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심상치 않았던 '흡수통일론'... 윤석열은 북한을 어떻게 이용했나
심상치 않았던 '흡수통일론'... 윤석열은 북한을 어떻게 이용했나
적대적 분단체제 끝내야... '남태령 시민 연대의 힘'에서 희망을 보았다
by. 윤창원

2025년 새해가 밝았다. 지난 12월 3일 선포된 비상계엄으로부터 시작된 대통령 탄핵 정국은 유례없는 '현직 대통령 내란 수괴죄 체포'를 둘러싸고, 온 세상이 하얗게 덮인 새해의 첫 주말 차디찬 아스팔트 위로 시민들을 내몰고 있다.
더욱이 한 해의 끝자락, 지난 12월 29일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의 슬픔은 우리 사회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나아가야 할 지점이 많음을 보여줬다. 그 어느 해보다 무거운 시작이다.

비상계엄 속 한반도의 불안정한 평화
비상계엄 해제 이후 쏟아지기 시작한 언론보도 속에서 필자는 한반도의 평화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분단 이후 오늘까지 남북관계는 순탄한 적이 없었다. 남북관계가 진전될 경우에도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고 남북관계가 정체되거나 퇴행할 경우에도 지루한 신경전과 적대적 기싸움 나아가 무력도발로 피해가 생기기도 했다.
어렵게 합의를 해놓고도 남북관계는 가다서다를 반복했고 화해 협력이 증진되는가 하면 정권이 바뀌면 어느새 불신과 대립이 커지기도 했다. 지난해 2월, 북한은 남한을 '다른 국가', '제1의 적대국'으로 규정했으며, 윤석열 정부는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자유가 박탈된 동토의 왕국, 빈곤과 기아로 고통받는 북녘땅으로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확장돼야 된다'라며 사실상 흡수통일론을 공식화했다. 남북관계는 긴장과 대결이 실타래가 풀릴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하여 '서북도서에서의 강력한 사격훈련실시, 무인기 평양 침투·오물풍선 원점 타격 대응을 통한 북한의 군사공격 유도, 북한군복을 입은 HID요원들의 혼란 조장' 등의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 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진영에서 유리한 분위기 형성을 위해 북한 측에 휴전선 무력시위를 해달라는 '총풍사건'이 동시에 떠올랐다. 한반도의 평화는 불안정한 할 뿐 아니라, 그릇된 권력자의 권력의 확장과 유지를 위해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평화로 가는 길

새해가 밝았지만, 세계는 여전히 전쟁 중이다. 전쟁 종전을 약속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을 앞두고 있지만,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의 포성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사는 한반도 역시 대북전단과 쓰레기가 실린 풍선을 주고받으며, 갈등을 계속 키워가고 있다. 평화로 가는 길은 어떤 길일까?
이슬람 성전 <코란>에는 신의 말씀이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사람들이여, 나는 너희를 남녀로 나누어 창조하였다. 너희들을 부족과 종족으로 나누었는데, 이것은 너희들 서로가 알도록 하기 위함이다.'(49·13)
신이 인류를 다양한 종족과 부족으로 나눈 것은 인간을 서로 다투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이해하고, 평화를 위해서 서로 보완하며, 서로 돕고 평화롭게 살아라.'라는 신의 축복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오만하게도 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독선주의와 이기주의로 내달아, 신의 길을 벗어나 사람들 사이에 대립과 불화가 생겨났으며 분쟁을 초래하고 있다.
<유네스코 헌장> 전문은 다음 말로 시작된다. '전쟁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생겨난 것이기에 사람의 마음속에 평화의 성(城)을 구축해야 한다. 서로의 풍습과 생활에 대한 무지는 인류 역사를 통틀어 세계 국민들 사이에 의혹과 불신을 초래한 공통적인 원인이 되었으며, 의혹과 불신 때문에 일어난 사람들의 불일치가 너무나 자주 전쟁을 일으켰다. ··· (중략) ··· 정부의 정치적, 경제적 조정에만 기반을 둔 평화는 세계 국민의 일치되고 영속적이며 성실한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평화가 아니다.
따라서 평화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인류의 지적이고 정신적인 연대 위에 이를 구축해야 한다.' 우리는 과연 '마음속에 평화의 성을 구축'해 왔을까? 전쟁과 대립의 원인인 '의혹과 불신'을 제거하기 위해서 '서로의 생활과 의식'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왔을까? 지속적인 평화를 확립하기 위해서 남북한 사람들 사이에 '지적 정신적인 연대'를 구축해 왔을까? 대답은 말할 필요도 없이 '아니오'이다.
<유네스코 헌장> 전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전쟁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생겨난 것이기에 사람의 마음속에 평화의 성(城)을 구축해야 한다'는 선언은 '자신 안에 내재된 마음의 평화'를 지적한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코란> 제49장 제13절의 신의 계시는 자신과 신과의 평화를 말하고 있다. 신은 인간이 서로 이해하며 평화롭게 살기를 원해서 인류를 다양한 종족과 부족으로 나누었다. 그러나 우리가 신과의 평화를 실현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했기 때문에 신의 축복에 마음을 쏟지 않고 서로 다투며, 서로 죽이는 어리석은 짓을 범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독교 <성경>에서 '회개'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슈브(돌이키라)'라는 신의 호소이다. 신에게로 돌아가지 않고서, 신과의 평화를 마음속에서 누리지 않고서, 어떻게 적대자에 대한 복수의 증오를 버리고 용서와 화해 그리고 평화의 길을 열어 갈 수 있겠는가?
평화의 길을 열어줄 남태령의 연대

한반도 통일과 평화체제로 나아가는 과정에 꼭 필요한 지점이 보인다. 보다 많은 시민들이 '평화와 통일 당사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길을 이야기할 때 가는 길이 다를 수 있다는 것조차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통일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은 것이다. 각자 가지고 있는 조각은 있지만 이를 너른 공간에서 펼쳐 한 폭의 그림으로 이어 맞출 재단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한쪽에 치우친 입장만 있고 광장에서의 만남도 이들을 연결한 시민도 부재한 탓이다.
우리의 희망과는 달리 남북관계는 여전히 불안정하고 국제정세 또한 유동적이지만 상호 적대적인 분단체제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임이 분명하다. 어떤 형태의 통일이 바람직할 것인가에 대해 완전한 합의를 얻기는 쉽지 않다. 통일이 이루어질 시기를 예측하기도 곤란하며 통일 과정이 반드시 점진적이거나 평화적일 것이란 보장도 없다. 우리가 원치 않는 방식으로 이 문제에 맞부딪치게 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통일논의가 구체화되고 정책적 실현 가능성이 높아지면 질수록 그에 적합한 전문성과 책임성을 갖추기 위해 노심초사해야 하는 것이 시민들의 책무일 것이다. 반세기 이상 남북한 주민들이 경험해 온 상이한 제도와 관행을 적절히 통합하고 전쟁의 상처와 오랜 대립에서 유래하는 적대감과 이질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나은 공동체를 구현하는 일에 시민들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난 2024년 12월 16일 전국농민회총연맹의 전봉준투쟁단은 트랙터를 이끌고 윤석열 체포와 구속을 촉구하며 서울을 향했다. 이들의 행진은 서울로 들어오는 남태령에서 경찰의 차벽에 막혔다. SNS 등을 통해 소식을 들은 시민이 모였다. 하루가 넘는 대치 끝에 투쟁단과 시민은 차벽을 걷어내고 한남동까지 행진할 수 있었다. 시민들은 이 사건을 '남태령 대첩'이라 부른다. 경찰의 저지를 뚫고 행진을 완성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28시간의 대치 과정에서 쏟아진 시민의 후원과 이후 사회 곳곳으로 퍼져가는 연대와 후원의 물결이 전 세계를 감동시키고 있다.
민주주의 위기의 순간, 세대와 성별 등의 처지를 넘어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정치가 제시하지 못한 이상을 '시민'이 제시하고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남태령의 연대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고 한반도의 위기를 넘어 평화로 가는 길을 열 것을 확신하게 된다.
내란 사태의 끝, 정치가 해야 할 일들

향후 북미 협상이 급진전되어 대북 제재가 완화되는 상황이 오더라도 남북관계는 이전과 달리 개선되지 않을 수 있다. 북한은 강경한 대외정책을 구사하다 필요에 따라 대화국면으로 정세를 전환시키곤 했지만 이전과 같은 전환적 대응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전과는 다른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륙과 해양세력의 충돌점에서 연결 접점으로 이념과 사상의 경계선에서 화해와 평화를 이어주는 새로운 공간으로 한반도가 거듭나게 해야 할 것이다.
우선 당국 간에는 남북 사이에 합의하고 이행해왔으나 현재 중단된 사업을 재개하기 위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둘째, 기업, 시민사회단체 등 비당국간에 진행되었거나 새롭게 합의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국제정세의 변화와 남북관계의 현실을 반영하여 시행가능한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남북화해의 주체는 남북의 당국이 아니라 시민이다. 남북의 시민이 마음으로부터 화해하는 길을 열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남과 북의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각종 문화, 체육행사와 인도적 지원이 보다 활성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남과 북의 종교인, 예술인 등의 교류도 늘려 나가야 할 것이다.
비정상이 극단까지 치달은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대화가 절실하다. 남북이 항구적 평화체제로 나아가는 것에 이견이 있을 수 없겠지만 달라진 북한의 경제 상황에 맞게 그리고 남남갈등이 여전한 남쪽의 여론을 아우르는 새로운 남북관계와 민간교류의 방식과 목표가 공유되고 공감되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은 확실하게 어느 편에 서야 이익이 생기고 먹을 것도 생기고 조직도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그동안 내 편 아니면 네 편으로 서야 했고 적 아니면 아군이라는 프레임이 움직여 왔다. 그러나 우리는 민주주의 위기 앞에 이익이 아닌 정의를 위해 '돈'과 '시간', '마음'을 기꺼이 내고 있는 시민을 목도하고 있다.
제도화된 폭력적 구조와 내면화된 폭력적 문화는 직접적 폭력과 더불어 장기간에 걸쳐 복수전처럼 반복되고 장기화되고 의식화되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폭력의 악순환인 것이다. 남과 북을, 진보와 보수를 넘나드는 것에 주저할 수밖에 없었지만 통일이라는 그림은 이제 새로운 기회가 되어야 한다. 무력과 전쟁으로 평화를 이루어갈 수는 없다. 시민의 힘과 연대를 발판 삼아 평화와 통일의 걸음을 성큼 내딛자! 다시 되돌릴 수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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