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대의원제’를 폐지말고, 권리당원으로 하여금 선출하게 하라
[팩트와 관점 창간준비 6호]
by. 「팩트와 관점」 편집부
그러나 한국의 정당이 지금의 허약한 모습을 벗어나 정치의 주역이 되기 위해선 먼저 정당 정치를 강화하면서 팬덤정치와 동행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정당 내 풀뿌리 민주주의, 그러니까 당원으로부터 시작하되 당내에서 더 책임있는 위치로 올라가면서 책임과 권한이 강화되는 동심원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대의원제 폐지’를 손쉽게 말하는 것은 이 동심원 구조를 대안없이 허물자는 것이다.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의 가치의 격차가 심하게 난다는 문제는 오히려 대의원 숫자를 늘리면서 해소되는 방안을 고민해볼 수 있다.
단순하게 ‘대의원제 폐지’를 대안으로 내세울 것이 아니라 다양한 당원을 잘 대의하는 대의원제로의 개혁을 고민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권리당원이 대의원이 되면서 정치를 시작할 수 있는 풍토가 정착해야만 한다.
최근 ‘대의원제 폐지’ 논의가 민주당 당내 갈등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해당 논란은 당내 여론지형과 언론을 통해 계파 갈등으로 해석된다. ‘친명’은 ‘대의원제 폐지’를 주장하고, ‘당원 중심 정당’을 표방하며, 흔히 ‘개딸’이라 칭하는 ‘팬덤정치’ 세력의 지지를 얻는다고 이해된다. ‘비명’은 민주당이 ‘팬덤정치’와 선을 그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대의원제 폐지’에 유보적인 것으로 그려진다. 정당 개혁에 관한 논의도, 팬덤정치란 현상 그 자체도 지난 이십여년 간 쌓여온 역사가 있는데 그 맥락은 소거되고 권력다툼만 남는 것이다.
먼저 하나 확실히 해야 할 것이 있다. 일각에선 ‘대의원제 폐지’가 내년 총선 당내 경선에 적용되는 일이라 생각하기도 하지만, 대의원제는 당내 경선과는 제도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현행 제도에서 당내 경선은 권리당원 투표, 여론조사, 선거인단 투표의 조합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의원제와 권리당원 간의 ‘표의 등가성’이 문제가 되는 것은 전당대회(전국대의원대회)다. 그리고 지난 전당대회에선 ‘표의 등가성’과 상관없이 소위 ‘친명’계가 선전했고 그 결과가 지금의 정당 지도부다. 따라서 ‘전당대회’가 아니라 ‘내년 총선’을 대비해야 할 지금 민주당의 입장에서 ‘대의원제 폐지’ 여부 자체가 쇄신의 이슈로 등장한 것 자체가 매우 당황스러운 일이다. 이는 지난 ‘돈봉투 사건’의 원인이 일각에서 대의원제로 진단된 이후 지지층 사이에서 ‘대의원제 폐지’가 ‘개혁 의제’로 확산되면서 일어난 일이다. 그렇더라도 ‘대의원제 폐지’ 여부가 총선 경선과는 무관하다는 논점 정리는 명료하게 해야 할 것이다.
▶ 팬덤정치, ‘결별’ 아닌 ‘공존’의 대상이 되어야
사실 그간 일각에서 나왔던 ‘팬덤정치와의 결별’이란 주문도 매우 무성의한 것이다. 온라인 기반 특정 정치인을 향한 지지의 결집이란 차원에서의 팬덤정치는 민주당에서는 적어도 2001년부터 시작됐다. 투박하게 나눈다 하더라도, 1기 팬덤정치는 ‘노사모’(2001년~2007년)였으며, 2기 팬덤정치는 ‘문파’(2012년~2017년)란 흐름으로 나타났고, 3기 팬덤정치가 ‘개딸’(2022년~)이란 흐름으로 시작됐다. 현재 민주당에서 활동하는 정치인 중에서 팬덤정치의 수혜를 입지 않은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제와 ‘이재명의 팬덤정치’가 문제라고 하면 본인들이 활용한 도구를 이재명은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로 이해되기 십상이다. ‘팬덤정치와의 결별’이라고 주문하면 ‘친명’ 대 ‘비명’의 정파구도로만 해석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팬덤정치’ 자체는 시대 흐름과 매체 변동을 고려해볼 때 앞으로의 민주당 지지층의 저변확대를 위해서도 필연적인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즉, ‘팬덤정치와 결별하고 정당을 강화’하자고 말하기보다, ‘팬덤정치를 정당 강화의 에너지로 삼는 지혜’를 찾아야 할 때다. 다만 이때에 정당 강화 노선은 기존의 정당 이론을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팬덤정치 그 자체보다는 팬덤정치를 본인의 권력 강화에 무분별하게 활용하면서 결과적으로 정당의 역량을 훼손하는 정치인들의 활동이 문제다. 이 사안으로 본다면 결코 단순하게 접근해서는 안 될 ‘대의원제’ 논의를 쉽사리 ‘폐지’란 대안으로 끌고 가는 정치인들이 문제라 볼 수 있다.
▶ 지난 20여년간 한국의 정당 구조가 취약해진 이유?
2023년 5월 1일 국회미래연구원 <국가미래전략 Insight 67호>에 실린 <만들어진 당원 : 우리는 어떻게 1천만 당원을 가진 나라가 되었나>(박상훈·정순영·김승미)를 보면 한국의 정당 정치가 어떻게 약화됐는지가 잘 분석되어 있다. 요즘 해외 정당정치의 지배적인 경향은 당원수는 줄어들고 정당수는 늘어나는 것인데, 오직 한국만이 양당정치가 심화되면서 당원수는 늘어나는 ‘한국적 예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보고서는 이러한 당원 폭증이 정당 발전의 결과물은 아니라고 분석한다. 한국 정당의 허약함은 양당의 잦은 비대위 체제, 과도한 외부 영입과 인적 교체, 높은 초선 비율(그러나 다른 나라 정당에 비해 초선 의원의 평균 연령은 높은 편) 등으로 드러나고 있다. 시간적으로 고찰해보면 지난 2004년 정치관계법의 대대적인 개편 이후 ‘지지자 중심의 정당 모델’(플랫폼정당론)과 ‘당원 중심 대중정당’을 주장하는 흐름이 동시에 나왔으며, 두 주장은 논리적으로는 대척점에 있었으나, 놀랍게도 두 주장에 의한 제도가 동시에 도입되고 강화되면서 오늘날의 허약한 정당 구조가 갖춰졌다고 분석된다. 보고서를 떠나 더 세밀하게 논평하자면, ‘지지자 중심의 정당 모델’에선 당원 정체성이 중요하지 않고 ‘당원 중심 대중정당’에선 중요한데, 민주당은 2010년대 초반까지 (이른바 ‘나꼼수’ 열풍으로 시작된) 팟캐스트로 새로 유입된 지지층을 활용하는 플랫폼정당의 길을 걷다가 어느 순간 ‘권리당원’이 폭증하는 어정쩡한 길을 걸어왔다. 그래서 권리당원이 일반적인 ‘당원 중심 대중정당’의 당원이라기보단 여전히 플랫폼을 통해 모집된 지지층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 실정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만들어진 당원’의 세 유형은 ‘당원 아닌 당원’(유령 당원), ‘매집당원’(경선 과정에서 후보에게 동원된 당원), 그리고 ‘지배하려는 당원’으로 나뉠 수 있다. 요즘 논의되는 팬덤정치에 해당하는 당원 유형이 바로 ‘지배하려는 당원’이다. ‘지배하려는 당원’은 ‘당원 중심 민주주의’를 명목으로 대의원제 폐지를 원하지만 이는 정당의 성격이 국가나 정부와는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지 못한 주장이라 분석한다. 국가나 정부는 강제조직이지만 정당은 자율적 결사체에 해당하는 임의조직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성격이 달라진다. 시민이 국가에서 이탈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정당의 정체성에 어긋나는 경우 탈당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당의 경우 일종의 동심원적 구조로, 오래 활동하고 헌신한 이들에게 책임감과 권한이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한다.
보고서는 한국의 정당이 풀뿌리에 기반한 자율적인 정치적 결사체로 거듭나기 위해선 먼저 지역에서 당원 활동을 하다가 대의원에 선출되는 것으로 정치인의 이력을 시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경로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또한 당직자·보좌진·정책위와 정책연구원 연구직 등에 대한 경력 관리체계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제언한다.
▶ ‘폭증’했지만 ‘관리’되지 못한 민주당 신규 당원들, 그들이 대의원을 선출할 수 있게 한다면?
그렇다면 보고서를 빠져나와서 대안을 고민해볼 때 실천적으로는 대의원의 상당수(당연직과 지명직 제외)가 당원들에 의해 선출되는 구조를 만들고, 오히려 대의원 숫자를 늘리거나 혹은 전당대회에서의 대의원 투표의 반영 비율을 줄여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득표 효과 격차를 줄이는 대안을 고민해볼 만하다. 정당정치의 특성을 생각해볼 때, “정당은 당원의 것이다”란 표어에 더 잘 어울리는 것은 ‘그러므로 대의원은 필요없다’는 주장이 아니라 ‘그러므로 대의원(의 상당수)도 당원이 선출한다’여야 하는 것이다.
2010년대 민주당에서 당원 생활을 한 이들은 문재인 당대표 시절 도입된 ‘온라인 당원 가입제도’로 당원 가입의 진입장벽이 낮아져서 당원 증가의 속도는 빨랐지만 당원을 관리하는 체계가 발전되는 속도는 너무 느렸다고 증언한다. 새로 유입된 당원들은 대체로 지역위원회 체계에 편입되지 않았고, 일부 소수가 지역위원회에 나가는 경우에도 60대 이상 남성이 대부분인 분위기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그들은 온라인에서 결집된 만큼 온라인 여론의 동향에 편승하여 팟캐스트나 유튜브의 논리를 기반삼아 당내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됐다.
대의원의 상당수가 권리당원에 의해 선출된다면 어떻게 변할까. 이렇게 된다면 권리당원들은 지역위원회 체계에 포함되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낄 것이다. 또한 대의원이 되고 싶어 하는 이들은 세대를 넘어서 신규 당원들과의 접촉면을 늘리기 위해 애쓸 것이다. 신규 당원들 역시 장래에 대의원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을 가지게 되면, 그들의 대의원제에 대한 반감도 줄어들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제도가 무리없이 실현되려면 선행적으로 ‘유령 당원’과 ‘이중 당적’을 걸러내고, 권리당원의 당비 기준을 소폭 인상하는 식의 제도적 보완책이 병행되어야 할 수 있다. 정당 개혁은 ‘대의원제 폐지’라는 단순한 접근을 넘어서 이 정도의 고민과 정책적 접근이 있을 때 내실있게 이루어질 수 있다.
민주당의 현재 정당 구조를 살피면 ‘전국대의원대회(전당대회) > 중앙위원회 | 당무위원회 > 당대표 | 최고위원회’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큰 틀에서 볼 때 각각의 기능이 제대로 돌아간다면 당대표와 최고위원회는 일종의 행정부의 역할을, 중앙위원회(전국대의원대회의 수임기관)와 당무위원회는 입법부의 역할을, 윤리심판원과 당무감사원 등은 당대표와도 떨어져 있는 독립기구로서 일종의 사법부의 역할을 하는 상호 견제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별도의 대안없이 대의원제를 폐지할 경우 당헌·당규가 추구한 상호 견제구조가 무력화되게 된다. 이에 대해 ‘지금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체계이지 않은가?’라고 반문한다면, ‘취지가 맞다면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쪽이 정당 개혁인 것이 아닌가?’라고 되물을 수 있다. 이른바 ‘개딸’로 불리는 신규 당원들이 지금은 앞서 말한 동심원적 책임구조의 필요성과 권위를 부정하고 있지만, 그들 역시 대의원제가 권리당원으로부터 선출되는 구조를 접하고 오래 당활동을 지속할 경우 생각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 ‘대의원’은 ‘권리당원’이란 토양에서 피어난 꽃이 되어야 한다
대의원제를 민주당에 도입한 것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산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현실적으로 민주당에서 호남 당원의 숫자가 압도적인 상황에서, 민주당이 영남의 여론에도 일정 부분 귀기울이며 전국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대의원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취지에 당시 당내 주류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 논의지형을 다시 살펴보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느낀 대의원제의 필요성은 지금의 상황에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권리당원이 100만이 넘는 시대엔 대의원제가 필요없다는 일각의 주장이 있으나, 작년 6.1 지방선거 기준 권리당원 지역별 비율을 보면 수도권(약 41%)과 호남(약 35%)에 집중되어 있으며 영남(약 7%)은 여전히 약소하기 때문이다. 대의원을 권리당원이 선출한다는 방식을 ‘권리당원 X명당 대의원 1인’으로 규정한다면 지역 안배를 할 수 없으나, 앞선 취지를 살리기 위해 민주당은 ‘권역별 할당, 그중 당연직 임명직 이외 인원 선출’이란 식의 제도 설계를 해봄직하다.
‘권리당원이 있는데 대의원이 왜 필요하느냐?’란 질문은 형식논리적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될 수 있다. 같은 식이면 ‘국민여론이 있는데 권리당원은 왜 필요하느냐?’라고 말하는 것도 가능하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정당이나 국회의원도 필요없고, 행정부와 거대한 여론조사기관이 있으면 통치가 가능하다는 주장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즉, ‘대의’의 역할 자체를 부정하는 주장인 셈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여론의 다수결 취합에 잡히지 않는 다종다양하고 복잡다단한 이해관계를 심도있게 대의할 때 건전해진다. 대의원제를 폐지하기보다, 대의원이 국회의원이란 화분 속에 함께 심어진 풀이 아니라 권리당원이란 토양 위에 피어나는 꽃이 되기 위한 제도적·문화적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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