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다시 홍정운의 죽음을 생각한다
다시 홍정운의 죽음을 생각한다
직업계고 현장실습 안전사고는 대학생과 성인 등 모든 세대의 문제
By 김인엽

지난해 10월 전남 여수 직업계고에 다니는 현장실습생 고 홍정운군이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를 떼다 바다에 빠져 사망했다. 안전관리자도 없는 가운데 작업을 했고 2인 1조 현장실습의 원칙도 지켜지지 않아 벌어진 전형적인 인재다.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18세 미만 사용금지 직종이 명시되어 있는데 잠수 작업도 금지 직종에 포함된다.
또한 작업 현장에는 기업현장교사도 없이 실습 표준협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잠수 작업 지시를 받았고 사업주는 안전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산업안전보건법 제140조에는 사업주는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으로 상당한 지식이나 숙련도가 요구되는 작업의 경우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작업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해 놓았다.
또, 제166조의2에 명시된 현장실습생에 대한 특례 조항에서 사업주는 일반근로자와 동일하게 현장실습생을 산업안전보건 위해(危害) 요소로부터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해 놓았다.
법령은 있으나 이들 법령이 직업계고 현장실습생에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현장실습 실태
직업계고 학생은 현장실습을 통해 국가에서 제시한 교육과정에 근거하여 일(근로)경험을 통해 바람직한 지식·기술·태도 등을 학습하고자 한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현장실습을 제공하는 산업체에 기업현장교사를 비롯하여 교육프로그램, 적정 교육 시설 등이 두루 갖추어져야 한다.
하지만 2021년 12월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의 현장실습 참여기업 실태 조사 결과, 상시근로자수 5인 미만의 영세사업장은 전체의 35.73%, 29인 미만 사업장은 69.3%에 이르고 있다. 영세한 사업장의 경우 역량 있는 기업현장교사, 우수한 교육 프로그램, 적정한 교육 시설 등을 기대하기 어렵다. 사실상 이들 기업의 현장실습은 국가 교육과정과의 연계가 어려운 것이다.
또한 현장실습처로 건설, 기계, 해양 분야 등 미성년자에게 매우 위험하고 유해한 사업장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학생들은 여전히 산업재해의 위험 속에 노출되어 있음이 드러났다.
직업계고 현장실습생의 안전사고를 더 이상 미봉책으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직업계고 학생이 현장실습을 시행함에 있어 신체적·정신적 안전 보장은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가치다.
우리 헌법을 포함하여 국제인권법, UN아동권리협약에는 직업계고 학생을 포함한 아동에게 '아동의 조화로운 신체적·정신적·지적 발전에 위험한 해로운 활동 또는 아동의 교육과 훈련을 위태롭게 하는 활동을 전면 금지'하도록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즉, 직업계고 학생의 신체적·정신적 안전 보장의 미흡은 헌법·국제인권법·UN 아동권리협약 등을 위반하는 중대한 행위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국가는 모든 학생의 안전한 학습권 보장을 위한 교육 정책을 가장 우선순위에 놓아야 할 것이다.
현장실습생의 근로자성
현장실습제도는 애초 교육의 영역에서 설계된 제도다. 현장실습의 본질을 '근로'가 아닌 '근로의 경험'으로 규정하면서 현장실습생의 근로자성에 관한 노동법적 논의는 그 대상에서 제외되어 왔고 그로 인하여 노동착취, 산업재해, 인격침해, 성추행 등 사회적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또한 현장실습생은 최저시급도 보장받지 못하는 충격적인 처지에 놓여 있다. 특히 2017년 교육부의 학습중심 현장실습제도는 현장실습생에게 '근로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아 법적 보장을 받지 못하면서도 고 홍정운군과 같은 사망사고도 막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반면, 일부 직업계고에서 운영 중인 산학일체형도제학교 참여 학생의 경우 일학습병행법에 의거 학습근로자로서 '근로의 경험'과 '근로성'을 모두 인정받고 있다. 이들 학생들은 '근로성'을 온전히 인정받기에 법적 테두리 내의 보호가 가능하다.
따라서 직업계고 현장실습생의 안전사고를 적극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 산학일체형도제학교 참여 학생과 같이 현장실습에 대한 '근로성'을 인정하고 법의 보호 아래 놓을 필요가 있다.
직업계고 학생들은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다. 이들에게 헌법·국제인권법·UN 아동권리협약에 명시된 안전한 학습권을 보장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열악한 영세기업의 현장실습은 국가교육과정과 연계된 학습권과 안전을 보장하는 안전권 확보가 어렵다.
현장실습 기업 발굴 자체가 어려운 현실 속에서 아무리 기업에 대한 사전 점검을 강화하여도 사고를 막기에 역부족이고 재발 가능성이 크다.
이제 미래를 이끌어 갈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보다 안전한 학습 장소를 제공해야 한다. 가장 안전하고 가장 학습권이 보장될 만한 현장실습처는 과연 어디일까? 바로 정부와 그 산하기관, 공기업 등일 것이다.
우선 국가 차원에서 직업계고 현장실습생에게 안전한 학습권이 보장된 현장실습처 제공을 위해 정부 및 산하기관이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정부가 범부처 협력을 통하여 이에 대한 기본정책을 수립하고 재정 계획을 확인하여 함께 실천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 미래와 청년을 위한 정부의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책무이다.
직업교육기본법 제정
현장실습 안전사고 문제는 비단 직업계고 학생들에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전문대학생, 4년제 대학생도 현장실습이 필요하기에 이들과도 직접 관련된 문제이다. 또한 100세 시대, 초고령화시대 평생교육에 참여하는 많은 성인에게도 관련된다. 현장실습 중 산업 재해, 인격 침해 등의 문제는 직업계고 학생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에게 해당되는 문제이다.
따라서 이를 국가 차원에서 보장하고 법령과 제도적인 지원을 위해 '(가칭) 직업교육기본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안전한 현장실습 기본계획을 포함하여 법령에 담을 구체적 내용은 추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청년 대상 기본소득 정책과 같이 청년이면 누구에게나 소외됨 없이 일자리를 국가가 제공하겠다는 기본 일자리 제공 차원에서 직업교육기본법의 제정은 필요하다. 특히 미성년자인 직업계고 학생들을 위한 '(가칭) 직업계고 지원에 관한 특별법'의 제정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제 대선이 두 달 남짓 남은 시점이다. 구호에 그치지 않는 '단 한 명의 아이도 소외됨 없이 모두가 안전한 학습권'을 누릴 수 있는 혁신적인 교육 정책을 차기 정부에 기대해 본다. 차기 대통령은 미래 세대인 우리 아이들을 위해 무엇보다 소신 있고 강력한 추진력이 있는 교육 대통령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직업계고 #현장실습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