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로서의 삶이 행복한, 사람중심 행정·도시 연구자 최유진 교수

주류경제학은 흔히 ‘공유지의 비극’이라 불리는, 누구의 소유도 아닌 공유지는 아무도 아끼지 않아서 황폐해지게 된다는 사태를 막기 위해 공유지를 민간재로 바꾸거나 개발해서 판매하는 것을 해법으로 삼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우리 모두가 공유지를 빼앗기게 되는 것이므로 시민의 입장에서는 ‘약탈’당하는 셈이라 하면서, 이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강연이었다.
최유진 교수님이 지금의 전공과 관심사를 어떻게 형성하게 됐는지가 궁금해졌다. 인터뷰는 3월 말에 서면으로 진행됐다.
Q. 교수님께선 지난 강연에서 공유지 약탈 문제, 그리고 공유지를 회복하는 방법으로서의 다양한 사회적 자산 운동의 사례를 소개해주셨습니다. 그러한 활동의 최근 근황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최근 상황이 좋지 않아요. 사회 자본, 지역자산 등을 확충하는 데 있어선 정부의 적절한 지원이 어느 정도는 필요합니다. 그런데 현 정부와, 현 정부와 지향을 같이하는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이런 지원을 ‘특혜’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지역자산화를 위해서는 정부의 저리대출 프로그램이 존재해야 하는데, 시민사회 특히 사회적경제에 대한 저리대출을 특혜로 보는 것이죠. 사실 우리 사회 각 영역에는 다양한 정부 지원 대출 프로그램이 존재하는데, 유독 시민사회와 사회적경제를 위한 대출을 특혜로 보고 있어요. 이런 점이 무척이나 아쉽습니다.
해결 방안은 시민사회가 스스로 기금을 마련하는 방안 즉 시민기금을 축적해 나가는 장기적인 계획이 좀 필요해 보입니다. 자생력을 기르고 역량을 높이는 것이 우선적이 되어야 하죠. 민간 금융 기관의 사회 금융 제도도 확산되면 좋겠어요. ESG 관점에서 민간 금융 기관도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Q. 강남대 정경학부 공공인재 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신데, 공공인재라는 전공이 다소 생소합니다. 어떤 취지의 전공이며, 여기에서 교수님은 어떤 역할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공공의 영역에서 활약할, ‘공익 가치’를 중점에 두는 인재를 배출하는 학과입니다.
각종 공무원 시험에 응시할 학생뿐만 아니라, 비록 민간 영역으로 진출하더라도 사회적 형평성과 포용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재를 기르고 싶은 것이죠.
과거 강남대학교에는 행정학과와 법학과가 개별 학과로 존재했어요. 그런데 학령 인구의 감소로 인해 유사 중복 학과의 통합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최초에 공공인재학과가 탄생했다가 다시 학부제로 바뀌면서 정경학부를 구성하는 하나의 전공으로 편입된 것이랍니다.
저는 원래 강남대학교 행정학과에 임용되었었어요. 주로 지방자치론, 도시행정론 등 지역 관련 교과와 조사방법론, 계량분석론 등 연구 방법에 관한 과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사회적경제 관련 교과도 런칭해서 가르치고 있는데요, 교양 과목으로 현대 도시와 사회적경제라는 교과를 만들었죠. 학교의 사회적경제 관련 정책을 총괄하고 있기도 합니다.
Q. 교수님의 유학 시절 전공이 도시재생인데요. 미국까지 가서 도시재생을 공부하고 싶으셨던 계기가 혹시 유년시절이나 학창시절에 있으셨을까요? 어떤 경로로 그 전공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셨나요?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4-5학년 때 우리 초등학교 앞에 있던 달동네가 사라지는 광경을 목격했어요.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적지 않은 달동네 출신 학생이 있었고, 저랑 가장 친했던 친구도 그 달동네에서 통학하던 친구였죠. 어느 날 이 친구가 학교에 결석을 했어요. 그냥 어디 몸이 안 좋은가 보다 했었는데요, 거의 일주일 정도 계속 결석하자 걱정이 되어 집을 찾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연락할 방법이 마땅치 않던 시절이라. 그런데 막상 집을 몰랐어요. 그래도 근처에 가서 물어보면 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일단 길을 나섰습니다. 달동네 입구에 이르자, 저는 충격적인 모습을 목격했어요. 마을 전체가 포크레인과 같은 중장비에 무너지고 있던 거죠. 그 친구는 지금까지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성인이 되어서 알았어요. 그때 그 마을을 무너뜨린 이유를. 88서울 올림픽 마라톤과 성화 봉송 중계 화면에 달동네를 비출 수가 없다는 이유였다네요.
그래서 세부 전공을 선택할 때, 사람 중심의 행정과 도시를 연구할 수는 없을까 고민이었고, 마침 유학을 위해 선택한 학교에서 관련 연구를 진행할 수 있어서 ‘사람과 공동체’ 중심의 도시재생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Q. 귀국하시고 한국행정연구원에서 일하셨는데요. 이때엔 어떤 계기로 일하게 되셨으며, 어떤 활동을 하셨을까요?
사실 귀국한 후에는 우선 취직을 해야하니까, 어디든 들어가야 했어요. 하고 싶은 학문은 둘째치고 우선은 가족을 부양해야 해서요. 한국행정연구원은 행정과 정책 분야에서는 우리나라 최고의 연구 기관입니다. 한국연구재단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 중 하나이죠. 정부 조직 연구, 규제 연구, 갈등 연구에 특화가 되어 있어요.
저는 규제 연구 부서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도시재생을 전공했지만, 수리적인 접근도 좋아했기에, 규제 연구 부서에서 비용과 편익 산출하는 역할이 주어진 것이죠. 입사 후 1년이 지나자 갑자기 기획팀장이라는 보직을 맡게 되었어요. 이 보직은 행정연구원 내 기획조정실의 업무를 실장과 더불어 책임을 지는 자리였고, 국회 대응과 같은 일도 해야 했어요.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Q. 강남대학교에 임용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제 실력에 비해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저는 주로 지역경제, 도시재생, 도시환경 분야 연구 논문을 쓰고 있었고, 강남대학교 행정학과에서는 도시 및 지방자치 분야로 교수를 뽑고자 했어요. 보통 이렇게까지 세밀한 분야를 제시하며 공고를 내지는 않는데, 제 전공 분야와 일치하는 공고가 뜨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죠. 바로 지원했고, 제 연구 성과가 많지는 않았지만 열정을 높이 평가해 주신 것 같아요.
2년 간의 한국행정연구원 생활을 마치고 2013년부터 강남대학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Q. 하남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으로 활동하시는 등, 연구와 활동을 겸업하고 계신데요. 연구와 활동의 취지가 이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래도 어려운 부분이 있으시다면?
연구자와 사회적경제 활동가를 함께 하는 일은 쉽지 않더라고요. 원래 사회적경제를 글로만 배웠었는데, 실제 현장이 돌아가는 상황을 공부해 보고 싶었습니다. 우연히 정말 좋은 기회가 되어 하남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를 2019년부터 맡게 되었네요. 가장 어려운 점은 당연히 ‘시간’이죠. 저도 학교에서 저에게 부여하는 의무에 관한 사항들, 예를 들면 연구 업적이나 봉사, 교육 등을 똑같이 채워야 하는데 이런 부분을 센터장 직무를 수행하면서 함께 하기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현장에서는 학자티를 빼야하고, 학자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활동가티를 빼야 하는데, 이게 영 쉽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현재는 활동가로서의 삶이 더 즐겁습니다.

Q. 최근 주목하고 있는 사회 문제, 혹은 연구 분야가 있으시다면?
두 가지인데요, 사회적 경제와 ESG를 어떻게 엮을까 하는 문제와 주거 문제를 사회적경제 방법으로 완화하는 방법은 없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최근 ESG의 부상은 매우 의미가 있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구가 멸망한다는 시나리오는 거의 음모론이거나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지만, 이제 거의 정해진 미래입니다. 친환경과 사회적가치, 지배구조 투명성은 이제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에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몇 명, 또는 학자 몇몇이 나는 싫다고 안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지요. 무조건 가야 할 길입니다. 유행으로 볼 수도 없어요. 그런데 사회적경제는 이미 ESG를 현장에서 실천해 오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 두 영역이 어떻게 발전적으로 만날 수 있을지 고민을 조금 더 해보려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주거 문제는 정말 많은 의미를 내포합니다. 집값이 모든 가치를 잡아 먹는 사회이죠. 더 이상 이런 사회가 지속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물론 집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자산 가치로 그 의미가 과대 해석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사회주택에 관심을 가져야 해요. 사회주택은 사회적경제에 의해 공급되는 주택으로 공동체 복원을 지향하는 주택을 의미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이를 납득시키고, 공급을 확대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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