의 화학 운반선이 호르무즈 해협을 항행하다 이란혁명수비대에 나포된 바 있다. 대통령의 설화가 터지자 1월 18일 한국 해운협회는 “페르시아만 및 호르무즈 해협 통항 주의 당부”란 제목의 협회장 명의 공문을 협회원인 163개의 선사에 발송한 바 있다. 대통령의 설화가 새로운 ‘리스크’를 만든 셈이다. 여타 중동 국가들이 한국의 외교 노선을 어떻게 이해할는지도 우려되는 바다.

아크부대를 둘러싼 맥락을 살피면 더 황당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의 더 큰 문제는 파병된 아크부대의 성격과도 배치된다는 것이다. 아크부대의 주임무는 아랍에미리트 부대에 대한 특수전 교육 훈련이다. 아크부대의 다른 명칭이 ‘UAE 군사훈련 협력단’인 이유다. UAE 특전부대 교육훈련 지원 및 연합훈련 등 국방교류협력, 유사시 재외 한국인 보호임무 수행이 공식 업무다. 유사시 아랍에미리트의 ‘적’과 함께 싸우는 의무가 부과되어 있지 않다.

맥락을 좀더 살펴보면 더 황당해진다. 아크부대는 문재인 정부 때였던 지난 2018년에 ‘UAE 한국군 개입 비밀협약 논란’에 휩싸였다. 핵심은 이명박 정부가 아랍에미리트에 원전을 수출하면서 한국군이 아랍에미리트의 유사시에 자동 참전한다는 비공개 이면합의를 체결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하자 각종 의혹이 불거졌고 자유한국당과 보수언론은 ‘북한 접촉설’,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UAE의 불만에 대한 대응’ 등의 의혹 제기를 양산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이면합의를 해소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으로 밝혀진 것이다. 즉, 아크부대는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적 이면합의로 애초 “유사시 아랍에미리트의 ‘적’과 함께 싸워야 한다는 부당한 임무”가 부과되어 있었는데 전임 문재인 정부의 외교적 노력으로 그 부조리를 해소한 것으로 알려진 상황이다. 김종대 전 의원처럼 윤석열 대통령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이명박 정부가 체결한 반헌법적 군사협약을 누설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지만, 외교가에서는 김종대 전 의원이 윤 대통령 발언의 맥락을 너무 ‘합리적’으로 해석해줬다고 보는 편이다.

이러한 과거의 맥락이 뻔하게 있는데 신임 정부의 대통령이 실질적으로는 한국이 아랍에미리트와 함께 싸워 주지도 않을 거면서 ‘UAE의 적은 한국의 적’ 운운했다는 것은 정말이지 윤석열 대통령이 전후맥락을 하나도 고려하지 않고 아무말이나 지껄이는 사람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에 하나 김종대 전 의원의 지적처럼 ‘반헌법적 군사협약’의 내용을 누설한 것이라면,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한 것이 된다. ‘이란 쇼크’를 그저 지나가는 해프닝으로 취급할 수 없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의 행태가 실제로 그러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정황증거는 많다. 지난해 10월, 영입 열흘만에 사퇴했던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캠프 이동훈 전 대변인의 묘사를 보면 윤 대통령은 “1시간이면 혼자서 59분을 얘기한다. (...) 원로들 말에도 ‘나를 가르치려 드느냐’며 화부터 낸다”고 한다. “나 때문에 이긴 거야. 나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야”라고 말한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남의 말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남의 글도 읽지 않는다는 정황증거도 있다. 지난해 9월, 보육 문제를 의논하고자 세종시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은 “아나바다가 무슨 뜻이에요?”라고 물었을 뿐 아니라 방문한 곳이 0~5세 미만 대상 어린이집인데도 불구하고 “난 아주 어린 영유아들은 집에서만 있는 줄 알았더니, 아기들도 여기를 오는구나. 두 살 안 되는 애들도”라고 말한 바 있다. 대통령실에서 대통령의 방문 동선에 따라 읽기 자료를 준비하지 않을 리가 없는데, 그것조차 전혀 읽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UAE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의 적은 북한이다."는 식의 아무 말 역시 그런 문맥에서 나왔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바다.

인지부조화의 수렁에 빠진 정부 여당, 보수의 자격을 묻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벌거벗은 임금님의 대행진’에 대한 정부 여당의 브레이크가 없다는 것이다. 1월 17일 오후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UAE가 중동에서 가장 위협을 받고 있는 나라는 실질적으로 이란이고 UAE 국민들도 적대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며 “그래서 군사력이 필요한 거고, 다만 표현에 따라 상대를 자극할 수 있다는 걸 우려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조현동 외교부 1차관은 “제가 외교부를 대신해 말할 순 없지만 그렇게 알려져 있다”며 호응했다. 또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이란의 사법살인 논란을 거론하며 "이란은 근래 보면 거의 '악당 국가'다. 인권탄압을 개선하지 않으면 강경해야 한다"며 윤 대통령 발언 논란으로 사과를 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조 차관은 이에 "이란 인권탄압 문제는 국회에서 '이란 여성 인권 시위에 대한 폭력적 진압 규탄 및 평화적 사태 해결 촉구 결의안'이 통과되기도 해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1월 25일에는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역시 “이 발언은 사실관계가 맞는 발언”이라면서 설화를 문제삼는 것은 “사실 관계에 기인하지 않으면서 순방 성과를 폄훼하기 위한 민주당의 이간질”이라고 주장했다. 사실상 집권 여당 전체가 모든 외교안보적 맥락을 무시하고 사건을 국내 정치 정쟁으로만 몰고 가고 있다.

이란의 ‘히잡 시위’ 탄압과 ‘사법 살인’ 논란의 인권유린에 대해서 대한민국이 대응하는 것이 ‘가치외교’일 수는 있으나, 한국 정부는 그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아니면서 그와 전혀 별도의 사안인 대통령의 실언에 대해서 비호하고 있다. ‘벌거벗은 임금님의 대행진’은 임금님만 춥고 부끄러우면 끝날 일이지만 이러한 행태가 국익에 어떠한 저해가 될는지는 계산조차 되지 않는다.

결국 ‘읽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마구 떠드는 대통령’, ‘그러면서도 잘못을 인정하거나, 사과하는 일도 결코 하기 싫은 대통령’이라는 리스크가 집권 여당 전체를 거대한 인지부조화의 수렁에 밀어놓고 있는 셈이다. 다만 대통령, 몇몇 윤핵관이라 불리는 이들, 여당 인사들을 넘어서 이 상황을 방치하는 보수세력 내지 진영 전체가 한국 사회를 통치할 역량 및 자격을 상실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심각하게 던져야 할 때가 아닐 수 없다. 이대로라면 ‘이란 쇼크’는 이번 한 번만, 외교적인 문제에서만 닥쳐올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란 #주적 #설화 #윤석열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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