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반지식으로 사회적 변화의 길을 찾는, 양승훈 교수

이번 준비2호에는 경남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1월 시작하는 넥스트클래스의 첫 강연을 선뜻 허락해주신 양승훈 교수와의 인터뷰을 싣습니다. 대면 인터뷰의 어려움으로 넥스트브릿지 한윤형 기획위원이 서면과 통화로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경남대 사회학과 양승훈 교수를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는 경남대의 소재지인 창원시와 거주지인 서울, 그리고 박사학위를 위해 대전을 오가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결국 몇 차례 시간을 조율하다가 끝내 서면 인터뷰로 대체하기로 했다.
Q. 이번에 넥스트브릿지에서 처음 시도하는 ‘넥스트 클라스 오픈강좌’ 1강을 맡게 됐다. [산업가부장제: 산업도시 청년노동을 통해 본 젠더문제 / 지방소멸? 여성의 커리어는 고려하고 있나?]라는 흥미로운 제목과 주제를 제시하셨는데,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다면?
서울에서 나고 자라 군생활까지 수도권에서 20대를 보냈는데, 30세부터 지금까지 십수년은 지방에서 지냈다. 처음에는 이질감으로, 나중에는 사명감으로 고민하게 되는 게 있다.
여성들은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가사 노동을 하고, 그녀들의 남편들은 과로하고 술로 밤을 보내는 가정. 서울에서 대거 채용되어 내려온 남성 청년들은 연봉을 많이 줘도 그게 답답해서 도망치려고 애쓰고, 여성 청년들에게는 아예 일자리가 없고 오로지 결혼만이 지역사회에서 발언권을 얻을 수 있는 분위기. 누군가는 그게 가족 같은 분위기이자 조선소를 움직일 수 있는 원천이라고 했다. 산업도시에 위기가 오고 청년들은 더 빠르게 지역을 떠나고, 관성 속에 있는 그 누구도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떠나고 싶었지만 남은 사람으로서 이제는 내가 살고 싶은 지역, 누군가로 하여금 오라고 할 수 있는 지역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
Q. 양승훈 교수님을 설명하는데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책이 여기저기서 상도 받은 것 같은데, 이런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책을 내고 상복이 많았다. 한국사회학회 학술상, 한국출판문화상 교양부문,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까지 받을 수 있는 상은 다 받았다.
그런데 책을 낼 때의 시점에는 파는 것보다는 내 조선소 생활을 정리하는 게 중요했다. 책은 안 팔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저 내 기록이면 충분했다. 마치 소설가들이 처음 펴내는 자전소설처럼 말이다. 산업의 하강기, 직장인 커리어의 종료, 다양하게 만난 인간 군상들, 조선소와 거제도라는 독특한 공간과 장소. 방식은 인류학자들의 ‘필드 노트’(문화기술지ethnography 형태의 분석을 하기 전의 초벌 노트)처럼 하고 싶었는데, 쓰고 편집자와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훨씬 더 짜임새가 생겨버렸다.
마지막에는 회사의 대외비 정보를 혹시나 은연중에 폭로할까봐 아는 변호사들에게 이런저런 검토를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 한 권의 책이 됐다.
Q. 결국 대우조선이라는 제조업기업 인사팀/전략기획팀에서 있다가 학계로 오셨다는 것이 양승훈 교수님의 특징이자 장점인 것 같다. 대우조선에는 무슨 생각으로 가시고, 어떤 생각으로 퇴사하게 되셨는지?

학부 때는 정치학을 공부했다. 대학원에서도 정치학을 전공하다 그만두고, 문화인류학으로 석사를 마쳤다.
주변에는 PD/기자/작가/문화기획자가 지천에 있었는데, PD시험을 자꾸 최종에서 떨어지니 미디어 계통의 일은 어느새 생각하기도 싫어졌다. 그 전에 우석훈 박사의 『조직의 재발견』을 흥미롭게 읽었는데, 그걸 읽으면서 노사관계가 첨예하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일해야 하는 대공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조직이 궁금해서였다. 그래서 기준은 무조건 대공장. 물론 서울 근무일 줄 알고.. (웃음) 막상 그렇게 들어와 본 회사 생활은 정말 괴롭기도 하고 재미나기도 했다. 술을 정말 많이 마셨고, 평생 만나기 힘들 만큼의 공대 출신과 공고 출신을 만났다. 돈도 많이 주고 분위기도 좋았던 회사지만, 늘 멍청해지고 도태될지 모른다는 경계심으로 처음 3년을 보냈다. 회사의 핵심부서에서의 2년은 조선산업의 하강과 내 임금의 하락이 포개지면서 늘 회사가 아픈 만큼 나도 아팠다.
그러다가 거리두기를 하고 싶어지는 찰나, 다른 나라의 조선업, 우린 나라의 다른 조선소들의 사정이 비교적 객관적인 관점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공부했고, 하다 보니 회사 조직 내부의 실무자보다는 사회과학자로서 정책사업가(policy entrepreneur) 역할을 하며 사는 게 적성에 맞겠다 생각했다. 그래서 회사 밖으로 나왔다.
Q. <중공업 가족 유토피아>의 흐름을 이어가는 작업 혹은 저술 계획이 있으신지?
산업도시 울산에 대한 용역연구 했던 보고서를 책으로 개조하고 있다. 2023년 3월쯤 나올 예정이다. 하지만 출간 일정에 대한 필자의 말을 100% 믿어선 안 된다. (웃음) 앞으로는 좀 더 디지털 기술과 일의 문제에 접근하고 싶다. 다들 AI가 노동력을 대체한다고 호들갑인데, 가능하냐는 이분법적 질문(된다 1: 안 된다 0) 말고 어떠한 과정에서 우리가 기술을 채택하고 그 기술이 어떠한 가능성과 한계를 주는지에 대해서 좀 더 꼼꼼한 작업을 해서 책으로 내고 싶다. 물론 그 전에 2010년대 조선산업의 혁신과 구조조정에 대한 논문부터 써야 한다.
Q. 일종의 산업전공자가 되셨는데, 젠더문제를 거기에 엮어서 생각하시는 것은 역시 대학원 시절의 공부와 연관이 있으신 것인지?
젠더문제를 살펴보지 않고 한국의 지방문제를 해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많은 사회과학자들이 ‘오캄의 면도날’을 갖다 댄다는 핑계로 젠더문제를 건너뛰고 지방문제를 해석하는 불가능한 과제에 도전하고 있다. 하지만 소위 지방소멸 지수란 것도 ‘가임기 여성’을 기준으로 측정된다는 것을 살펴볼 때, 산업계에서의 여성 활용이 곧 지방의 여성 노동시장 문제이고 지방소멸문제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본다. 간단히 도식화하자면, 여성이 떠나니 남성 청년도 떠난다. 그래도 괜찮은 일자리라고 남성 청년이 지방에서 버티면 따라오는 것은 ‘셔틀버스’나 ‘KTX’ 장거리 커플의 삶 밖에 없는 거다. 여성이 떠나는 것은 오롯이 지방에 자신들이 바라는 ‘커리어잡’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어떠한 조사를 살펴봐도 거주지를 선택함에 있어 일자리/주거/문화의 순서는 깨지지 않는다. 모든 지자체는 주거와 문화에 신경을 쓰는데 그 지자체들은 모조리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런 의미에서 노동시장/산업의 인력 활용/지방 문제를 떼어놓을 수 없다. 향후 계속해서 이 방면의 생각을 키워나가고 발표할 생각이다.
물론 내가 지금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에 대학원에서의 여성주의 공부가 큰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하고 일종의 ‘인식론적 도약’을 한 것도 맞다. 그러나 여성주의라는 관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세상에는 N개의 여성주의가 존재하니, 나는 그중에서 여성노동을 살펴보는 여성주의의 관점에서 사태를 살펴보려는 편이다.
Q. 인류학에서 산업공학에 이르기까지 나름의 횡단을 하고 계신데, 앞으로 더 하고 싶은 일이나 포부가 있다면?
현장에 기반을 둔 지식을 통해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데 전문가로서 기여하고 싶다. 특히 제조업쟁이이자 지방대의 선생으로서 역할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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