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실효성 높인 범주형 기본소득을 제안한다
대선공약 언박싱, 어떤 미래를 선택하시겠습니까? 민주당편 ①
지식주도경제와 4차 산업혁명은 경제와 산업구조뿐만 아니라 노동과 일자리, 소득과 소비 등 사회 전반의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기본소득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제기됐다. 국내에서는 2016년 이재명 성남시장의 청년배당을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이재명 후보가 유력한 대선후보로 성장하면서 기본소득은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의제 중 하나로 대두됐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세계에서 전면적으로 시행된 바도 없고 장기적 실험 경험도 전무하다. 진보적 관점의 기본소득으로 국한하더라도 여전히 보편적 복지국가와 충돌과 협력의 지점이 교차하고 있다. 한마디로 공론장에 기본소득이 강력하게 들어왔지만, 앞에 놓인 길은 전인미답이다.
이재명 기본소득은 부분기본소득이다
7월 22일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는 기본소득 공약을 발표했다.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이하 이재명 기본소득)은 기존 복지체계 위에 기본소득을 더하겠다는 입장과 증세 필요성을 분명히 했다. 방식은 점진적·단계적 확대방안을 제시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2023년에 1인당 연 25만원, 임기 내 분기당 25만원으로 연 100만원 지급을 목표로 하는 ‘보편기본소득’과 청년 등 일부 계층이나 농촌 등 일부 지역부터 시작해 그 대상을 확대하는 ‘부분기본소득’을 제시했다. 청년기본소득은 2023년에 1인당 연 125만원, 임기 내 연 200만원 지급을 목표로 한다.
이재명 기본소득은 기존의 복지체계를 유지한 채 추가 지급 원칙을 세워 부족한 공적이전소득을 보완했다. 또 분배강화를 통한 경제성장을 제시함으로써 보편적 복지와 같은 지향점을 세웠다. 한국의 사회보험은 일자리 중심의 공공부조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제한된 기간의 실업급여를 제공하거나 매우 엄격한 빈곤선 이하의 저소득층에게만 낮은 수준의 생계급여를 제공해 송파 세모녀 사건과 같은 비극을 막기에는 부족하다. 이런 현실의 대안으로 보편적 복지 확대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졌고, 무상급식 논쟁 이후 본격적으로 확대됐다. 박근혜 정부의 아동수당 도입과 기초연금 확대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적 합의가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이재명 기본소득은 기존의 복지체계를 형해화하고 부의 소득세 하나로 통합하려는 신자유주의 기획과는 정반대 입장이며 보편적 복지와 대립각을 세우지 않고 화해를 시도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재명 기본소득은 정기성과 충분성에서 많은 비판을 사고 있다.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는 기본소득을 “자산조사나 일에 대한 의무 조건 없이 개인적 단위로 모두에게 무조건 제공되는 정기적 현금 지급”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기본소득은 ‘정기성, 현금 지급, 개별성, 보편성, 무조건성’을 등 다섯가지 요소를 원칙으로 한다. 그리고 다섯가지 정의 원칙에는 들어가지 않지만 그만큼 중요한 ‘충분성’ 원칙이 있다. 충분성은 기본소득이 개인의 자유를 실현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가에 대한 원칙으로, 충분성을 기준으로 ‘완전기본소득’과 ‘부분기본소득’을 구분할 수 있다. 이재명 기본소득은 현금 지급과 개별성, 보편성과 무조건성에는 부합한다고 할 수 있으나 1년에 1회 또는 분기별 지급은 정기성에서 한계를 가진다. 이재명 후보는 “재난지원금이 가구별 아닌 개인별로 균등 지급되고 연 1회든, 월 1회든 정기적으로 지급된다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것은 기본소득이 아니라 ‘전 국민 생활보조금’, ‘청년 생활보조금’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충분성에 대한 비판은 더 날카롭다. 전국민기본소득 25만원에 필요한 예산은 약 13조원, 100만원 지급에 필요한 예산은 약 51조원에 이르는데 개인에게 돌아가는 것은 월 2만원과 8만원 남짓에 불과하다. ‘전 국민 외식수당’이나 ‘국민용돈’과 같은 조소 섞인 비판을 무시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런 비판을 부른 이유는 피츠패트릭이 제시한 ‘부분기본소득에서 완전기본소득’의 경로만을 상정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최고의 기본소득 이론가인 판 파레이스와 판데르보흐트 역시 완전기본소득이 현실에서 즉각적인 실현이 불가능한 점을 인정하고 개별성 원칙을 타협한 ‘가구단위 기본소득’, 보편성에 대한 타협으로 ‘범주형 기본소득’, 그리고 충분성에 대한 타협으로 ‘부분기본소득’ 등 세가지 타협의 길을 제시했다. 이 기준으로 봤을 때, 이재명 기본소득의 보편기본소득(전국민기본소득)은 부분기본소득이고, 청년기본소득은 범주형 기본소득과 부분기본소득의 결합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용어와 개념의 문제로 시비를 걸자는 것이 아니다. 이재명 기본소득은 보편성 원칙을 위해 정기성과 충분성을 타협했는데, 그 결과 기본소득에 대한 수급자의 효능감이 떨어질 것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피츠패트릭이 제시한 부분기본소득에서 출발하는 전략은 기본소득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의 소득보장과 사회서비스, 노동정책 등과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기본소득이 유력한 복지제도 또는 복지체제 보완정책으로 관심을 모은 이유가 기존의 복지체제의 부족하고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이 높기 때문이다. 부분기본소득과 부족한 복지체제는 투입한 예산에 비해 실효성이나 수급자의 효능감이 높지 못하기 때문에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기본소득 확대전략에 효과적이지 못하다. 이런 측면에서 범주형 기본소득을 통한 점진적 단계적 접근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조세개혁에 맞춰 기본소득 설계해야
이재명 기본소득이 세간의 눈길을 끌자 야권은 안심소득과 공정소득을 제시하며 제도의 효율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여권은 이낙연 후보가 제대하는 남성 청년에게 ‘사회출발자금’ 3000만원 지급, 정세균 후보가 20년 적립형으로 1억원을 지원하는 ‘미래씨앗통장’과 같은 현금성 공약을 발표했다. 현금성 공약은 찬반을 떠나 한국의 부족한 공적이전소득을 보전한다는 점이나 청년층을 사회적 약자로 보고 보편적 복지의 주요 대상으로 본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이런 현금성 공약이 대중에게 크게 호응을 얻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재원방안이 뚜렷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 이재명 기본소득은 재원 마련을 예산 절감이나 예산 우선순위 조정을 넘어 조세개혁과 연결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재명 후보는 기본소득을 도입해 “저부담 저복지 국가에서 중부담 중복지국가로 가는 대전환의 길을 열겠”다는 말로 기본소득을 조세개혁과 보편적 복지국가를 하나로 연결했다. 그리고 조세 감면분 순차 축소 계획은 조세개혁을 기본소득 재원으로 연결했다면, 기본소득 토지세(국토보유세)는 기본소득 재원과 함께 부동산 개혁과 연결하고 있다. 기본소득과 조세개혁을 연결해 공약을 발표하고 공론장에 올린 것은 높이 평가한다.
문제는 이재명 후보가 말한 것처럼 ‘조세저항을 최소화’하는 구체적인 실행계획에 있다. 먼저 이재명 기본소득은 차기 대통령 임기 내에 집중해야 할 조세개혁의 방점이 무엇인지가 불명확하다. 재원 마련 방안은 “재정구조 개혁, 예산 절감, 예산 우선순위 조정, 물가상승률 이상의 자연증가분 예산, 세원관리 강화”로 25조원, “연간 60조원을 오가는 조세감면분 순차 축소”로 25조원, 그리고 “긴급한 교정 과세분(기본소득 토지세 50조원과 기본소득 탄소세 30조~64조원)”으로 충당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즉 조세개혁과 재정 관리로 50조원, 증세로 80조~114조원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재정운영과 조세감면 축소를 확보한 50조원이면 2023년에 필요한 20조원의 2.5배에 달하고 임기 내 달성목표 58조원에 상당히 근접한 규모이며 증세 부담도 크지 않다. 그러나 실제는 다를 것이다. 조세감면 축소를 납세자는 증세로 느끼게 될 것이다. 전망이론에 따르면 똑같은 양을 받았을 때 느끼는 보상보다 뺏겼을 때 상실감이 2~3배 크다고 한다.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축소 또는 폐지 못 하는 것이 좋은 실례다. 따라서 국토보유세는 말할 것도 없고, 조세감면 축소도 대중의 극심한 반감과 저항이 예상된다. 따라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기본소득 방식에 맞춰 조세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단계적인 조세개혁 방안이 필요하며, 조세개혁 방안에 맞춰 구체적인 기본소득 설계가 필요하다.
아동·청년기본소득을 제안한다
기본소득을 모든 국민에게 지급하자는 구상의 전제에는 모든 사람의 ‘사회권’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즉 기본소득은 21세기 변화에 대응하는 사회권의 성격을 가진다. 그러나 권리는 정치공동체에 의해 보장될 때 가능하며 이 보장을 만들어내는 것이 정치연대, 즉 기본소득연대이다. 기본소득을 실행하면서 대상자들이 충분히 이 정책에 대해 공감하고 사회적 합의 확장의 주체가 돼야 한다. 정책결정자들은 정책에 대한 반대나 저항을 최소화하면서 점차 공감대를 확대하는 최적의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재명 기본소득은 부족한 공적이전소득을 보완하고 분배강화를 통한 경제성장을 제시하고 있지만, 정기성과 충분성의 한계로 실효성과 효능감이 부족하기 때문에 기본소득 확대나 완전 도입에 대한 사회적 합의 구축과 강화에 기여도가 상대적으로 낮을 것이다. 대안으로 범주형 기본소득인 아동기본소득 도입과 청년기본소득 확대를 제안한다. 범주형 기본소득은 기본소득의 5개 요소를 다 포함하되, 사회적 필요가 더 높은 인구계층을 대상으로 하자는 것이다. 이재명 기본소득 공약에서 청년기본소득이 여기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제안하는 범주형 기본소득은 0~18세를 대상으로 하는 ‘아동기본소득’과 19~29세를 대상으로 하는 ‘청년기본소득’이며, 연간 30조원 이내에서 지급한다.
아동기본소득과 청년기본소득은 재원 규모와 인구감소를 감안해 2023년에 매월 0~11세는 10만원, 12~18세는 15만원을 지급하고 청년기본소득은 19~29세까지 매월 20만원을 지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때 예산은 27조1000억원 정도 필요하다. 12세 이상은 단계별 인상을 통해 2032년에는 12~18세는 20만원, 19~29세는 30만원을 지급하자는 안이다. 이때 필요한 예산은 28조5000억원이다. 0세부터 7세 미만까지 매월 10만원의 아동수당과 더해지면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영유아 시기는 단계적 인상 없이도 매월 20만원의 현금성 지원을 받게 된다.
반면 2022년 정부예산안은 593조원이며 매해 예산증가율을 5%로 계산할 경우 2023년 대비 2032년 예산증가액은 약 343조원에 달하는 반면 국가예산 대비 기본소득예산 비율은 2023년 4.57%에서 2032년에는 2.26%로 절반으로 감소한다.
정기성과 충분성이 성공열쇠
아동기본소득과 청년기본소득은 범주형 기본소득으로 매월 지급하는 정기성과 상대적으로 높은 충분성을 보장함으로써 기본소득의 실효성을 높인다. 기본소득이 매월 지급돼야 가계나 개인이 실질적으로 생활 속에서 계획을 세워 활용하게 된다. 2010년 무상급식 논쟁에서 봤듯이 아동기본소득은 사회적 합의가 상대적으로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청년기본수당은 유럽의 복지국가에 비해서도 매우 높은 수준의 제도로써 한국사회의 맥락에서 역량개발을 위해 소중한 물적 자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제도의 대상은 0~29세지만 부모세대의 부담을 덜어주기 때문에 직간적접인 경험자 폭이 넓어져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특히 청년들에게는 경제적 효능이 결혼, 출산, 육아와 보육에 대한 부담을 줄여 출산장려정책 효과로도 의미가 크다. 기본소득의 긍정적인 경험은 시간이 경과할수록 기본소득연대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폭넓은 수혜계층의 기본소득 경험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한국의 사회적 연대와 사회자본 발전 저변 확대로 이어질 것이다.
반면 소요예산은 이재명 후보의 재원 마련 안에서 재정운영 효율화를 통해 확보하는 25조원에 약간의 예산을 더하면 된다. 즉 조세저항을 피하면서도 범주형 기본소득을 통해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높일 수 있으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보다 높은 수준의 조세개혁과 기본소득 확장을 시도할 수 있는 토대형성이 가능할 것이다.
단계적 기본소득 전략과 짝을 이루는 단계적 조세개혁 방안이 조세저항을 줄이고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적 합의 확대에 유리하다. 초기에는 조세감면 축소와 범주형 기본소득으로 효능감을 높이고, 이 성과와 신뢰 위에 국토보유세와 기본소득 확장 전략을 고려할 수 있다.
기본소득 지급은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하자는 이재명 후보의 안을 따른다. 재난지원금에서 경제적 효과를 확인한 바와 같이 지역화폐형 지급은 복지정책이자 경제정책으로 기본소득을 활용하는 좋은 방안이다. 가계와 개인은 지역화폐로 정기적인 소비계획을 세울 것이고, 지역소상공인이 지역주민의 소비패턴과 규모를 파악해 대응함으로써 지역경제의 선순환 구조에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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